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은 ‘아픈 손가락’이다. 대기업과 같은 글로벌 경쟁력·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에 주어지는 온갖 혜택과 지원책은 배제된다. 기업 규제가 언급될 때는 중견기업이 빠지지 않지만, 스타트업에도 제공된 해외 진출 지원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대한민국 경제 허리’라고 불리지만, 언제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중견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홍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는 “30년, 50년 뒤 미래를 생각했을 때, 중견기업이 취약하면 국가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중국만 해도 일부 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기업을 성장시킨다. 우리나라도 언제까지 몇몇 대기업이 전체 경제를 이끌 수 있겠나. 지금부터라도 미래를 이끌고 갈 수 있는 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제조업 분야에서 매출 1000억~1500억원을 내면 중견기업에 들어가지만,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중소기업에 불과하다. 애플이 어떻게 중소기업과 거래를 하겠나.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중견기업의 성장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대기업, 중소기업 아닌 '중견기업 정책' 필요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은 “중견기업법이 시행된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대부분 법률과 정책은 ‘대기업은 규제 대상, 중소기업은 지원 대상’의 큰 틀로 짜여 있다. 중견기업에 대한 정책을 짜려면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고용 측면에서만 분석해도 대기업·중소기업 일자리가 줄어드는 시기에 중견기업 일자리는 늘었다. 금융, 세제, 연구개발(R&D)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신산업 분야와 수출 분야 중견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청년들이 취업하고 싶어하는 중견기업의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일자리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된다”고 조언했다.
중견기업 성장사다리, 투자로 해결해야
최근에는 네이버, 카카오 등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이는 극소수다. 창업-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성장 사다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이 가지는 구조적 환경을 인식하고, 발상의 전환을 통한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카카오 같은 하이테크 기업이나 SM그룹처럼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하는 회사도 있지만, 이는 극소수 사례다. 대기업과 다른 기업군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중견기업으로서 성장을 막는 장벽을 없애고, 적극적인 투자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합리적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며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경영권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기업 정책을 이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미국·유럽 등 선진국 제도를 도입해 장기적으로 투자 중심의 성장 전략을 짤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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