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한·중·일 세 나라가 경제 위기의 외풍 해소라는 '공통 문제'를 놓고 자국민과 국제사회에서 함께 평가받는 입장에 놓였다. 몇몇 전문가들은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은 이들 국가에 1930년대 경제 대공황에 맞먹는 '신대공황'이 덮칠 것이라는 경고도 서슴지 않고 있다. 결국 도전과 혁신으로 대변되는 각국의 기업가 정신을 얼마나 되살려 내느냐가 경제 회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불황 터널 헤매는 일본 경제
세계 무대에서 '재팬 애즈 넘버원(1등 일본)' 신화는 옛 향수에 불과하다. 일본은 선진국 사이에서 '2류 국가'로 전락했다. 밤낮없이 일해도 오르지 않는 월급에 직장인들은 상대적 빈곤감을 겪고 있고, 해외 자본들은 부동산과 같은 고정 자산과 기업에만 눈독을 들인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일본의 급여 수준은 1997년을 100으로 봤을 때 작년 말 90.3으로 떨어졌다. 한국은 158, 미국과 영국은 각각 122와 130이었다. 한국인의 급여가 23년 동안 58% 늘어날 때 일본은 반대로 10% 감소한 것이다. 일본의 평균 임금은 지난 1991년 447만엔이었던 것이 2020년에는 433만엔으로 오히려 줄었다. 일본 물가가 30년 동안 오르지 않는 사이 다른 나라의 물가는 꾸준히 오른 결과 일본을 찾는 외국인들은 "살인적인 일본 물가는 옛말" 이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일본에서 빅맥은 390엔, 미국에서는 645엔, 영국에서는 522엔, 스웨덴에서는 681엔에 각각 판매되고 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 도상국인 태국은 429엔, 브라질은 480엔 등이다. 이 빅맥지수가 물가수준과 경제 수준을 전적으로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한 나라의 대표적인 물가수준을 보여주는 면에서는 의미 있는 경제지표다. 이 빅맥 지수로만 보면 일본은 태국이나 브라질에도 뒤져 개발 도상국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최근 들어 일본의 쇠퇴를 기정사실화하며 그 원인을 분석하는 연구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과거 일본은행(BOJ) 이사를 역임했던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NRI) 수석 경제학자는 "일본 경제가 튼튼하고 안정적일 때는 세계의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불안할 때 피난처로 엔을 사는 해외 투자가가 많았다"며 "그러나 지금 일본 경제는 쇠약하고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어 엔은 더 이상 안전한 달러의 피신처가 아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다만 일본의 불황 30년 동안에도 홀로 빛을 발한 것이 있다. 토종 기업의 경쟁력이다. 무인양품, 시마노, 도세이일렉트로닉빔, 고마쓰스프링, 다이킨공업 등 강한 기업이 계속 설립되고 영속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주도해 왔다.
경고음 속에 불확실성 커진 중국 경제
중국 경제가 급속한 하강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이 5개월 만에 또 지급준비율을 인하하는 등 경기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헝다그룹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진 가운데 원자재 가격 급등,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변수 등 악재까지 겹치며 경기 하방 압력이 더 커지고 있다. 중국 국무원 산하 최대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은 최근 발표한 ‘중국 경제 청서-2022년 중국 경제 정세 분석 및 예측’에서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3%로 제시했다. 지난 30여 년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중국의 성장률이 6% 아래로 내려간 건 코로나19 충격을 겪은 지난해(2.3%)를 제외하면 1990년(3.8%)이 마지막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8.0%, 내년 5.6%로 기존보다 각각 0.1%포인트 낮췄다. JP모건은 8월 이후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다섯 번이나 하향 조정했다. 지난달엔 올해 전망치를 7.9%에서 7.8%로, 내년은 5.2%에서 4.2%로 내렸다.
골드만삭스와 노무라증권도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8.2%에서 7.8%, 8.2%에서 7.7%로 수정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최악의 경우 3%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중국 지도부는 '안정'을 내년 경제 운용의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지만 성장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진다. 공동 부유를 전면화하기 위한 중국의 조치가 자본시장과 시장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빅테크에 대한 중국의 과도한 규제가 기업가 정신을 무디게 해 성장을 저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장웨이잉 베이징대 교수는 "기업이 부를 창출할 유인이 없다면 정부가 (빈곤층에) 이전해줄 돈이 없을 것"이라며 "기부는 상류가 말라버린 강처럼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산당이 전략적으로 기업을 통제해 나가면서 성장과 분배를 함께 추구하는 강화된 국가 자본주의 모델을 보여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어느 쪽 관점이 맞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급격히 떨어진 경제 활력과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가 시진핑의 3연임 확정 이후 없던 일처럼 회복되긴 어려울 것 같다.
잠재성장률 꼴찌, 암담한 한국 경제
한국 경제는 상황이 더 암담하다. 무엇보다 큰 것은 잠재성장률의 하락이다.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충격에 오미크론까지 더해지면서 잠재성장률은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하락한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가 성장동력을 잃어간다는 의미다. OECD가 2030년 이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0%대 성장은 사실상 성장이 멈춘다는 의미다. 경제성장률의 둔화는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얼마 전 LG경제연구원은 2022년 한국 경제가 2.8% 성장하고 물가는 2.2%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주요 연구기관의 전망치 중 성장률은 가장 낮고 물가 상승률은 가장 높게 잡았다. 경기 둔화와 코로나 변이 불확실성 지속으로 설비투자 증가율도 올해 9%에서 내년에는 1%로 크게 낮아질 것으로 봤다.
한국 경제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업인의 창의적 도전 정신이 왕성해지고 야성으로 뭉친 기업가 정신이 되살아나야 한다. 유능한 기업인 한 사람이 수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성공한 창업가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여전히 묵묵부답이지만, 경총이 대권 후보들에 우선적으로 "기업가 정신이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교수는 한때 한국의 기업가 정신을 세계 최고라고 추켜세웠다. 한국만의 그 '뭔가 다른 유전자를 찾는 것'.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은 위기이자 기회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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