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분양 아파트 청약경쟁률이 평균 30대1에 육박하면서 건설사들의 '갑질'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후분양·부실시공도 모자라 모델하우스 관람까지 한정판 마케팅하는 사례도 선보여 소비자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5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서울 서초구 잠원동 반포 우성 재건축 아파트 '르엘 신반포 센트럴'과 강남구 대치2지구 재건축 아파트 '르엘 대치' 모델하우스인 르엘캐슬 갤러리를 오픈하면서 모델하우스 사전 예약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르엘 일반분양 수요자가 견본주택을 관람하기 위해선 사전에 방문신청을 해야 한다. 르앨캐슬 갤러리는 오는 8~18일 열흘간 운영될 예정인데, 현재 방문이 가능한 날짜는 남아 있지 않다. 지난 4일 예약 개시 직후 반나절 만에 전 일정이 모두 마감됐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한 팀당 4명씩 하루에 96개 팀이 관람가능한데 현재 '풀북' 상태라 가능한 날짜가 없다"며 "그럼에도 대기명단에 올려달라는 요청이 너무 많아 본사 측에서 별도의 방안을 마련해 7일께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신반포와 대치에 들어서는 르엘은 롯데건설이 선보이는 첫째 하이엔드(고급) 브랜드다. 한정판이라는 의미인 리미티드 에디션의 약자 'LE'와 시그니엘, 애비뉴엘 등 롯데의 상징인 'EL'이 결합해 탄생했다. 2022년 8월 입주예정인 르엘 신반포 센트럴 단지는 596가구 중 135가구가 일반 분양되며, 2021년 9월 분양예정인 르엘 대치는 273가구 중 일반 물량이 31가구다.
롯데건설이 시도하는 방식은 실제 에르메스·샤넬·루이비통 등 고가 해외브랜드에서 시도하는 한정판 마케팅과 유사하다. 상품 판매량과 판매 기간을 제한해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려는 전략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품의 가격에 구매과정의 인내까지 더해져 브랜드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감정을 누리게 된다.
모델하우스가 사전예약제였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들은 수요자들은 불만을 나타냈다. 15억원 안팎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제대로 된 모델하우스조차 보지 못하고 청약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셈이 됐기 때문이다.
주택보증공사(HUG)에 따르면 르엘 신반포 센트럴 분양가는 3.3㎡당 4891만원, 르엘 대치는 4750만원이다. 두 곳 모두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한 곳으로 전용면적 84㎡의 총분양가가 14억~16억원 선이다.
르엘 신반포 센트럴 청약을 노리고 있던 장성철씨(50)는 "100만원짜리 휴대폰, 2000만원짜리 자동차를 사도 시승해 보고 사는데 20억원 가까이 되는 집을 사면서 모델하우스도 못 보고 청약을 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경쟁률을 감안하면 모델하우스를 보지도 못하고 청약을 넣는 사람이 절반 이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모델하우스 오픈만을 기다렸다는 정빛나씨(35)는 "모델하우스 관람 일정에 대한 홍보도 전혀 없었고, 전화를 해도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해 사전 예약제인지 뒤늦게 알았다"면서 "선착순에 성공한 이들에게 커피 쿠폰을 제공하고 겨우 한 자리 양도 받았다"고 씁쓸해했다. 익명을 요구한 60대 남성은 "내집 청약하면서 모델하우스 보겠다고 사정하는 상황"이라며 "살인적인 청약 경쟁률을 무기 삼아 건설사들의 횡포가 도를 넘었다"고 지적했다.
관행이 돼버린 아파트 선분양제 등 건설사들의 고질적인 갑질에 속수무책인 소비자들은 청와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안전기준 위반, 층간소음, 모델하우스와 다른 시공, 선분양제도 등 건설사들의 갑질 행태와 관련된 청원이 1600여건 올라온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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