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주년 특별 기고] 한‧중 수교과정과 미래를 위한 약간의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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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 한반도복지통일재단 이사장
입력 2022-10-0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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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올해는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중 양국 관계의 우호와 협력을 다져야 하는 시기가 됐습니다. 한국과 중국 수교 30주년을 맞아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뜻을 함께하자는 취지로 각계 저명인사의 깊이 있는 견해가 담긴 글을 본지에 싣게 되었습니다. 지난 30년은 한·중 양국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가고 경제 파트너로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등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한국과 중국은 함께 많은 역경을 이겨왔습니다. 한·중 관계는 이제 새로운 기점에 서 있습니다. 

이번 기고 릴레이에는 한·중 수교 과정의 경험담부터 한·중 교류를 위해 현장에서 땀 흘린 여러분들의 이야기까지, 양국 수교 30주년의 역사가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30년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가득히 담겨있습니다. ​한국의 북방외교와 중국의 개혁개방 그리고 세계사의 변화에 순응하는 한·중 수교는 우리들의 소중한 역사이기에 독자들에게 이 글이 한·중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박철언 한반도복지통일재단 이사장[사진=한·중수교 3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필자는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6.29 민주화 선언' 후 새 시대를 준비하는 핵심 참모로서 북방수교정책을 준비해야 했는데, 당시 중국과의 수교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이었다. 1987년 8월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이었던 필자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법률가 회의 회장(이병호 변호사)의 고문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이때 차오스(喬石) 부총리(후에 당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당서열 4위)와 만나 의미 있는 대화를 시작했다.

1990년 9월 필자는 다시 KOC(Korean Olympic Committee) 고문자격으로 중국 초청을 받아 베이징을 방문했는데, 9월23일 장치혁 회장과 같이 진리, 웨평 부회장과 회담하고, 저녁에는 필자가 준비해 리셉션을 열고 천시퉁 시장, 린한슝(林漢雄) 건설부장관, 왕전의 교통부 차관, 리창안(李昌安) 국무원 부비서장, 장바이파 부시장, 정홍예 국제무역 추진위원회(CCPTT) 회장 등 중국 요인들과 회동했다.

그리고 9월 25일 베이징대학교에서 ‘한국의 경제발전과 교육’이란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는데, 350여 명의 대학생과 교직원 참석했다. 그리고 그날 베이징대학 이사장 등 간부 교수들과 간담회를 겸한 만찬을 하면서 깊은 대화를 했다. 또, 다음날에는 인민일보사를 방문하여 간부들에게 한국과 중국의 조기 수교의 당위성에 관해 설명했다.

이어 1991년 7월에는 ‘베이징 2000년 올림픽유치위원회’ 초청으로 중국을 다시 방문하여 오소조(伍紹租) 체육부 장관과 회담하고, 이어 리루이환 천시퉁‧ 장바이파‧ 리창안 등 요인들과 회동하여 양국 조기 수교의 당위성에 관해 깊은 공감대를 이루었다. 이 자리에서 중국 최고지도부 5명인 덩샤오핑 군사위원회 주석, 양상쿤 국가주석, 만리 전인대 상무위원장, 장쩌민 공산당 총서기, 리펑 부총리와 수교 실무를 담당하는 지도부 3명인 텐지원 부총리, 추가화 부총리, 첸지천 외교부장에게도 노태우 대통령의 뜻이 담긴 자세한 편지를 전해주었다. 귀국 후 노 대통령께 보고하고 며칠간 밤낮으로 작업하여 같은 해 7월 25자에 다시 대통령의 뜻이 담긴 서한(원문 16페이지, 한글 번역 10페이지 총 26페이지)을 위 8명에게 다시 보냈다.

그 후 리루이환, 천시퉁 등으로부터 편지를 전달했더니 덩샤오핑 등 중국 최고지도부가 긍정적 반응을 보였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좋은 회답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13일 신라호텔에서 서울 APEC 각료회담 참석차 한국에 온 첸지천 외교부장과 비밀회동을 가졌고, 이후 외무부의 수교 실무회담은 급진전 되어 드디어 1992년 8월 24일 한중외무장관이 한·중 ‘수교공동성명’에 서명하였다.

사실 한·중 관계가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표현이 그 속내를 드러내는 듯한 일도 있는데, 필자는 양국의 수교 당시의 초심을 잊지 말고 '호혜평등'한 입장에서 자국과 상대방을 위하는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한‧중‧일 3국은 지리적 인접성, 역사적 연관성이 깊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원에서도 친화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현 세계질서의 주된 동력인 경제적 협력의 상호의존 차원에서 서로 협력하여 3국 간 관계발전의 토대를 확고히 해야 한다. 3국 간에 또 그 구성원 간에 공감되는 정의가 구현되고 갈등을 민주적으로 조정하며 협력을 추진하여 느슨한 연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전체로서의 하나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의 형성도 가능할 것이다.

한·중 수교란 근현대사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세계사의 변화를 의미했던 역사적 사건이다. 이러한 일에 종사하며 조금이나마 국가의 발전에 노력했던 지난 일을 생각해 보면 요즘 한·중 관계의 불확실성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중 관계란 양국의 정신이 수교초기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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