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누구를 위한 '탄소중립'인가?...일방적 소통에 지친 산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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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기자
입력 2021-04-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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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중화학팀 김성현 기자]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서로 공을 올리기 위해 기업들을 앞다퉈 불러내고 있다. 철강, 석유화학, 정유 등 전통적인 굴뚝사업 기업들을 모아두고 탄소배출을 멈추라고 한다. 그동안의 탄소배출에 대해 반성하고,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정부가 추진해온 탄소중립 협의체 시리즈의 마지막 주자인 ‘자동차 탄소중립협의회’가 출범했다. 지난 2월 2일 첫 번째 탄소중립 협의체인 ‘그린철강위원회’가 출범한 지 약 2달 만이다.

산업부가 추진하는 탄소중립 협의체는 각 기업들이 탄소중립 정책을 공유하고 업계 전문가들이 탄소중립 기술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산업부는 표면적으로는 회의 과정에서 업계 건의를 듣고 관계부처‧유관 기관과 협의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참여기업들은 "벌을 받고 있는 기분"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당장 생산을 위해 공장을 가동하고 있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을 불러놓고 불가능한 일을 해내라고 하는 것에 가까운 탓이다.

최근 탄소중립 협의체에 참석한 기업의 중역은 "도대체 우리를 불러두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며 "일단은 정부의 입장을 들어보려고 가기는 했지만 단순 의견 공유가 발전 방안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탄소배출권과 관련한 기업들의 건의 사항은 묵살해놓고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을 위해서는 지체하지 말고 모이라는 정부의 태도에 화가 난다는 반응도 있다.

한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산업부가 기업 전략을 짜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기업들이 스스로 잘하도록 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앞서 중대재해법 등에서 규제 당사자가 되는 기업과 소통하지 않으면서 이제 와서 협의체가 무슨 소용인가"라고 꼬집었다.

실제 국내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탄소중립 목표를 세우고 각각의 전략을 추진 중이다. 다만 기존의 화석연료에서 수소,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전환하는 작업은 장기간이 소요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기업인 포스코는 이산화탄소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고 철을 생산할 수 있는 공법인 '수소환원제철'을 추진 중인데, 30년 후에나 기술이 완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굳이 탄소중립을 위한 미래 기술이 아니더라도 국내 기업들의 탄소저감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산업계 전반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가별 탄소배출량을 집계한 글로벌 카본 아틀라스(Global Carbon Atlas)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이산화탄소배출량은 6억1100만톤(t)으로 세계 9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글로벌 배출량에서 따져보면 1.7% 수준에 그친다.

조강생산량 기준 세계 5위 철강사인 포스코, 세계 5대 정유산업 국가, 반도체·석유화학 강국 등 글로벌에서 국내 기업의 입지와 그 생산량을 보면 많다고만 할 수는 없다.

올해부터도 각 기업들은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의 투자금을 탄소중립을 위해 투자한다. 정부는 산업계의 탄소중립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직 그 규모는 물론 구체적인 지원방안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반면 탄소세 도입과 탄소배출권 거래제 강화에 대한 검토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초 철강, 정유, 석유화학, 조선 등 국내의 굴뚝산업 기업들은 어느 때보다 강도높은 탄소중립 전략을 내놓으며 어느 때보다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다만 의지를 실현해낼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 정부는 보여주기식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보다 기업이 모처럼 가진 의지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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