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50억원을 받고 있는 SK텔레콤 소속 프로게이머 '페이커'(본명 이상혁)는 선수 생활 6년이 넘도록 수면과 식사를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연습에 쏟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들의 게임 연습이 질병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내달 열리는 총회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코드로 지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WHO는 내달 20일부터 28일까지 스위스에서 총회를 열고 국제질병분류 제11차(ICD-11) 개정안에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정신건강질환으로 등재할 예정이다. 이 안건이 통과되면 2022년부터 게임 중독이 질병코드로 분류된다. 진단기준은 12개월 이상 △게임의 빈도 △게임의 강도 △게임의 시간 세 가지를 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경우다. 통계청은 이를 근거로 2025년까지 표준화 작업을 거쳐 WHO의 결정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반영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와 게임업계는 질병코드가 도입되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돼 규제 강화와 관련 기술의 인력 손실, 매출 감소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낸다. 특히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가 KCD 반영을 규제강화의 근거로 삼아 게임시간을 제한하는 '모바일게임 셧다운제' 도입과 '중독세'를 징수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최근 '게임 과몰입 정책변화에 따른 게임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이라는 분석 보고서를 통해 질병코드 도입이 본격화하는 2023년부터 3년간 전 세계 게임산업의 경제적 손실이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국내의 경우 이 중 절반 이상인 6조3454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게임산업 인력도 원래대로라면 2025년에 3만7673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지만, WHO의 질병코드가 도입되면 2만8949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당초 WHO는 지난해 6월 관련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반발에 부딪혀 1년 유예기간을 뒀다. 문체부는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산업협회, 게임문화재단과 '질병코드 도입반대 민·관대응 협의체'를 구성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지난 1월에는 직접 스위스를 방문해 불명확한 진단기준에 대한 근거자료를 제출하는 등 강력한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문체부 게임정책 담당자는 "게임이 치료의 대상이 되면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여러 가지 규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게임 산업이 축소될 것"이라며 "과거에 셧다운제로 게임 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WHO 안건이 통과하더라도 통계청 KCD 반영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때까지 대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