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는 배낭족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세계 20대 여행지가 5곳이나 있고, UNESCO가 공인한 2개의 세계자연문화유산을 포함하여 모두 8개의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9년도에 1,8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베트남을 찾았다. 유사 이래 최대 호황이었다. 2019년은 베트남이 아시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관광지, 아시아 최고 음식 여행지, 세계 최고의 골프 여행지로 선정된 기록적인 해였다. 베트남 관광업이 기록적인 호황을 누린 데에는,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개최된 북한과 미국의 제2차 정상회담으로 세계의 이목이 베트남으로 집중되어 큰 홍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관광업 호황은 금년 초부터 발생한 예기치 못한 코로나 19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관광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향후 코로나 대유행이 종식되어 국제간의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베트남 관광업 역시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베트남은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해서 관광인프라를 구축하고, 관광서비스 품질을 개선하여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관광산업이 베트남 경제발전에 견인차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할롱만 - 1969개의 섬
베트남의 절경인 할롱만(下龍灣)은 1994년에 세계자연유산, 2000년에 세계지질유산으로 각각 공인받았다. 프랑스 관광회사가 발행한 자료에 의하면, ‘인도차이나의 무수한 자연 경관 중에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가장 많이 불러일으키는 곳이 할롱만이다. 북부만(통낀만)에 위치한 할롱만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경치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CNN은 베트남에서 반드시 가보아야 할 곳으로 할롱만을 꼽았다. 할롱만에는 약 1,553㎢의 면적에 총 1,969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뿌려 놓은 듯이 흩어져있는 시적이면서도 웅장한 광경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섬 가운데 약 40개의 섬은 유인도이며, 989개의 섬에는 이름이 있고, 980개 섬은 아직 이름이 없다. 섬의 모양을 따라 두꺼비 섬, 말안장 섬, 닭싸움 섬... 등으로 작명되었다. 정상에 전망대가 있는 띠똡섬은 호찌민 주석이 1962년 (구)소련의 우주비행사 게르만 티토프(Gherman Titov)와 함께 섬을 방문한 기념으로 티토프의 이름을 따서 작명되었다. 티토프는 1961년 보스토크 2호를 타고 세계 2번째로 유인 우주비행을 한 사람이다. 바위 섬 대부분이 약 5억 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용의 후예라고 믿는 베트남 사람들의 전설에 의하면, 아주 먼 옛날에 나라를 세웠을 때 외적의 침략을 받았다. 이에, 옥황상제가 어미용에게 새끼 용들을 데리고 지상으로 내려가 베트남 사람들을 구하고 외적을 물리쳐 주라고 명하였다고 한다. 적의 선박이 먼 바다로부터 바닷가로 접근해오자, 용의 무리가 갑자기 불을 뿜어 침략자들의 배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 외적을 물리쳐 주고 난 뒤, 용의 무리가 베트남사람들을 만대에 걸쳐 보호해 주기 위하여 승천하지 않고 머무른 곳이 현재의 할롱만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용의 비늘 하나하나가 기암괴석의 섬이 되었다고 한다. 할롱만의 경치는 4계절이 다르고, 하루에도 시간에 따라 변하여 365경이 있다고 하며, 영화 ‘인도차이나’의 촬영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유람선을 타고 기암괴석의 섬과 석회암 동굴을 구경하면서 선상에서 삶아먹는 꽃게와 새우의 싱싱한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퐁냐-깨방 국립공원은 UNESCO로부터 2003년에 세계자연유산으로 공인받았다. 총면적이 85, 754헥타르에 달하는 퐁냐-깨방 국립공원은 하노이로부터 남쪽으로 500km 떨어져 있고, 중부 베트남 꽝빈성 동허이로부터 서북쪽으로 50km거리에 있다. 약 4억 년 전 고생대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퐁냐-깨방 국립공원에는 크고 작은 300개의 석회암 동굴이 있고, 동굴의 총길이가 80km 이상으로, 동굴 안에 13km달하는 강, 멸종위기 동식물이 잘 보존되어있는 생태 공원이다. 퐁냐(風牙)는 동굴로부터 바람이 불고, 종유석이 이빨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과 산봉우리들이 관청처럼 우뚝 서있다는 뜻에서 퐁냐(峰衙)로 불렀다는 주장이 있다. 2009년 4월에는 영국 탐사대가 이곳의 선둥 동굴이 길이 5km, 높이 200m, 폭 15m로 세계 최대 규모의 석회동굴임을 확인한 바 있다.
◼고도 후에 유적지
고도 후에 유적지는 1993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인받았다. 후에는 꽝쭝(光中)이 즉위한 1788년 떠이선(西山) 왕조 때부터 1945년 베트남 마지막 왕인 바오다이가 호찌민이 주도하는 8월 혁명으로 퇴위할 때까지 왕도(王都)로써의 역할을 다했다. 일찍이 UNESCO의 한 관계자는 후에시를 ‘극찬해야 할 건축 유적도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후에의 문화·예술적 가치를 아주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말이다. 유유히 흐르는 흐엉(香)강 주위에는 왕궁, 사원, 왕릉과 기품어린 건축물이 즐비한, 차분한 분위기의 도시이다. 후에는 대도시의 번화함이나 소음이 거의 없어서 조용한 궁궐 안을 걷고 있으면 마치 응우옌(阮)왕조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1802년에 응우옌(阮)왕조를 건국한 자롱 왕이 1805년에 경성(京城) 건설을 시작하여, 1832년 민망 왕 때 완공하였다. 후에의 주요 문화유적으로 왕성, 국기를 게양하는 깃대, 국자감, 왕들이 풍작을 빌고 몸소 적전(藉田)을 가는 친경의식을 하고 나서 휴식을 취하고, 독서, 시를 짓고 여유를 즐겼던 용안전, 궁중 미술박물관, 문묘, 후에시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 티엔무사(天姥寺), 왕능 등이 있다.
◼ 호이안 - 살아있는 건축박물관
호이안은 살아있는 건축박물관으로 199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인받았다. 호이안은 다낭시로부터 동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인구 10만 정도 규모의 조그만 도시이다. 길은 좁고 건물은 2층 미만의 낮은 그리고 지붕의 기왓장에는 이끼가 잔뜩 끼어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호이안은 하이포, 호아이포 등으로 불리었고, 유럽 상인들의 지도에는 Faifo, Haipo로 지명이 표시되기도 하였다. 16세기부터 17세기 기간에는 국제적 무역항으로 번성했었고 중국, 일본, 아랍, 이란의 상선들이 드나들어 발달하였으나, 강줄기의 흐름이 바뀌고 토사가 흘러들어 강 수심이 낮아지면서 항구로서의 면모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주요 교역품은 침향, 계피, 옥, 상아, 수정, 비단, 별갑(鱉甲:자라의 등껍질), 자개 등이 주로 교환 되었다. 베트남의 고대 건축양식을 연구할 수 있는 1천여 개의 유적들이 즐비한 이곳은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고풍스러운 관광지이다. 호이안에는 16세기에 일본 상인들이 건축한 일본교(矯) 거리가 잔존해 있고, 일본교(矯)는 지붕이 있는 다리로, 다리에는 작은 절이 세워져있다. 다리 양쪽은 원숭이와 개의 상이 수호신처럼 서있다. 다리 동쪽이 일본 상인들이 거주했던 지역이다.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에 일본에 포로로 끌려가 납치되었다가 일본 상인의 종자가 되어 1604년-1606년까지 매년 안남(安南-베트남의 옛 이름)국을 왕래하였던 경상도 진주사람 조완벽(趙完壁)은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베트남에서 환대를 받은 곳이 호이안이다.
◼미선 성지(聖地)-인도교 문화유산
미선 성지(聖地)는 199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인받았다. 호이안에서 서남쪽으로 50km 떨어져있는 곳에 4세기에서 12세기까지 크고 작은 탑을 벽돌로 신축과 증축 개축을 거듭한 짬빠국 유적 70여개가 남아있다. 이 유적은 인도문화의 영향을 가장 깊이 받은 건축물이고 링가와 시바신을 숭배하는 성지유적지이다. 낮은 구릉으로 둘러싸인 지름 2km의 숲속에 있는데 짬빠국의 제례 장소, 왕과 왕족들의 묘지이며, 동남아에 있는 인도교 사당의 중심이고, 베트남에 있는 유일한 인도교 문화유산이다. 미선 성지(聖地)는 동남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의 보르부드르, 미얀마의 바간,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트, 태국의 아유타야 사원과 비교되는 문화 유적으로, 짬빠국이 베트남에 병합되면서 정글에 방치되었던 미선 성지는 1885년에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천년고도 탕롱성
탕롱(昇龍)은 하노이의 옛 이름이다. 탕롱성은 당나라가 안남도호부를 세우고 베트남을 지배하던 7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리(李)왕조 시기에 가장 많은 발전을 하였고, 쩐(陳), 레(黎), 응우옌(阮) 왕조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09년에 닌빈성 호아르에서 리(李)왕조를 건국한 태조는 1010년 7월에 천도하고, 다이라 성을 탕롱(昇龍)으로 개명하였다. 리(李) 태조가 다이라 성에 왔을 때, 황용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것을 보고 길지로 여겨,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고, 용이 승천한 곳이라 의미로 탕롱(昇龍)으로 개명하였다. 궁전을 건설하고, 궁전을 보호하기위한 성을 축성하여 용성(龍城)이라고 하였는데, 이 용성이 바로 오늘날의 탕롱성이다. 탕롱은 1831년 민망 왕 때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하노이 성(省)으로 개편되었고, 1945년 9월 2일 호찌민 주석이 독립선언과 함께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수도가 되었다. 하노이는 금년이 도읍지가 된지 1010년이 된 천년고도이다. UNESCO에서는 1999년 7월 16일 하노이를 “평화의 도시” 지정하였고, 탕롱성은 201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인받았다.
◼호씨 왕조 성(城)
UNESCO에서 2011년 6월 27일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인한 호씨 왕조 성(城)은 호꾸이리가 세운 다이우(大虞)국의 성으로, 서도(西都) 또는 서경(西京)이라고 불렀고, 현재 북부 베트남의 타인호아 성(省)에 있다. 호 왕조에서 서도가 도읍지가 되면서, 탕롱을 동도(東都)라고 개명했었다. 성은 석축으로 되었고, 한 면의 길이가 약 877-880m, 높이 6m, 둘레 3.5km에 달하는 사각형으로 동남에 남아있는 유일무이한 독창적인 성이다. 돌덩이 하나의 평균 무게가 10-16톤이고, 26톤에 이르는 것도 있다. 불과 3개월 만에 축성되었지만, 아주 견고하게 축성되어, 6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거의 완벽하게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호씨 왕조 성(城)은 정치, 경제, 문화적인 중심으로써의 역할보다는 군사 방어에 유리하도록 지세가 험한 곳에 건축되었다. 이는 당시 호꾸이리가 쩐(陳) 왕조를 무너트리고, 새 왕조를 세우자, 쩐 왕조 복위세력이 중국 명(明)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여, 명나라 군대의 침략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에서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나라의 침략을 받아 호 왕조는 7년 만에 망하고, 20년간에 걸친 명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동반 지질고원
동반 지질고원은 세계 20대 여행지에서 4번째 가고 싶은 곳으로 선정되었다. UNESCO에서 2010년 10월 3일 “동반 세계지질공원”으로 공인한 동반지질공원은 해발 평균 1000~1600m이며, 최고봉은 매오박 산(1,971m)이다. 히말라야산맥 동쪽 끝자락의 연장선에 있는 공원은 베트남 최북단 하장성의 매오박, 동반, 옌민, 꽌바 4개현에 펼쳐져 있으며, 동남아에서는 2번째로 공인 받은 베트남 유일의 지질공원이다. 캠브리안기인 약 5억5천만 년 전부터 생성된 카르스트 지형으로, 베트남 최북단으로 국기대가 있는 룽꾸에서는 5억4천만 년 전의 화석이 발견되었고, 아시아 흑곰, 동아시아 영양, 다양한 종류의 조류를 포함 독특한 동식물군이 서식하고 있다. 베트남의 54개 민족 가운데 20개 소수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는 하장성의 동반 지질공원은 소수민족의 전통 문화와 야생차, 당도 높은 오렌지, 토종 꿀, 1천여 종의 한약재가 생산되고 있다. 특히, 계피, 생강은 크고 향이 짙어 품질이 우수하고, 야생 녹차인 산뚜옛(山雪)차는 동반 지질공원 일대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이다. 10월 메밀꽃이 피고, 세계 최고 수준의 계단식 논에 벼가 익어갈 때 하장성을 여행하는 것은 굽이굽이 도는 산악 도로의 아찔한 절경과 함께 관광객을 선경으로 안내하게 될 것이다.
베트남의 관광산업은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 2020년 Hotelworld에서 선정한 가고 싶은 세계 여행지 20곳에 베트남의 할롱만, 동반 지질공원, 퐁냐-깨방, 닌빈, 꾸이년 지역 5곳이나 포함되어 있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 베트남은 세계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관광지, 세계 최고의 음식 여행지, 세계 최고의 골프 여행지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천혜의 자연 경관, 다양한 음식과 볼거리에 저렴한 여행비가 관광객의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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