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로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최씨네 리뷰>는 필자가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까지 녹여낸 영화 리뷰 코너다. 관객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편안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때마다 유행하는 것들이 있다. '고쿠센' '아름다운 그대에게' 같은 일본 드라마가 대유행 하던 때가 있었고, '얼짱'이 연예인보다 더 인기가 많았을 때도 있었다. 버터 맛 나는 감자칩이 대란을 일으켰고, 모든 의류 업체가 롱패딩을 내놓기도 했다.
영화도 유행이 있다. 한때는 조직폭력배를 소재로 한 영화들만 나왔고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범죄영화가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누아르 장르만이 살아남던 때도 있었고 멀티캐스트를 내세운 이른바 '떼주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영화계는 다양한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됐고 그에 따라 시선도 변화했다. 장르도 다양해졌고 소재는 무궁무진해졌다. 물론 스테디셀러도 있지만 결국 들여다보면 시대의 흐름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 시절 유행한 것들이 이제 와서 멋쩍고 민망하게 느껴지는 건 시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니까. 아무리 유행이 돌고 돌아도 '옛것'을 그대로 끌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몇 년 사이 여성, 아이, 노인을 보는 시선과 태도에 큰 변화가 생겼고 문제점을 인식할 줄 알게 됐다. 시대가 변했다는 이야기다.
지난달 25일 영화 '용루각: 비정도시'(감독 최상훈, 이하 '용루각')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를 보곤 조용히 크랭크인 시기를 확인했다. 개봉 시기를 놓쳐 몇 년씩 묵혔다가 개봉하는 영화들도 있지 않나. 어느 정도 감안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도루묵이었다. '이게 올해 찍은 영화일 리 없어…!' 지난 7월 크랭크인한 영화였다.
한적한 동네에 자리한 중국집 용루각. 사장님을 비롯해 직원들이 말수가 적다는 점 외에는 특이할 게 없는 평범한 식당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대리 복수'하는 해결사들. '용루각' 리더 곽사장(정의욱 분)을 주축으로 에이스 철민(지일주 분), 그의 라이벌 용태(배홍석 분), 전략가 지혜(박정화 분), 브레인 승진(장의수 분)으로 꾸려져 법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을 찾아 직접 응징에 나선다.
어느 날 용루각의 정보원이 대기업 아들 회장 재범(강율 분)이 연루된 사망 사건을 전달하며 응징을 부탁한다. 마약과 폭력을 일삼는 안하무인 재범이 순진무구한 연예인 지망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 용루각 에이스인 철민은 피해자가 자신이 여동생처럼 여기던 예주(조현 분)라는 사실을 알고 분개한다.
영화 '용루각'은 장르 영화에서 답습되었던 요소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 같은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부터 구성, 캐릭터의 성격, 쓰임새 등 거의 모든 게 이미 익숙하게 봐왔던 것투성이다. 개구진 성격을 가진 천재 해커가 CCTV를 들여다보며 에이스의 동선을 확보해주는 일이나 갈등 고조를 위해 팀의 주축인 리더가 희생하는 일 등이 그렇다. 천재 해커인 승진이 "선수입장"을 외치지 않은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구식이다. 마약, 성폭력, 부패 권력, 폭력 등 자극적인 것들을 모아놓았지만, 자극을 위한 자극처럼 보일 뿐 문제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갑질'에 관한 분노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는 최상훈 감독의 말이 그리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는 못한다. 게다가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도 소모품으로만 쓰인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꿋꿋하게 꿈을 키워가는 연예인 지망생은 철민의 동기부여를 위해 처참히 희생되고, 극 중 재범은 "더럽히는 맛이 있는 하얀 도화지 같은 여자"를 찾아대며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용루각 멤버 지혜마저도 철민과 용태의 갈등을 조장하는 불씨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1편과 2편을 동시에 제작해서였을까? 영화는 주어진 시간 내 충분한 설명도 속 시원한 결말도 맺지 못한다. 1편과 2편에 각각 다른 빌런이 등장하고 이에 맞서는 용루각 멤버들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조율'이 원활하지 못했다. 특히 1편의 악인들은 내내 비장했던 분위기와 달리 성급한 결말로 관객들을 맥빠지게 한다. 무시무시한 악인 호철은 증발해버리고 그의 수하인 민기도 도리 없이 죽어버린다. 재범의 악행은 허무하게 세상에 드러나 어떤 짜릿함이나 카타르시스도 끌어내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용루각 멤버들의 서사나 관계성은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다. 철민과 용태, 지혜, 승진의 관계와 갈등 등은 관객이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주인공들에게 정도 채 들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2편 빌런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신들의 밤' 이필모란다.
그럼에도 희망을 걸어보는 건 '낯선' 배우들이다. 주인공 지일주를 비롯해 그룹 EXID 출신 박정화, 배홍석, 장의수, 강율, 베리굿 조현 등 신선한 얼굴이 대거 등장해 보는 재미는 있다. 다만 신선한 재미는 있지만, 이들이 안정적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키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본격적인 액션 연기는 처음이었던 지일주,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용태 역을 맡은 배홍석, 연기자로 새롭게 도전하는 정화, 조현의 가능성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3일 개봉. 관람 등급은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은 94분이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로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최씨네 리뷰>는 필자가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까지 녹여낸 영화 리뷰 코너다. 관객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편안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영화도 유행이 있다. 한때는 조직폭력배를 소재로 한 영화들만 나왔고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범죄영화가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누아르 장르만이 살아남던 때도 있었고 멀티캐스트를 내세운 이른바 '떼주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영화계는 다양한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됐고 그에 따라 시선도 변화했다. 장르도 다양해졌고 소재는 무궁무진해졌다. 물론 스테디셀러도 있지만 결국 들여다보면 시대의 흐름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 시절 유행한 것들이 이제 와서 멋쩍고 민망하게 느껴지는 건 시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니까. 아무리 유행이 돌고 돌아도 '옛것'을 그대로 끌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몇 년 사이 여성, 아이, 노인을 보는 시선과 태도에 큰 변화가 생겼고 문제점을 인식할 줄 알게 됐다. 시대가 변했다는 이야기다.
지난달 25일 영화 '용루각: 비정도시'(감독 최상훈, 이하 '용루각')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를 보곤 조용히 크랭크인 시기를 확인했다. 개봉 시기를 놓쳐 몇 년씩 묵혔다가 개봉하는 영화들도 있지 않나. 어느 정도 감안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도루묵이었다. '이게 올해 찍은 영화일 리 없어…!' 지난 7월 크랭크인한 영화였다.
한적한 동네에 자리한 중국집 용루각. 사장님을 비롯해 직원들이 말수가 적다는 점 외에는 특이할 게 없는 평범한 식당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대리 복수'하는 해결사들. '용루각' 리더 곽사장(정의욱 분)을 주축으로 에이스 철민(지일주 분), 그의 라이벌 용태(배홍석 분), 전략가 지혜(박정화 분), 브레인 승진(장의수 분)으로 꾸려져 법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을 찾아 직접 응징에 나선다.
어느 날 용루각의 정보원이 대기업 아들 회장 재범(강율 분)이 연루된 사망 사건을 전달하며 응징을 부탁한다. 마약과 폭력을 일삼는 안하무인 재범이 순진무구한 연예인 지망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 용루각 에이스인 철민은 피해자가 자신이 여동생처럼 여기던 예주(조현 분)라는 사실을 알고 분개한다.
영화 '용루각'은 장르 영화에서 답습되었던 요소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 같은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부터 구성, 캐릭터의 성격, 쓰임새 등 거의 모든 게 이미 익숙하게 봐왔던 것투성이다. 개구진 성격을 가진 천재 해커가 CCTV를 들여다보며 에이스의 동선을 확보해주는 일이나 갈등 고조를 위해 팀의 주축인 리더가 희생하는 일 등이 그렇다. 천재 해커인 승진이 "선수입장"을 외치지 않은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구식이다. 마약, 성폭력, 부패 권력, 폭력 등 자극적인 것들을 모아놓았지만, 자극을 위한 자극처럼 보일 뿐 문제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갑질'에 관한 분노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는 최상훈 감독의 말이 그리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는 못한다. 게다가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도 소모품으로만 쓰인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꿋꿋하게 꿈을 키워가는 연예인 지망생은 철민의 동기부여를 위해 처참히 희생되고, 극 중 재범은 "더럽히는 맛이 있는 하얀 도화지 같은 여자"를 찾아대며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용루각 멤버 지혜마저도 철민과 용태의 갈등을 조장하는 불씨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1편과 2편을 동시에 제작해서였을까? 영화는 주어진 시간 내 충분한 설명도 속 시원한 결말도 맺지 못한다. 1편과 2편에 각각 다른 빌런이 등장하고 이에 맞서는 용루각 멤버들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조율'이 원활하지 못했다. 특히 1편의 악인들은 내내 비장했던 분위기와 달리 성급한 결말로 관객들을 맥빠지게 한다. 무시무시한 악인 호철은 증발해버리고 그의 수하인 민기도 도리 없이 죽어버린다. 재범의 악행은 허무하게 세상에 드러나 어떤 짜릿함이나 카타르시스도 끌어내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용루각 멤버들의 서사나 관계성은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다. 철민과 용태, 지혜, 승진의 관계와 갈등 등은 관객이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주인공들에게 정도 채 들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2편 빌런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신들의 밤' 이필모란다.
그럼에도 희망을 걸어보는 건 '낯선' 배우들이다. 주인공 지일주를 비롯해 그룹 EXID 출신 박정화, 배홍석, 장의수, 강율, 베리굿 조현 등 신선한 얼굴이 대거 등장해 보는 재미는 있다. 다만 신선한 재미는 있지만, 이들이 안정적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키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본격적인 액션 연기는 처음이었던 지일주,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용태 역을 맡은 배홍석, 연기자로 새롭게 도전하는 정화, 조현의 가능성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3일 개봉. 관람 등급은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은 94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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