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제조업체들이 지진 피해 방지용 장치의 검사 데이터를 조작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준 가운데 반도체 업계에서도 데이터 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을 시작으로 일본 제조업계의 조작 스캔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일본산 제품의 이미지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언론의 28일 보도에 따르면 히타치(日立)제작소 그룹 산하 화학 제조사인 히타치카세이(化成)는 반도체에 사용하는 화학 소재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조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히타치카세이는 지난 6월에도 산업용 전지의 검사서를 날조했었다.
문제가 된 소재는 반도체의 집적회로(IC) 칩을 덮는 재료로, IC 칩을 빛과 열, 물리적인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히타치카세이는 고객사와 맺은 계약과는 다른 방법으로 이 재료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일본 제조업계의 데이터 조작 스캔들이 알려진 지 보름도 안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앞서 지난 16일 제조사 KYB와 이 회사의 자회사인 KSM이 제조한 오일 댐퍼(건물용 면진·제진 장치)의 검사 데이터가 조작돼 당국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데이터가 조작된 장치는 2000년 3월 이후 지난달까지 제조된 것들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에서 해당 제품이 도쿄도 청사, 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경기장인 도쿄 아쿠아틱스 센터, 아리아케(有明) 마리나 등 대중 이용 시설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일본에서는 일본 철강업계 3위인 고베제강과 미쓰비시매트리얼의 자회사가 제품의 품질 데이터를 장기간 조작하고 일본 닛산자동차가 무더기 리콜 조치를 내린 뒤에도 비슷한 형태의 부정행위를 계속하는 등 지난해 11월부터 데이터 조작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메이드 인 재팬'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고베제강 등 일본 기업들의 데이터 조작 사건은 강도 높은 관리 환경 아래 각 부서가 엄격한 이익 목표를 달성하려던 과정에서 일어났다"고 진단하면서 일본 제조업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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