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팔 들면 작곡만 했고, 두팔 들면 작사작곡 다 했소
나훈아는 전쟁둥이(1950년 2월11일생)다. 전쟁이 나던 그해 봄이 오던 무렵에 부산서 태어나, 넉달도 안되어 전쟁의 포화를 겪었다. 전후의 황폐한 나라에서 혹독한 유년기를 겪었고 4.19와 5.16으로 이어진 격변기를 소년기에 겪었다. 16세였던 1966년 '천리길'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1970년대 남진과 쌍벽을 이루며 가요계의 아이콘이 되었다.
올해 2020년 9월30일 비대면 방송공연을 화려하게 성공시켰으니 무려 54년의 가수인생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할 만하다. 그는 여러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히트곡이 120곡이 넘어 국내 최다이며, 노래방 반주기에 수록곡이 가장 많은 가수이다. 앨범은 200장 이상 냈고, 자작곡이 800곡을 넘는다. 그를 가수라고 하지만, 작사와 작곡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지니고 있는 르네상스맨에 가깝다. 콘서트에서 한쪽 팔만 들면 자신이 작사만 했거나 작곡만 했던 노래이고, 양팔을 다 들어올리면 작사작곡을 다 한 작품이라는 독창적인 '사인'도 만들어냈다.
그가 많은 가수들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점은, 수많은 곡들을 통해 다양한 실험정신을 내보인 것에도 있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문화 예능적 활동 자체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는 점도 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길 원한다.“('백범일지' 중에서) 나훈아는 식민지 시절 김구가 간절히 꿈꾼 '문화국가론'을 실천적으로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다.
트로트 르네상스는 회고조의 뽕짝유행이 아니다?
최근 코로나19를 맞아 한국이 문화를 중심으로 세계의 선도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유튜브로 데뷔하고 SNS로 팬덤을 확보한 BTS가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차지한 것은 한국 가수들이 우연히 거둔 성과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읽고 인류를 움직이는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춘 이 나라의 '문화적 역량'이 빛을 발하고 있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는 '사이코지만 괜찮아'라는 드라마가 압도적 아시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일이나 작은 벤처 스마트스터디가 만든 뮤직비디오 베이비샤크가 63억뷰를 달성하며 유튜브 역대 2위를 기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를 중심으로 불꽃처럼 일어나고 있는 '트로트 르네상스'도, 불황기의 반짝 유행 이상의 어떤 열풍으로 감지되는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 트로트는 일본 엔카의 아류로 전후(戰後) 시대의 참담을 애상으로 녹여낸 시대적인 유행으로 읽혀여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방송들을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트로트 경연과 오디션들은 '트로트'에 대한 그간의 정의를 바꾸며, 오히려 한국적인 맛을 지닌 세계적인 무엇으로 진화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낡고 퇴폐적인 '흘러간 노래'가 아니라, 젊은 층이 그 노래 속에서 깊이있는 감정의 울림과 이 나라 특유의 애절한 서정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블루를 달랠, 복고풍의 정서적 치료제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상의 ‘한국 특유의 폭발력’을 지닌 문화 ‘다이너마이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 한가위를 맞아 화려하게 등장한 나훈아는 그 맥락에서 대중을 흔드는 트로트의 파워를 재확인해준 계기를 만들었다.
나훈아는 오래전 무대에서 ‘트로트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유튜브 영상으로 그때의 말을 다시 들어보니, 평생 트롯을 하며 살아온 그의 통찰과 비전이 놀랍다. 그는 한국의 트롯이 일본에서 건너왔으며 일본노래라고 주장하는데 대해, 왜 트로트이 진정한 우리 노래일 수 밖에 없는지를 문명적인 관점으로 역설한다. (나훈아의 그 뜻을 널리 알리는 차원에서 글로 옮겨 싣는다.)
왜 뽕짝이 우리 노래일 수 밖에 없나
그곳의 기후가 노래를 만든다 = ”우리 대중가요 뽕짝에, 우리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후, 더운 지방에는, 하와이 같은 곳에 가면 “디스 이즈 더 모먼트...”라며 엉덩이를 흔들어가며 아주 슬로(slow)한 노래를 부릅니다. 또 저쪽 소련이나 북극의 추운 지방에 가면 그렇게 천천히 부르는 게 아니라 온 난리를 칩니다. 앉았다 일어났다. 왜 그러느냐. 추운 지방에서 하와이 노래를 부르면 얼어죽습니다. 이렇게 엉덩이를 돌리다가 얼어 죽어버립니다. 또 더운 지방에서 이거 하다(앉았다 일어났다) 난리를 치면 태양열에 땀내다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음악이란 그 나라에 맞게끔, 대중이 좋아하도록 형성이 되는 겁니다.“
생활문화가 노래를 만든다 = ”한국사람은 옛날부터 젓가락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 일본이나 나라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걷는 문화’입니다. 옛날엔 거의 걸어다녔습니다. 왜 뽕짝은 4분의 2 박자냐 하면 걷는 것 하나 둘 셋 넷 이것이 우리와 맞고, 저녁에 밥 먹고 술 한 잔 먹고 나면, 젓가락으로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 이게 잘 됩니다. 미아리 눈물고개 임이 넘던 이별 고개...가지마오 가지마오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이것을 밤새도록 해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럴 정도로 우리는 이 리듬이 생활문화 속에서 배어있습니다. 한국노래도 그렇지만 일본도 걸어다니고 일본도 젓가락을 쓰니까. 그래서 우리 리듬이 뽕짝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한테 맞으니까.“
언어가 노래를 만든다 = ”일본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어떻게 부르느냐 하면 “나!훈아”(맨앞의 “나‘에 액센트를 줘서)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제 이름 한번 불러봐 주시기 바랍니다. ”나훈!아“(중간의 ’훈‘에 액센트를 줘서). ”훈“자에 액센트가 있습니다. 나훈아란 이름을 넣고 멜로디를 만들면 일본사람들은 ”나!훈아“로 ”나“자 음을 높여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훈“자를 높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말, 언어 때문에 멜로디가 절대로 비슷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 얘기하는 것이 말입니다. 잠깐 세계지도 한번 보여주세요. 한국과 일본을 클로즈업 해보세요. 일본은 4면이 바다이고, 한국은 3면이 바다입니다. 그래서 한국 노래는 대륙성 기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노래는 우리 노래보다 상당히 부드럽습니다. 우리는 한번씩 꽉 꽉 찔러주는 데가 있습니다. 이게 어디냐 하면 저쪽 만주하고 소련 쪽입니다. 저는 이 뽕짝이 우리 것임을 이 자리에서 천명하는 바입니다.
미국에도 뽕짝이 있다 = 미국 뽕짝은 어떤 뽕짝이냐, 미국은 우리 남쪽의 약 97배라 합니다. 그 사람들은 좀 오버해서 집에서 화장실에 갈 때도 말 타고 다녀야 합니다. 미국사람들은 이 리듬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말에서 나왔습니다. 잠깐 말 발굽 소리 한번 들려주십시오.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여기에 맞는지 제 말이 맞는지 한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올머스트 헤븐 웨스트 버지니아 블루릿지 마운틴즈 셰넌도어 리버...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 말까지 등장시켜 한국 뽕짝을 이해시키고 싶었던 이 마음을 여러분들이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옛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옛것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옛것을 자꾸 닦아서 세계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뽕짝을 사명감을 갖고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래 뽕짝도 그렇게 하니 새롭구나 하는 생각이 드시면 알아서 해주십시오.”
나훈아 신드롬은, 한국 트로트가 '세계적인 한국의 것'이라는 꿈을 이루려는 반전의 용틀임의 맥락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의 노래맛을 보며 한가위를 지내면서 우리를 한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이 긴박한 시절에 이토록 지나간 것들의 시시비비와 정치득실의 샅바싸움에 골몰하고 있는 무리들의 허튼 우국충정이, 가수 나훈아의 저 '미래지향적 철학'을 따라갈 수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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