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發 인하 압력 후폭풍] '라면플레이션'에 가위 든 정부...기업들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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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기자
입력 2023-06-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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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효곤 기자]

소주와 함께 대표적인 서민 식품인 라면값 인하 논란이 거세지면서 국내 제조사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 가격 인하 신호탄을 정부가 쏘아 올렸다는 점에서 실제 가격 인하 여부에 업계와 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농심·오뚜기·삼양식품 등 국내 라면업체 ‘빅3’는 가격 인하 문제를 놓고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9~10월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이 내린 만큼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0년 이후 13년 만의 가격 인하 가능성 주목
 
‘경제사령탑’인 경제부총리가 직접 나서 라면이라는 특정 품목 가격 인하를 언급하자, 업계에서는 적잖은 파장이 일었다. 실제 라면 가격이 인하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이 마지막이다.
 
추 부총리의 발언의 배경 역시 13년 전 가격 인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라면업계는 2010년 제품 가격을 인하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가격을 내린 적이 없다. 2010년 농심은 신라면 가격을 2.7~7.1% 인하했고, 오뚜기도 6.7% 내렸다. 삼양식품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인하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된 상황에서 고통분담을 하자는 취지인 셈이다.
 
2010년 당시에도 밀가루 가격이 7%가량 내린 것이 주요 명분이 됐다. 올해 역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식품산업 통계 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국제 밀 가격은 t당 약 228달러(환율 1278원 기준)로 지난해 같은 기간(419달러) 대비 45.6% 하락했다.
 
지난해 라면 업체들은 제품 가격을 10%가량 인상했다. 9월 농심이 신라면, 짜파게티 등 주요 제품 가격을 평균 11.3% 올리자 10월 오뚜기가 진라면, 진짬뽕 등 주요 제품 가격을 11% 줄줄이 올렸다. 삼양식품과 팔도는 각각 9.7%, 9.8% 가격을 인상했다. 그 결과, 라면기업들의 1분기 실적은 해외 수출 호조와 맞물려 흑자 폭이 늘었다.
 
◆밀과 밀가루 가격의 차이…라면·제분업체 간 입장 차도 확연
 
업계에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다만 기업들은 정부의 지적을 존중해 검토를 하겠다는 분위기지만, 라면업계와 제분업계와의 미묘한 입장 차이도 감지된다.
 
국내 라면 제조사 중에 국제 시장에서 밀(원맥)을 직접 사오는 곳은 없다. CJ제일제당, 대한제분, 삼양사, 사조동아원 같은 제분업체들이 밀을 수입, 밀가루로 만들어 라면 제조사에 팔고 있다. 국제 밀 가격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제분업체라는 것이다.
 
제분업계에서는 국제 밀 수입가가 실제 제품에 반영되려면 6개월가량의 시차가 걸리기 때문에 당장 가격 반영은 어렵다고 항변하고 있다.
 
한 제분업계 관계자는 “국제 곡물 가격은 통상 3~6개월 시차를 두고 업체 매입 가격에 반영되는 상황”이라며 “밀 가격이 제조 원가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최소 일대 일 정도의 같은 기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라면업계에서는 일단 밀 가격 인하 상황을 지켜봐야 된다는 입장이다. 국제 밀 가격은 떨어졌다고 해도 현재 라면 제조사들이 매입하는 밀 가격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라면을 만드는 과정에서 밀 외에 다른 원자재 가격 인상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밀 가격은 내렸지만, 전분·설탕 등 다른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하다못해 인건비·물류비·포장 원자재 가격 등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특정 기업만 가격을 인하하라는 것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국내 식품시장은 일종의 ‘과점시장’이라는 특성이 있어 가격경쟁을 안 한다”면서 “라면 제조사들은 친환경·사회적 책임 경영·지배구조 개선이라는 ESG경영에서 ‘S’인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번 가격 인하에 동참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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