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걸어서 황하강을 건너지 못한다(불감빙하·不敢憑河).
사람들은 그 하나는 알지만(인지기일·人知其一),
그밖의 것들은 알지 못한다(막지기타·莫知其他).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기를(전전긍긍 戰戰兢兢)
마치 깊은 연못에 임한 것 같이 하고(여림심연·如臨深淵),
살얼음 밟듯이 해야 하네(여리박빙·如履薄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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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러하다. 정부, 기업, 국민 모든 경제주체가 ‘심연에 임하여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올 1년 내내 경제를 두고 ‘위기(crisis)’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있고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평가와 맞물리면서 정치권까지 가세해 논쟁은 치열하다. 한쪽에서는 지난 10년 중 경제가 최악이라고 하고, 다른 편에서는 근거 없는 헐뜯기라며 반박한다.
수치만 보자면 국내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의 3분의1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재무건전성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정보 분석업체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매출 기준 1000대 상장기업의 올 상반기 기준 부채비율(부채총액/자기자본)은 평균 174%로 집계됐다. 1997년 1000대 상장기업 부채비율 589%보다 크게 낮아졌고, 부채비율이 400%를 넘는 이른바 '고위험 기업'의 숫자도 342개에서 61개로 급감했다. 지금 고용이나 투자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수출은 여전히 호조이고 성장률도 선진국들과 견줘 높은 수준이어서 위기로 보기엔 이르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하지만 반도체 호황과 정부지출 확대가 한국 경제의 취약점을 잠시 가리고 있을 뿐, 이미 위기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자동차와 조선 등 주요 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고, 버팀목이던 반도체 산업마저 새해 역성장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는 보호무역주의가 휩쓸고 미국의 금리 인상, 미·중 무역분쟁, 중국의 성장둔화 등 대외여건의 하방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로 내년 경제성장률은 더 낮을 것으로 상당수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전망한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새해 사업계획도 제대로 짜지 못하며 고심하고 있는 이유도 다름 아니다. 국민들도 피부로 느끼는 경제 상황이 나쁘다는 데 많이 동의한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경제 상황이 앞으로 1년 동안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53%)이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16%)보다 훨씬 높았다. 실업률도 지난 10월 기준으로 2005년 이후 가장 높다.
‘위기’라는 말은 환자의 병세가 갑자기 변하면서 죽음과 회복의 분기점이 나타나는 결정적이고 중대한 순간을 가리키는 의학용어에서 유래했다. 사망할 수도 있고 회복될 수도 있는 순간이라면, 의사마다 원인진단이나 치료순서·방법 등은 다소 달라도 목적은 같을 것이다. 한국 경제에 이상증세가 감지되고 특히 국민과 기업이 이에 불안해한다면, 정부와 정치권은 원인과 치료순서·방법에 대한 논쟁보다는 불안감을 해소하는 치료부터 착수해야 한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국민과 기업을 안심시키고 힘을 모아 제대로 대응하면 부활의 기회가 된다.
‘전국책’ 중 초책(楚策)에 기록된 초나라의 충신 장신(莊辛)의 말이 의미있게 들린다. 장신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초나라 양왕(襄王)에게 “망양보뢰(亡羊補牢)이니 양이 달아난 뒤 우리를 고쳐도 늦질 않으며, 절장보단(絶長補短)이라 현재 초나라가 비록 적의 침공을 받아 영토가 작더라도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보충하면 수천리는 되어 희망이 있다”고 간언했다. 일이 발생한 뒤라도 적절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하며, 긴 부분을 잘라 짧은 부분을 채우듯이 서로 소통하고 정책들의 장단점을 보완하면 방책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상영 16일 만에 관객 300만명을 넘어서는 등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1997년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요청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얘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계는 흥행 이유를 시대상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도 반면교사(反面敎師)할 수 있는 부분을 잘 짚어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나 불편하고 찜찜한 심정도 적지 않다. 지금의 위기 논쟁과 논란에 따른 국민과 기업의 불안심리도 큰 몫을 한 것 같아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홍남기 신임 경제부총리로부터 첫 정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현 경제 상황이 엄중한 만큼 경제팀은 부총리 중심의 원팀으로 운영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제정책의 가시적인 성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17일에는 취임 후 처음으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국민과 기업은 우리 경제의 ‘긍정적 변화’를 고대하고 있다. 체감까진 아니더라도 ‘긍정의 단초'나 '변화의 조짐’이라도 보이길 바라고 있다. 그 정도라도 국민과 기업에는 꽤 괜찮은 2019년 ‘희망의 새해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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