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누 호날두(현 유벤투스 소속) 등 내로라하는 축구스타들을 보유한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는 2016년 11월 26일, 2016~2017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13라운드에서 선수들에게 평소와 다른 흰색 유니폼을 입도록 했다. 바로 플라스틱 옷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경기장 안내방송을 통해 A스포츠용품 기업이 인도양에 버려진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해 만든 옷이라고 설명했다. 셔츠 하나를 만드는 데 28개의 폐페트병이 들어갔다.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폐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해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린 셈이다. 지구를 지켜내기 위한 인류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됐다.
인류의 삶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페트병. 당장 보기엔 편리하고 활용성이 높은 소재로 보이나, 정작 지구를 죽이고 생태계를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국제사회도 페트병 사용을 줄이는 데 동참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경제성을 높이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른바 '순환경제'를 통해 환경도 살리고 자원 낭비도 줄이자는 공감대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국내에서도 투명 페트병 분리 배출이 지난해 시작됐으며, 이를 재활용하는 산업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아직은 갈길이 멀다. 의복, 용기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으나 당장 폐페트병 분리 배출부터가 원활하지 않다. 국내에서도 버려지는 페트병은 늘고 있지만, 활용할 수도 없다. 불순물까지 섞여 있어 재처리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렇다 보니 환경 전문가들 역시 상품 역할을 다한 폐페트병이 배출에서부터 고품질 가공 원료인 '플레이크'까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어야 '순환경제'의 패러다임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데 입을 모은다.
"한해 수거된 27만t 페트병으로는 옷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페트병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분리배출→선별 뒤 압축(베일 상태)→압축 풀고 라벨 제거, 파쇄 후 세척 가공(플레이크·재활용 가능한 최종단계 소재)까지의 과정을 거친다.
다만, 이렇게 국내에서 수거된 뒤에 가공된 플레이크는 의류 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21만t의 플레이크는 면이나 솜 등에 쓰이는 단섬유용 12만1125t(57.5%), 계란팩으로 쓰이는 시트용 3만5575t(16.9%), 수출용 4만706t(19.3%), 기타 1만3073t(6.2%) 등으로 재활용된다.
이 중에 옷을 만드는 장섬유용은 없다.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플레이크를 머리카락 굵기의 200분의1(데니아) 상태로 5㎞까지 뽑아내야 한다. 불순물이 포함될 경우, 중간에 끊어져 의류용 원사로는 불합격이다.
재활용업계 한 관계자는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내놓기 위해서는 고급 품질의 플레이크가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국내에서는 분리배출부터 세척에 이르는 과정에서 고품질 소재를 생산하지 못했다"며 "옷을 만들고 화장품 용기 등을 만들 수 있는 플레이크를 구하기 위해서는 수요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동안 재활용 제품에 대한 인식이나 이를 의무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등 국제사회의 규제가 많지 않다 보니 고품질의 플레이크를 생산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연간 국내 업체가 수입하는 고급 플레이크는 수만t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전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티케이케미칼이 국내에서 수거한 페트병을 활용, 최초로 100t 정도의 고급 플레이크를 생산한 것이 국내 재활용업체로서는 희소식이다. 특히 생수회사가 직접 페트병을 회수, 불순물이 없는 페트병을 공급받은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티케이케미칼 관계자는 "사실상 지난해 하반기에 100t의 플레이크를 생산할 수 있었는데, 이를 국내에서 수거한 페트병만으로 1200t까지 확대하는 게 목표"라며 "의류, 용기 등 고품질·고부가가치의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면, 국가 경제에도 커다란 보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벨 떼야 하나, 뚜껑 닫아야 하나'··· 여전히 헷갈리는 분리배출
정부도 페트병 재활용을 위한 분리배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25일부터 전국 공동주택(아파트)에서 '투명 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을 시작했다. 앞서 2019년 12월 음료·먹는 샘물에 유색페트병을 금지할 뿐 아니라 지난해 12월부터는 상표띠 없는 먹는 샘물을 허용하기도 했다.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은 공동주택법상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30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이나, 150가구 이상으로서 승강기가 설치되거나 중앙집중식 난방을 하는 아파트가 해당된다.
정부는 여기에 지난해 전국 아파트와 관련 업체에 투명페트병을 따로 담을 수 있는 마대 5만여장을 배포하는 등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을 유도했다. 올해에도 3만장가량 배포한다. 6월까지를 정착기간으로 잡았다.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정착 등을 통해 고품질 재생페트 재활용량을 2019년 연 2만8000t(전체 재활용량 24만t의 11%)에서 2022년 10만t 이상으로 확대해 국내에서 현재 수입되는 재생페트를 충분히 대체한다는 게 환경부의 구상이다.
다만, 재활용을 위한 투명 페트병 분리 배출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용 마대를 배포했지만, 분리 배출 방법을 알지 못하는 국민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투명 페트병에 있는 비닐라벨만 제거하고 뚜껑을 닫아 따로 모으는 게 분리배출의 기본방법인데도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구나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자체를 알지 못해 분리배출 마대에 다른 폐플라스틱을 담는 경우도 여전한 상황이다. 최근 한 공동주택에서는 오히려 눈에 띄는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용 마대에 각종 플라스틱 제품을 채워넣는 상황도 포착됐다.
"속도 내는 국제사회, 우리도 할 수 있다"
이미 국제사회는 오래전부터 페트병을 재활용한 제품 개발에 관심을 가졌다. 1972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설립된 섬유 보온재 전문업체인 서모어는 1980년대 중반부터 페트병을 활용해 대체 보온재를 개발했다.
2016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신발제작업체인 올버즈의 경우엔 폐페트병을 활용해 운동화 끈을 만들었다. 사탕수수 폐기물로 샌들 밑창까지 만드는 등 친환경 소재를 접목한 것이 화제가 돼 창업 2년 만에 100만 켤레의 신발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 역시 폐페트병 등을 통한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옷을 만들어 젊은 층의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과 산업계의 기술 개발 등에 힘입어 이젠 만들지 못할 것은 없다"면서 "국내 대기업들도 관심을 갖고 페트병 재활용 등 친환경 소재에 관심을 보이다 보니, 더 다양한 제품이 출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규제 문턱과 소비자 인식에 막혀 있는 재활용 산업
의류 생산보다 고품질 조건을 요구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는 용기다. 다만, 고품질의 국내산 플레이크를 생산하더라도 재활용업계의 고민은 또 남는다. 바로 규제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재활용 과정을 통한 제품으로, 딸기 팩 등 식품에 직접 닿는 용기를 생산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기존 잔재물에 대한 세척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활용이 돼 식품을 담는 용기에 사용될 경우, 소비자의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식약처는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 연구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해외 상황을 살펴보는 게 중요할뿐더러 최근에는 식품에도 페트병을 재활용한 제품이 용기로 활용되고 있다"며 "식약처가 올해 안에 기준을 만들 것으로 예상하며, 환경부 차원에서는 그 기준에 충족할 수 있는 재활용체계를 만드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재활용업체들은 우선 규제를 우회해 식품이 아닌 화장품이나 다른 물질이 담긴 용기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 국내에서도 아모레퍼시픽이 보디워시 용기를 페트병 용기로 제작하는 등 재활용 시장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재활용 소재 등 친환경 제품이 일반 제품보다 가격 부담이 크다 보니, 소비 시장에서 뒷전으로 밀려는 모습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기업 브랜드에는 공감하지만, 실제 구매 시에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게 유통업계의 전언이다.
이소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박사는 "일회용 제품 사용을 지양하고 다회용 제품이나 친환경 제품으로 소비가 전환될 수 있도록 정부의 재정적인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며 "일회용 제품 등 친환경과 반대되는 제품에 페널티를 주는 경우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친환경 제품이 활성화되려면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최근 환경부가 기업들과 자발적인 협약을 유도하는 등의 움직임은 긍정적"이라며 "이와 함께 국민들이 재활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민간과 기업이 충분히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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