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희소한 자원이었다. 방송, 신문, 영화 등 이용자들이 접할 수 있는 미디어는 한정되어 있었고, 지금과 비교하면 사업자들은 경쟁압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특히, 방송은 전파라는 희소한 자원을 가지고 사업을 영위해야 했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으로 인식되어 왔다. 기술이 진화함에 따라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소수만이 방송사업을 할 수 있는 시대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다른 매체들도 마찬가지다. 방송콘텐츠, 신문, 영화 모두 모바일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과거에 미디어가 희소한 자원이었다면 이제는 이용자의 관심이 희소한 자원이 되었다. 수년간 수용자의 매체 이용행태를 연구해 온 제임스 웹스터(James Webster)는 『관심의 시장: 디지털 시대 수용자의 관심은 어떻게 형성되나』(백영민 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를 통해 미디어 사업자들이 수용자의 관심을 확보하기 위해 ‘관심의 시장(marketplace of attention)’에서 경쟁해야 하는 환경에 직면했다고 지적한다. 그럼 미디어는 무엇을 가지고 경쟁하고 있는가? 콘텐츠를 가지고 경쟁한다. 이제는 콘텐츠의 경쟁력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플랫폼과 콘텐츠의 시너지를 어떻게 창출해 낼 수 있는 지도 중요해 졌다. 플랫폼과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연계하는 사업자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업자 중 하나는 넷플릭스다.
DVD를 대여해 주는 사업자였던 넷플릭스는 OTT(Over The Topㆍ인터넷동영상서비스) 시장으로 진출하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평판을 격상시키는 데 기여한 것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용자의 니즈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작하여 이용자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마이클 스미스(Michael, D. Smith)와 라훌 텔랑(Rahul Telang) (2016/2018)은 『플랫폼이 콘텐츠다』(임재완·김형진 역, 파주: 이콘)에서 수용자의 데이터를 확보 가능한 플랫폼 사업자들은 자신이 제작할 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을 판단하는데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수용자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 이를 기반으로 타케팅과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4월 11일 디즈니는 올해 11월 12일 OTT 플랫폼 디즈니+를 런칭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간 소비자들에게 직접 콘텐츠를 제공하는 이른바 DTC(Direct to Consumer)를 본격화하여 플랫폼 경쟁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디즈니가 폭스를 인수하여 훌루를 소유하게 된 것도 결국 디즈니+를 내놓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한편 넷플릭스는 재작년 8월 ‘밀러월드(Millarworld)’라는 코믹스 회사를 인수한 바 있다. 콘텐츠 제작시 IP 확보에 용이한 코믹스 회사를 인수하여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하지만 넷플릭스도 디즈니와 같이 향후에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지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글로벌 사업자들은 이와 같이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면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넷플릭스가 진출한 이후 콘텐츠 제작비가 높아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용자 니즈를 분석하고 이를 콘텐츠 제작에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용자들은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콘텐츠만 좋아할까? 데이터 분석에 의거하여 콘텐츠를 제작하면 콘텐츠의 성공가능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데이터 분석이 콘텐츠 제작시에 참고할 유용한 근거자료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위험요인을 완전히 제거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위에 언급한 제임스 웹스터(James Webster)는 데이터 분석에 의거한 추천 시스템이 이용자의 니즈 분석을 넘어 인기를 얻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며, 이는 일종의 정치적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데이터를 분석하여 이용자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마케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콘텐츠 제작과 유통이 단순히 객관적 분석에 의거한 행위만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2018년 국내에서 가장 예상 밖의 흥행을 거둔 영화는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천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신과함께: 인과연(관객수 - 102,666,146,909)>,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관객수 - 99,926,399,769)>에 이어 팔백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세 번째로 많은 관객 수를 동원했다(80,010,440,345). 70년대와 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퀸>이라는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영화가 국내에서 이 정도의 인기를 끌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단순히 영화만 인기를 얻은 것이 아니라 퀸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일종의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번졌다.
콘텐츠의 산업적 가능성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이다. 콘텐츠 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콘텐츠 품질 향상과 이를 통한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어야 함은 국내외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용자의 니즈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한 데이터 기반 환경에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높은 미디어 산업의 특성상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들과 같이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사업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의 사례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콘텐츠의 흥행은 투자비와 최신 트렌드 분석만 가지고 설명되지 않는다. 데이터 분석으로 이용자의 니즈를 분석한다고 해도 흥행여부를 정확히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콘텐츠 산업의 성공요인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한 줄을 쓰기 위해 여기까지 돌아왔다. 콘텐츠 산업이 전환기를 맞이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성공의 정답은 없고, 그대로 따라서 배워야 할 롤 모델이 존재하는 것도 아닐 뿐 더러 모든 사업자가 넷플릭스나 디즈니처럼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데이터 분석에 기반하여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하는 넷플릭스 이용자부터 70년대와 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퀸>이라는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까지 이용자의 취향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콘텐츠를 통해 시장에서 강자가 되고 싶은 사업자들의 혁신은 계속되겠지만 <보헤미안 랩소디>와 같이 의외의 흥행을 거두는 사례들이 앞으로도 등장할 것이다. 올해는 누가 만든 어떤 콘텐츠가 어떠한 방식으로 유통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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