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대선 압승…신흥시장 '약한 고리' 터키 경제는 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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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기자
입력 2018-06-2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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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르도안, 2030년대까지 집권 시동…리라화 폭락, 인플레이션 폭등 깜깜한 터키 경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지지자들에게 대선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대선에서 압승하며 현대판 '술탄'(중세 이슬람제국 황제)에 등극했다.

BBC와 CNN 등 외신들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치른 조기 대선에서 53%의 득표율로 압승했다. 당초 접전을 예고했던 공화인민당(CHP)의 무하렘 인제 후보는 31%를 얻는 데 그쳤다.

아직 비공식 집계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나의 8100만 시민 개개인이 이번 선거의 승자"라며 승리의 공을 국민들에게 돌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함께 치른 총선에서도 승리했다. 그가 이끄는 정의개발당(AKP)이 42%의 표를 얻고, AKP와 연대한 우파 민족주의행동당(MHP)이 11%의 지지를 받았다. 이로써 여권은 총 600석 가운데 절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하게 됐다. CHP의 득표율은 23%에 불과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총선 결과에 대해 "터키가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교훈을 줬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선거 조작 의혹도 제기됐다. 터키 선거위원회도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남부 우르파 지역의 선거 부정 혐의를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제 후보도 개표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야권은 아직 공식 결과가 나온 게 아니라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결과가 어떻든, 민주주의 투쟁을 계속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식 선거 결과는 오는 29일 발표된다.

터키는 지난해 가까스로 개헌에 성공했다. 헌정체제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꾸는 게 개정 헌법의 골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공직자와 각료를 직접 지명하고, 사법체제에 개입하는 것은 물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개정 헌법엔 새 대통령 임기 규정도 담겼다. 임기는 5년으로 중임할 수 있으며, 중임 중인 대통령이 조기 선거로 재선에 성공하면 5년을 다시 재임할 수 있다. 2002년 처음 권좌에 앉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론상 2033년까지 30년 넘게 집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술탄'에' 버금가는 권한을 쥐게 됐지만, 풀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다. BBC는 특히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이슈가 경제였다고 지적했다. 터키 경제는 2016년 7월 '실패한 쿠데타' 뒤에 비상사태가 이어지면서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2년 새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40%가량 추락했다. 리라·달러 환율이 최근 사상 최고(리라화 값 사상 최저)치로 뛰면서 리라화는 올해 최악의 통화로 등극했다.

그 사이 물가상승률은 12%를 넘어섰다. 터키 중앙은행이 지난달 말부터 기준금리를 8%에서 17.75%로 올리는 극약처방을 동원했지만, 터키인들에게 고통만 줬을 뿐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중앙은행의 손을 묶고, 자신이 직접 통화정책을 장악한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가 물가안정을 위해 써야 할 통화정책을 성장의 도구로 이용하면서 경제를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CNN은 에르도안 정부가 올해 1분기에 7.4%의 성장률을 달성한 것을 뽐내지만 전문가들은 통화완화정책과 부동산 투자에 따른 것이라고 평가절하한다고 꼬집었다.

에르도안이 장악한 불투명한 통화정책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을 촉발했다. 리라화 폭락 사태의 배경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기준금리를 내리겠다고 밝혀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이다. 그가 이번 대선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 만큼 통화정책의 왜곡이 더 심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더욱이 터키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과 함께 신흥시장에서 미국의 통화긴축 충격에 가장 취약한 '약한 고리'로 꼽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의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지면 역풍을 피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CNN은 터키의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가 넘는다며, 터키가 이를 단기 부채로 메우면서 외자 이탈에 더 취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연준의 금리인상은 터키를 비롯한 신흥시장에 몰렸던 글로벌 자금을 달러 자산으로 잡아 끄는 유인효과를 낸다.

마커스 체네빅스 TS롬바드 글로벌 정치 리서치 부문 애널리스트는 CNBC에 "터키 정부는 (경상수지) 불균형이나 경기과열에 맞설 생각이 없다"며 "터키가 천천히 타오르는 위기로 들어서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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