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선을 지낸 '정치 9단' 박지원 단국대 석좌교수(전 민생당 의원)는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제안 후 국민의 정부 핵심 정책인 '정보통신(IT)·과학 강국 플랜'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직후인 1998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경제활력 제고 방안으로 '과학기술부' 승격과 '벤처특별법' 개정 등을 추진, 지식 정보화 강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관련기사 20면>
박 교수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집무실에서 본지와 가진 대담 형식의 인터뷰에서 "DJ는 5대 그룹과 수시로 소통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국민의 정부 당시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DJ의 최측근 인사다.
이 같은 비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DJ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배워야 할 것을 한 가지씩만 꼽아달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
그는 "국민의 정부 때 5대 그룹 총수와 청와대 만찬이 있었다. 이 회장과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이었던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고인이 된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는데, DJ가 한분 한분에게 의견을 구했다"며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미래 먹거리를 걱정하면서 '정보화와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이 회장이 '대통령님이 정보화 산업을 일으켜 앞으로 20∼30년은 먹고살 수는 있지만, 문제는 이후입니다. 과학기술에 과감히 투자한 뒤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시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며 "이후 DJ가 과학기술부 등을 강화했다"고 부연했다.
박 교수는 "(DJ 집권 후) 20∼30년간 IT 산업으로 먹고산 것"이라며 "이후 (보수 정권이) 과학기술을 홀대했다. 지금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에서 우리가 얼마나 뒤처졌느냐"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DJ 정부의 IT·과학 강국 정책이 대기업과의 소통에서 시작했다고 봐도 되느냐'고 묻자, "DJ는 감옥에 있을 때도 정보화 사회를 예견한 앨빈 토플러의 책을 탐독하면서 미래를 준비했다"며 "(재임 기간) 토플러뿐 아니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 등도 청와대로 초청했다"고 말했다.
DJ와는 달리, 문 대통령은 경제단체 초청 때마다 전경련을 배제했다. 박 교수는 문 대통령을 향해 "DJ의 정보화와 국민통합을, 노 전 대통령의 격의 없는 소통을 각각 배워야 한다"며 "마지막까지 항상 겸손해야지 오만하면 한 방에 훅 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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