지난해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과 올해 초 미국의 보호무역으로 ‘원투 펀치’를 잇따라 맞은 국내 산업계는 양국 간의 전쟁으로 인한 피해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피로감 커지는 산업계..."하루속히 결론 나와야" 한숨
16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본격화된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양국의 갈등 심화로 그 '종착점'이 불확실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빨라야 상반기 내 결과가 나올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그만큼 국내 기업들의 시장 불확실성이 장기화된다는 뜻이다.
앞서 지난 3일 미국은 우주항공, 반도체 등 1300여개 품목,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중국 정부도 그 이튿날 미국산 대두, 항공기, 자동차 등 106개 품목, 500억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같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했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이에 맞서 이달 중 25% 추가 관세를 적용할 1000억달러 규모의 수입품 목록을 새롭게 발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양국은 표면상 공세를 멈추지 않는 가운데 물밑 협상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그 결과를 예측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청회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양국간 무역전쟁 결과는 빨라야 오는 6월에나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강대국의 실익과 자존심을 건 기싸움에 국내 기업들의 피로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 업계에서는 양국 간의 무역전쟁으로 인한 향후 시장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장 큰 리스크로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면 오히려 기업 입장에서는 대응하기 쉽다”며 “지금처럼 방향이 결정되지 않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기업이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다양한 관점에서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만큼 에너지 손실이 더욱 크다”라고 지적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국은 한국과 대만"
국내 산업계의 유·무형 피해도 가시화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중국에서 만드는 40인치형 LCD(액정표시장치) TV의 중단과 다른 공장으로 생산지 이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0인치형 LCD TV가 미국의 25% 관세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대부분 제품이 중저가 라인으로 경쟁력의 핵심은 가격”이라며 “만약 25%의 관세를 맞게 될 경우 현지 생산의 장점이 없어 생산지 이전도 하나의 대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등 한·미·일 연합의 일본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도 제동이 걸렸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13일까지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인수를 승인하지 않았다. 인수·합병(M&A) 절차가 중국 반(反)독점 당국 승인을 받지 못해 기약 없이 연기되고 있는 것이다.
SK하이닉스와 미국의 베인캐피털·애플, 일본의 산업혁신기구(INCJ) 등은 작년 9월 약 2조엔에 세계 2위 낸드플래시 업체인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를 인수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미국·EU(유럽연합)·중국 등 8국 가운데 중국만 유일하게 승인을 미루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 승인 이후 계약을 마무리하는 데까지는 3주가량이 소요된다”며 “이에 따라 당장 중국이 승인한다고 해도 M&A의 2차 마감 시한인 내달 1일까지 마무리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인한 피해 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학교 부총장은 "장기적으로 국제통상질서 주도권 싸움이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지속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며 "이번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국은 한국과 대만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도 "한국 교역의 1,2위를 차지하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분쟁이 격화되고 있다"면서 "중국에 대한 중간재 수출비중이 79%에 달하는 상황에서 대중 수출의 감소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통상압박이 한국의 철강, 태양광 패널 등으로도 이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중요하다"면서 "현재 무역갈등이 완화되는 것처럼 보여도 양국의 통상 기조상 언제든 관계가 다시 냉각될 수 있기 때문에 다자간 무역협정 등 대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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