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연 배우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브로커'도 마찬가지다. 베이비 박스 버려진 아기를 다른 가정에 돈을 받고 넘겨주는 브로커의 여정을 통해 인물들이 각자의 상처를 보듬고 위로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 모여 가족이 되는 모습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온도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지난 2013년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찍기 위해 입양제도, 양부모 제도 등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이때 구마모토현에 '황새 요람(아시아권에서 최초로 베이비 박스를 공식적으로 운영한 곳)'이라는 아기 우편함 시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브로커'의 원안을 떠올리게 되었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입양 제도를 조사하며 한국에서도 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 박스'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는 "일본보다 10배 넘는 아이들이 베이비 박스에 맡겨진다는 것"과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 입양아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됐다. 마침 한국 영화배우들과 작업을 꿈꾸던 때였고 '브로커'라면 한국에서 영화를 찍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6년 전 영화의 초고를 완성하고 재작년부터 (베이비 박스에 관해) 취재를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과 만났죠. 실제 베이비 박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분들, 보육원 출신들, 쉼터에서 생활 중인 어머니와 아이, 보육원 시설에서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 아기 브로커를 수사한 경험이 있는 형사까지…. 각각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취재했고 '베이비 박스'를 두고 옹호하고, 비판하는 이들의 입장이 매우 다르다는 걸 인식하게 됐어요.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보육원 출신인 A 씨의 말이었어요. 보육원 출신인 분들이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길 바란 건가?' 스스로 많이 묻는대요. 생에 확신을 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게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생각했을 때 어머니의 책임이 아니라고 여겼고 그들이 서로 '자신의 책임'이라 여기는 건 그렇게 느끼게끔 한 사회가 잘못한 거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베이비 박스와 엄마 그리고 아이의 문제는 사회 때문이라 여겼고 어느 정도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제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을 건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라며 취재를 통해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평소 그의 작품과 달리 직접적 표현이 담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잘하지 않는 일이죠.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식의 직접적인 대사를 하다니요. 하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심정적으로 큰 변화를 느꼈고 그들에게 저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태어나줘서 고맙다'라고."
그는 오랜 시간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과 대안 가족 형태의 이야기에 관심을 둬왔다. 스스로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라고 여긴 적은 없다"라고 하지만 그런 형태의 관계에 마음이 쓰인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대안 가족에 대해 재미를 느끼는 이유는 가족이라는 제한적인 공간과 구성원 안에서 다면적인 이야기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세월에 따라 역할이 바뀌기도 하고요. 아들이었던 사람이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되는 것처럼요. 역할과 관계가 필요에 따라 시간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데 그게 가족 이야기의 재미 아닐까 생각해요. 가족적인 공동체. 인간에게 필요한 거라고 봐요."
그동안 피가 섞이지 않은 인물들이 모여 가족 구성원을 이루는 이야기들을 다뤄왔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모성애'로 이야기를 확장했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촬영 후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찍고 난 뒤 매체들과 인터뷰를 할 때였어요. '작품을 만들게 된 이유'를 말하다가 저의 실제 경험을 털어놓았거든요. '아이가 생겼을 때 아내는 어머니가 되었지만 나는 아이가 생겨도 아버지가 되었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남자들은 어떤 이유나 관념적 사고 없이는 부성을 가질 수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 인터뷰를 본 친구가 '여성도 아이가 생긴다고 하여 바로 모성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지적했어요. 남자들의 편견이 모성을 갖지 못하는 여성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통렬하게 반성했습니다. 안일하게 '모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어요. 그렇게 해서 '어느 가족'과 '브로커'가 탄생한 거죠. 형제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드는 한국 영화로 팬들은 물론 업계에서도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그는 '어느 가족' 이후 프랑스에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찍었고 한국에서 '브로커'를 찍으며 해외 영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촬영 방식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아요. 배우들에게 의식적으로 말을 걸지 않아요. 연출 의도를 전하거나 소통하려고 애쓰지 않죠. 좋은 연기를 봤을 때 외국 감독이라면 화려한 리액션으로 칭찬해주겠지만, 동양 사람들은 잘하지 못하잖아요. 특히 저는 더욱 그런 편인 거 같아요. 일본에서는 그런 리액션을 하지 않거든요. 그래도 이번 작품은 외국에서 하는 만큼 (리액션을) 의식하면서 찍었어요. 좋으면 좋다고 직접 말하기도 하고요.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손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어요."
영화 '브로커'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이 작품을 통해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아마 한국 분들께서도 기다렸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동안 송강호 씨가 남우주연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아할 정도니까요. 그동안 박찬욱 감독, 이창동 감독, 봉준호 감독 작품에서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충분히 (상을) 받을만했는데 우연히 이 작품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송구한 마음도 들고요."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직후의 풍경도 설명했다. "서로 기뻐하며 부둥켜안았다"라고 말문을 뗀 그는 "행복한 밤"이었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마음이 진정된 후 다시 한번 큰 화면을 통해 송강호 씨의 연기를 보았는데요. 감탄만 나오더라고요. 특히 오랜만에 딸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은 정말 훌륭했어요. 송강호 씨에게 따로 '다시 봐도 정말 좋더라'라고 소감도 전했죠."
"꼭 그런 건 아니에요. 나름대로 일본에서도 하고 싶은 대로 찍고 있거든요. 다만 제가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들이 프랑스와 한국에 있었고 좋은 기회를 잡아 함께 영화를 찍은 거죠. 어쩌다 보니 이렇게 두 작품이나 연달아 하게 되었네요. 해외에서 영화 촬영을 하면서 좋았던 점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일본으로 돌아가 피드백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영화, 드라마를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