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가 롯데바이오로직스로 이직한 3명에게 제기한 ‘영업 비밀 침해금지’ 및 ‘전직 금지’ 처분 소송이 일부 인용되며 업계에서 기술 유출 문제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터질 것이 결국 터졌다'고 이런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먼저 회사에서 철저한 기밀 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영업 비밀 소송에 대비한 기본 준비들도 미리 해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8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인천지방법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가 자사에서 롯데바이오로직스(롯데바이오)로 이직한 직원 3명을 상대로 낸 영업기밀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달 일부 인용했다.
◆ 삼바-롯데가 쏘아 올린 ‘기술 유출’ 이슈...제약바이오 기술 유출 분쟁 사례는?
롯데바이오 측은 이번 판결은 삼바가 승소한 것이 아니며 애초에 이직한 인원이 가져온 문서가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바이오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삼바가 이겼다는 식의 해석이 많은데 사실 재판부에서 영업비밀을 가져갔다고 확실히 인정한 건 아니“라며 ”법원은 '영업 비밀을 가져갔다면 활용하면 안 된다'라며 원론적 답변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바는 이들 직원에 대해 신청한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취하했다. 법원에서 ‘직업선택의 자유’등을 이유로 소송이 길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자 삼바 측에서 이를 고려해 취하한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결국은 터질 것이 터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내 기업은 기술 유출 위험에 상당수 노출되어 있고 피해액이 지속해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특허청이 미국·영국 등 선진국 데이터를 토대로 추산한 결과, 한국의 2020년 영업 비밀 유출에 따른 피해 규모는 연간 최대 58조원으로 추산됐다. 특허청에 기술을 공개해 20년간 독점권을 부여받는 '특허'와 달리 영업 비밀은 비밀로 유지되는 한 영구적인 회사 고유의 기술이다.
그간 업계에서는 기술 유출 관련 법정 소송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디톡스와 대웅제약·휴젤의 보톡스 원료 분쟁이다. 메디톡스는 자사 보툴리눔 톡신이 타사에 기술 유출됐다며 대웅제약과 휴젤에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진단키트 업체인 씨젠은 지난 5월 동종업계의 경쟁사로 이직한 직원을 대상으로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GC녹십자도 지난해 SK바이오사이언스로 이직하는 직원이 많아지자 해당 회사를 상대로 항의성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제약바이오 기업이 직원들의 동종업계 이직을 경계하는 것은 인력 유출이 곧 기술과 영업 관련 기밀 유출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바이오산업 분야 채용을 할 때 동종업계 이직 금지 조항을 계약에 넣는 일이 빈번하다.
제약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에는 영업기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영업비밀방어법(DTSA)이 있다“며 ”국내에서도 일부 제약·바이오기업은 직원 채용 시 비밀 유지 및 경쟁사 이직 금지에 관한 서약서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기술 유출 피해 줄이는 방법은?...”영업 비밀 자체 관리 시스템 강화 우선“
상황이 이렇지만 정작 기업들은 영업 비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청이 2017~2019년 영업 비밀 관련 형사사건 324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무죄율이 34.5%(112건)에 달했다. 대검찰청 검찰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형사사건 1심 무죄율은 0.81%다. 일반 형사사건에 비해 영업 비밀 형사사건 무죄율이 42배 가까이 높다.
영업 비밀 형사사건 무죄 사유 3건 중 1건(30.1%)은 '비밀관리성 불인정'이었다. 비밀관리성 불인정이란 영업비밀 유출로 피해를 본 기업이 영업비밀을 '비밀'로 관리했다는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영업비밀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이를 비밀로 인지하고 꾸준히 관리해야만 영업 비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하지만 많은 기업과 소속 직원 상당수가 영업 비밀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기술 유출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밀 유지 조항을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핵심 정보물 관리'와 '파기 시스템'을 철저히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호준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에 따르면 영업 비밀은 법적으로 특허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해석된다. 둘 다 독점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만, 특허는 공개를 기반으로 20년간 독점권을 준다. 반면 영업 비밀은 비공개를 기반으로 외부 유출이 없다는 전제하에 무기한으로 보유할 수 있다. 다만 제약바이오업계에선 인력 이동이 잦은 편이기 때문에 영업비밀이 유출되는 사례도 빈번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염 변호사는 "영업 비밀이 물질이라면 해당 물질로의 물리적인 접근을 통제하거나, 보관 장소를 제한하거나, 컴퓨터나 인터넷·인트라넷상 패스워드를 설정하거나, 서류에 영업 비밀의 등급을 나눠야 한다"며 "회사에서 비밀로서 관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있어야 영업 비밀이 법적으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로펌 시들리 오스틴의 샤론 리(Sharon Lee) 변호사도 자체 시스템 강화를 바탕으로 소송을 위한 증거 수집이 시스템화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바이오 업계가 좁다보니 영업기밀 유출 사례가 적지 않다. 직원들에게 내부 정보를 활용하거나 부적절한 유출을 하면 안 된다는 점을 인지시키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리 변호사는 "특히 미국에 진출하려는 국내 바이오텍들이 소송에 대비하려면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혹여나 소송에 걸릴 때를 대비해 배심원 앞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발명 기록, 히스토리 등 증명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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