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위기인가?” 요즘 세간의 가장 큰 논쟁거리는 한국경제에 대한 엇갈린 진단이다. 올 한 해 정부정책을 평가하는 국정감사에서는 물론, 직장인들의 회식자리, 민간의 식탁 위에도 주 메뉴로 오른다.
이런 논쟁의 극단을 보여준 것이 지난 5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였다. 당시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소비지표 악화를 거론하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자,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제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이어 양당 간에 고성과 말싸움이 이어지는 등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됐다. 세간에서 자기주장만을 펴다 주먹이 오고가는 사태로 번지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한국경제가 '위기상황이냐‘ ‘아니냐’를 놓고 극단적인 감정싸움에 이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경제위기론을 주장하는 진영을 보자. 경제성장률 전망과 고용, 소비지표 등 각종 통계지표를 근거로 든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 외국계 투자은행(IB)들에 이어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한국의 경제성장 둔화를 예상했다. 무디스는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9%에서 2.3%로 0.6% 포인트나 낮춰 잡았다.
이에 앞서 가장 정확한 경제성장률 전망을 내놓는다는 한국은행과 가장 보수적인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 최근 제시한 전망치 2.7%보다 0.2% 포인트 낮은 전망치를 내놨다.
통계청의 '10월 고용동향'에 보면 지난달 취업자는 2709만명으로, 4개월째 10만명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실업자 수는 1년 전보다 7만9000명 늘어난 97만3000명으로, 10월 기준 외환위기 때인 1999년의 110만8000명 이후 최대치다.
이들은 우리 경제가 "1997년 IMF 외환위기처럼 경제위기가 재현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펼치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론'을 과녁에 올려놓았다.
이를 근거로 한국경제위기론을 주장하는 것이 옳은가. 경제전문가들은 경제위기란 1997년 IMF 외환위기와 같은 국가 부도상황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마이너스 성장률에 유동성 고갈, 인플레이션 혹은 디플레이션이 심하게 발생하는 경우 등이다.
한국경제상황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경제위기론’은 너무 나간 표현이다. 지금은 경제위기가 아닌 경기둔화 국면으로 보는 것이 맞는다.
경기둔화의 원인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만 책임지우는 것도 무책임하다. 한국경제의 어려움은 최근 세계경제 둔화 국면과 맞물려 있다.
실제 IMF는 지난 13일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018년 2.9%에서 2019년 2.5%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로지역 성장률은 2.95에서 1.9%까지, 중국은 6.6%에서 6.2%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특히 수출주도국인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다.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도 “우리 경제는 개방도가 높아 대외 위험요소에 상시적으로 노출됐다. 특히 내년에는 세계경제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갯속 국면"이라고 말했다.
경제상황이 나빠진 다른 이유는 제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2015년 기준 총부가가치의 30%를 차지한다. 중국의 27%보다 높고,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의 25%나 일본의 20%보다 높다. 특히 제조업분야의 종사자 수는 400만명에 달한다.
제조업이 일자리는 물론 국민의 소득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지금은 반도체를 제외하곤 모두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도 내년 내수부진과 주요산업 경기가 악화되면서 건설‧자동차‧철강 분야의 산업 경기가 침체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경고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있어왔다. 과거 참여정부는 물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조차도 산업구조조정과 신성장동력 마련이라는 정책과제를 마련한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책추진이 이뤄지지 못해 제조업의 위기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보잉사는 제조업에 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유럽의 에어버스와 함께 세계 항공업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보잉사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AI(인공지능)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보잉777의 조종사는 평균 7분가량만 물리적으로 비행기를 조종하고, 나머지는 AI의 기능을 활용한다.
이렇듯 산업구조조정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 우리 경제는 기존에 내재된 모순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집권 3년차에 들어서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과한 처사다. 특히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모든 원인을 돌리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임금주도성장’, ‘수요주도성장’ 등으로도 불리는 이 정책은 지난 10여년간 세계적으로 고용 없는 성장과 경제불평등을 야기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대안으로 종종 거론된다. 또 포르투갈 등에서도 채택된 바 있어 세계적으로 한국의 성패 여부에 관심이 높다.
그러나 ‘경제위기론’에 맞서는 정부도 문제는 있다. 지금이 경기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최저임금 및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논란을 단순히 진영 간 또는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두 가지 정책을 발표할 때 20∽30대 청년층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올해 초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에서 82.9%였지만,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54.5%로 27% 포인트 하락했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무조건적인 공평과 분배를 원치 않는다. 공정한 룰에 의해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원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방향이 아니라,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좀더 면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솔직해야 한다.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경제의 어려움에 대해)대국민 담화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경제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자는 내용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을 음미해 봐야 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