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법정에서 진술 내용을 부정하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일이 보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재판이 지연되거나 무죄율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형사소송법 제312조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피신조서 내용에 동의할 때에만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기존 형소법은 검사가 작성한 피신조서에 대해 피고인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됐다는 사실만 인정하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었다.
실제로 법정에 출석한 증인들이나 피고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본인들이 하지 않은 말들이 피신조서에 담겨 있다는 항변을 하는 경우가 적잖다. 본인들이 직접 언급한 단어가 아님에도 혐의를 입증하기에 유리한 단어들이 피신조서에 담겨 있다는 주장이다. 개정 형소법은 자백을 받기 위한 무리한 수사 등을 막고 모든 증거를 법정에서 현출시켜 진실을 규명하는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조직 범죄의 꼬리 자르기가 훨씬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금품수수나 사기 등이 대표적이다”라며 “기존에는 조서에서 일관성이 있으면 유지됐는데 이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도 “뇌물 사건의 경우 피의자 진술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 (개정 이후) 재판에 넘겨진 뇌물 사건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커져 검찰로서는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양형이 아닌 혐의 유무죄를 다투는 사건의 경우 검찰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일일이 증인신문을 통해 확인하는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어 재판이 장기화할 가능성 역시 사건 당사자에게는 골칫거리다. 가령 피해자 진술 의존도가 높은 아동이나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의 경우 특별한 물증 없이 피해자 진술 의존도가 높은 편인데 피의자가 피신조서를 부정할 경우 범죄의 실체적 규명이 더뎌져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법조인은 "피신조서의 증거 능력 제한으로 재판이 장기화하고 무죄율이 높아져 억울한 피의자 대신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모순된 상황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대검찰청은 이런 문제점의 보완책으로는 조사자 증언 제도 활성화와 영상 녹화 등을 검토 중이다. 조사자 증언은 피고인을 수사 단계에서 이미 조사한 경찰이나 수사관이 법정에서 진술 내용 등을 증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형사소송법 316조 1항에 명시돼 있다. 그간 필요성이 크지 않아 거의 활용되지 않았지만, 대검은 조사자 증언 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일선 검찰청과 경찰 등에 배포할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재판 지연 문제는 크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재경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 쪽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몇 배나 재판이 지연되지는 않을 것 같다. 현재도 부인하는 사건이 많다”고 전했다. 피신조서의 증거 능력이 없어지면 증인이 늘어나 심리가 길어질 수는 있지만 종전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다른 한편에선 형소법 개정을 계기로 미국처럼 '플리바게닝(자백이나 타인 범죄를 증언할 때 처벌을 감경하는 제도)' 입법을 논의해 재판 지연을 방지하고 신속하게 진실 규명을 끌어낼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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