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의 낱말인문학] 유행어를 담은 삼성생명 광고 하나가 화제를 낳았다. '라테 이즈 호스' 얘기다. 라테커피를 들고 선배 하나가 말을 꺼낸다. 라테는 말이야.
Latte is horse는 "나 때는 말이야"라고 옛날 얘기를 입버릇처럼 쏟아내는,이른바 꼰대의 말투를 20대들이 꼬집는 유머다.
2020년은 밀레니얼 세대가 20대로 진입하는 바로 첫해다. 이 세대를 낳은 세대는 지금의 40대로, 곧 50대가 되는 사람들이다. 영국 BBC가 지난 9월 '오늘의 단어'로 넣은 우리말 '꼰대(kkondae)'는 밀레니얼 세대가 기성세대에 붙여준 멸칭이다.
그들이 지칭하는 '꼰대'는, 1990년대에 혜성같이 나타난 괴물세대인 X세대에게로 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당시 10대 후반이었으며, 그 전세대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기준을 지니고 있어서 세대소통이 불가능하며 어떤 방식으로 튈 지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X란 명칭이 붙었다. 그 세대(1970년대생)가 30년만에 '라테세대'가 된 셈이다. '괴짜 10대'들 또한 세상살이의 사연많은 이력이 붙으면서, 전시대와 급속도로 닮아간 결과일 것이다.
'라테는 말이야'가 입에 붙은 까닭은 뭘까. 자신의 경험이 소중해서라기 보다는 현재 봉착하고 있는 시간에 대한 다양한 스트레스 때문에 시간의 거처를 과거의 어느 지점에 묶어둠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찾으려는 본능에 가까운 행위로 볼 수 있다. 이 말 속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그가 익숙했던 것들과의 급속한 결별에 대한 불안감과 더욱 알 수 없어지는 미래에 대한 회피 본능 같은 것들이 겹쳐진, 착잡한 심리학이 들어있다.
X세대는 90년대 이후에 닥친 IMF구제금융 위기(1997년)와 금융위기(2008년) 등 모진 국가적 시련을 겪으면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일인지를 체득하게 된다. 직장의 대량감원의 시련과 궁여지책으로 나선 창업의 거듭되는 실패로 어마어마한 부침을 겪는다. 그러면서, 10대 때의 그 자유로움과 발랄발칙함과 뛰어난 창의적 도전의식을 모두 마음 저 아래로 밀어제쳐 놓게 됐을 것이다. 남는 것은 모진 태풍 속에 살아남은 추억들이다. 그것보다 값진 것은 없어보일지 모른다. 그런 X세대가, 세상의 판이 완전히 바뀐 디지털문명에서 자라고 있는 밀레니얼세대를 보며 하는 말이 '라테는 말이야'다.
그걸 듣는 밀레니얼의 귀는 얼마나 따분하겠는가. 지난 고통의 가치를 공감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전환기인 지금의 삶 또한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없고 기회도 드문 세상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사회에 쏟아지는 '밀레니얼 20(트웬티)'는 10대 이후부터 급속히 보수화되어 있는 세대가 아닌가.
그 보수화는, 이전의 체제적인 기득권의 보수성향이 아니라, 자신의 안락과 안정감에 삶의 중점을 두며 소소한 사치와 취향에 몰두하는 성향이다. 밀레니얼세대가 바라보는 꼰대는, 현실적으로 안전판이 되어주지 못한 채 기성세대로 앉아있는 그들에 대한 일정한 불만을 깔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사회신고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누가 만들었나를 되묻는, 원망 섞인 질문이일지도 모른다.
디지털문명은 흔히 신세계처럼 묘사되지만 실상은 또다른 격변사회를 예고하는 긴장감을 피할 수 없다. 그 처음은 고단하고 난감하다. 거기에 최근 심화된 정치적 변동에 따른 갈등과 경제적인 침체 또한 이제 막 본격적인 경쟁세상에 진입하는 그들로서는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선배 세대들의 말을 믿지 못하는 까닭은, 구호와 결과가 너무 다르고 약속과 실행이 판이하기 때문인 점도 있다. 거기다 남에게 하는 말과 자신 스스로 지키는 것이 따로 노는 경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걸 이제 뻔히 들여다 봤고 알 건 다 아는데, '라테 이즈 호스'나 입버릇처럼 뱉는 꼰대들이 마뜩할 리가 없다. 밀레니얼 세대는 지금 선배세대의 '고생자랑'이 싫다. 그건 대화도 아니지 않는가. Latte is horse는 거품 속을 뛰노는 말일 뿐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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