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년 만에 막을 내린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에서 ‘갸루상’, ‘앵그리성호’ 등의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줬던 개그맨 박성호. ‘화가난다(애니뭘), ’갸루상이무니다(멘붕스쿨), ‘이의를 제기합니다(봉숭아학당)’ 등의 유행어도 다수 남겼다.
개콘은 끝났지만 개그맨들은 웃음을 주기 위해 또 다른 무대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개그맨 박성호와 함께 개그에 대한 애정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Q.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A.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남을 웃기게 하는 재능을 어디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 중이에요. 그래서 마음 맞는 후배들과 유튜브와 방송 등을 하면서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어요.
A. 사람들과 만나서 소통하는 것도 좋지만, 전 세계가 언택트로 바뀌어 가고 있잖아요. 거기에 발맞춰서 개그맨들도 무대에서 웃길 수 없다면 인터넷을 통해 즐겁게 하는 게 개그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시대에 따라 변환점이 있듯 지금이 4차산업혁명 시대로 가는 길목이라고 생각해요. 변화에 발맞춰서 가지 않으면 도태되는 거죠. 그래서 개그맨들이 변화에 적응해나가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Q. 개콘 종방의 원인으로 공중파에서의 제약을 꼽는 시각도 있었는데요.
A. 제약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예전에 스타가 나왔던 것은 개그가 재밌고 특출나거나 번뜩이는 아이디어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좋아서 그런 것이거든요. 근데 좋아해줄 만한 사람이 안 나타나는 거죠.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명맥이 꾸준하게 20년 넘게 이어지다가 더이상 좋아해줄 사람이 안 나오니까, 당연히 눈과 귀가 멀어진 거죠.
Q. 앞으로 개그맨들은 개그 외에 무엇을 준비해야 될까요?
A. 시대가 바뀌고 있잖아요. 인터넷상에서 웃길 수 있는 것들을 빨리 찾아야죠. 공개 무대가 아닌 스탠드업이나 몰래카메라, 토크쇼같이 분야는 다양해요. 그중에서도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분야를 하는 게 좋죠.
Q. 개콘을 하면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A. 개콘에서 갸루상, 앵그리성호, 스테파니,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 강기갑 의원, 형사, 여장,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양한 역할을 했어요. 아무래도 무대에서 웃겼을 때, 즐겁게 반응해주시는 것에 대한 보람과 기쁨이 기억에 남죠. 저로 인해서 한 분이라도 웃거나 즐거웠던 추억이 있으셨다면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행복이에요. 여장을 하거나 독특한 분장을 했었을 때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냥 밋밋하게 하는 것보다 과한 분장이 제게 맞는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Q. 어떤 분야를 잘하고 좋아하세요?
A. 공개 무대에서는 과도한 분장, 액션, 말투들을 위주로 했어요. 이제는 사람들이 임의적으로 만들어낸 설정이나 대본보다는 짜여 있지 않은 날것에 호기심을 갖고 귀 기울이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날것의 토크 등을 소소하게 해보고 있어요. 이야기보다는 그 사람에 대해서 좋고 나쁨이 갈리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슬픈 얘기를 하든 기쁜 얘기를 하든, 재미없는 얘기를 하든 귀를 기울이더라고요. 내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꾸준하게 어필을 해야 되거든요. 팟캐스트도 꾸준히 3년째 작업을 해왔고 거기에 따른 팬덤도 생겼어요.
Q.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세요?
A. 저도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면 즐겁고 재밌고 유쾌한 사람을 좋아하죠. 재밌는 사람은 그 사람 자체가 원래부터 재밌는 거지, 대본에 의해서 임의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건 물리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타고나거나 꾸준한 노력에 의해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Q. 웃음을 책임지는 개그맨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될까요?
A. 길은 굉장히 많죠. 엔진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면 비행기 엔진도 있고, 트랙터 엔진, 냉장고 모터 엔진도 있잖아요. 그렇듯이 웃음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공감능력을 갖고 있는 개그맨들은 즐거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거니까 꾸준히 길을 찾고 만들어 나가야 되는 거죠. 후배들에겐 남들이 할 수 없는 걸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어요. 남들이 재밌다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개성을 빨리 찾는 게 중요하죠.
Q. 웃찾사의 경우 폐지된 후 리턴즈라는 자체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후배들과 함께 유튜브 웹예능 같은 자체 콘텐츠를 만들 계획은 없나요?
A. ‘과연 시청자들이나 네티즌들이 좋아할까’라는 의문이 들어요. 유튜브에 옛날 것들이 너무나도 자세하게 다 나와요. 그래서 그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Q. 개그맨이 된 지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대중들의 웃음 코드가 어떻게 바뀌었나요?
A. 20년 동안 대본에 의해 짜여진 것들을 많이 보다 보니까 거기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수준이 높아졌어요. 이미 그분들도 그 정도의 퀄리티와 능력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 개콘이 나왔을 때는 “저걸 어떻게 짰지?”, “어떻게 저런 반전을 줬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누구나 카메라로 촬영하고 대본도 쓰니까, 이미 그런 능력이 올라간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는 일반인들이 할 수 없는 걸 해야죠.
Q. 박성호의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A. 돌이켜보니까 감사하게도 네 번 정도 전성기가 있었어요. 신인 개그맨 때 ‘오빠만세’라는 걸 통해서 이름을 알렸어요. 2004년도에 ‘다중이’ 할 때, 2009년에 ‘남보원’ 할 때, 2012년도에 ‘가루상’ 할 때 거의 4년의 주기가 있더라고요. 황현희, 김대범이 전성기 때도 함께했고, 지금도 같이 새롭게 올라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Q. 본인은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인가요?
A. 꾸준히 제 몫을 했던 선배라고 생각해요. 저랑 같이 코너를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도 많았거든요. 시청자들에게도 “쟤는 나오면 좀 재밌어”, “쟤만의 개그가 있어”라는 말을 들었고요.
Q. 누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줬나요?
A. 아무래도 시청자분들이죠. 눈높이에 맞춰서 변화도 모색하고 시도와 도전도 많이 해보고 있어요. 그래서 오로지 시청자분들을 위해서 개그를 한 거니까, 시청자분들이 영향을 많이 주신 거죠.
Q. 스승이 있나요? 언제 자신이 스승을 닮았다고 느끼세요?
A. 함께 했던 후배들과 동료들이 제게 스승이고 가르침도 많이 받았어요. 후배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젊은 친구들은 어떻게 감성을 찾아가고 뭘 통해서 영감을 얻는지를 배워요, 사적인 시간에 많이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게 제겐 공부예요.
Q. 개그맨은 대중을 웃게 합니다. 개그맨에게 웃음을 주는 건 누구인가요?
A. 저희들끼리 있을 때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이미 저희들은 직업병이 생겨서 남들이 즐거워하는 것에는 흥미를 못 느껴요(웃음). 그리고 우리끼리 즐거울 때 일반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Q. 개그맨이 된 이유가 뭔가요?
A. 저는 코미디 키즈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코미디 프로그램을 워낙 좋아해서 막연하게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학창시절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죠. 지금도 개그맨이니까, 새로운 플랫폼에서 많은 분을 즐겁게 하는 게 꿈이에요.
Q. 선배로서 개그맨을 꿈꾸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어렵고 다 힘든데 그걸 극복해나가야죠. 사실은 우리나라가 안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개그맨 되고 나서도 IMF 터지고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항상 어려우니까 그 어려움 속에서도 각자의 행복과 보람도 찾고, 하고 싶은 일도 찾고 돈벌이도 찾아야죠.
Q. 언제까지 개그를 하실 건가요?
A. 100세 시대잖아요. 죽을 때까지 해야 될 것 같아요. 지금은 정말 다양한 콘텐츠들이 사랑받고 있는 걸 보니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보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웃음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경제적으로 어렵고 코로나로 인해서 전 세계적으로 총체적 난국인데 이럴 때일수록 웃음을 주는 사람들이 더욱더 힘을 내서 많은 국민에게 즐거움을 줬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희들이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그만큼 뒤에서 많이 울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웃음이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저희가 슬픔은 감당할 테니 즐겁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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