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삼성전자는 이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공식적으로 처음 밝혔다. 삼성전자의 해외 단일 투자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기존 중국 중심의 해외투자 로드맵이 미국으로 선회한 셈이다.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목표로 한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을 위해 미국 본토에서 정면 승부를 걸었다고 분석한다. 주 타깃은 파운드리 세계 1위의 TSMC와 미국 반도체종합회사 인텔이다. 이미 TSMC와 미국 종합반도체회사 인텔이 미국 정부에 상당한 투자 계획을 공언한 상황이다. 특히 TSMC는 지난 3월 발표를 통해 기존 120억 달러에서 금액을 증액, 최대 350억 달러(약 40조원)를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 투자해 5~3나노미터(㎚·1㎚는 10억분의1m) 반도체를 양산할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도 이에 뒤지지 않는 막대한 투자를 추진, 미국 현지에서 파운드리 수요처를 확보할 계획이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170억 달러를 투입해 5나노급 공정을 갖춘 생산라인을 미국에 지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르면 2023년 새 공장을 가동, 3나노급 공정 기술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삼성전자는 향후 대미 투자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한·미 정상회담 당일 오전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도 투자 금액만 공개했을 뿐이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17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좋은 소식, 구체적인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있는 기존 파운드리 공장을 증설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주정부와 세제 혜택 관련 협상이 한창이라, 삼성전자는 확답하지 않고 있다.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물망에 오른 미국 뉴욕주와 애리조나주 등의 후보군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미국 어디든 이번에 약속한 170억 달러를 실제 투입할 경우, 1996년 오스틴 반도체 공장 설립 이후 25년간 미국에 투자한 금액은 총 340억 달러(약 4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반도체 비전 2030’에 따라 국내에서도 막대한 투자를 공언한 상태다. 2019년 화성사업장에서 발표한 133조원의 투자 계획에 38조원을 추가해 총 171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국내에 첨단 파운드리 공정 연구개발과 생산라인 건설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 같은 삼성전자의 계획은 지난 13일 정부의 ‘K-반도체 벨트 전략’ 발표에 맞춰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도 이날 설비 증설 및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파운드리 생산능력 2배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 기간 미국 실리콘밸리에 AI(인공지능), 낸드 솔루션 등 신성장 분야 혁신을 위한 대규모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하는 데 10억 달러(약 1조원)를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라인은 없지만 인텔의 낸드사업 인수 이후 미국 주도 공급망에 본격적으로 출사표를 던져 시장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산업 전 영역에서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각국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한·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업계의 투자 시계는 한층 빨라졌고,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기존 생산 거점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변모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미·중 패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K-반도체 산업이 양국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하는 점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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