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原乳) 가격이 10년 만에 최대치로 오르면서 유업계의 고심이 크다. 우유 가격 인상률의 계산법이 복잡해진 탓이다. 가뜩이나 저출산 여파로 우유 소비가 감소하면서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인상 자제 압박 수위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해 유업체들의 운신의 폭도 좁다.
2일 낙농진흥회와 유업계에 따르면 올해 10월부터 우유 가격을 결정하는 원유 가격이 리터(ℓ)당 88원 올라 1087원으로 인상될 전망이다. 가공유는 ℓ당 87원 올라간다.
올해 원유 가격 인상폭은 전년 대비 2배 가까운 수준이다. 지난 2013년 원유가격연동제 도입 때 ℓ당 106원 오른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에 연내 우유 가격의 도미노 인상은 불가피해졌다. 오는 10월에 원유 가격이 오르면 2~3주 시차를 두고 유제품에 인상분이 반영될 전망이다. 지난해에도 원유 값이 오르자 서울우유는 2주 뒤 우유 값을 평균 6% 상향 조정했다.
관건은 인상폭이다. 작년 원유 값이 ℓ당 49원 인상되자 유업계는 흰 우유 값을 6~10% 올렸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흰 우유 소비자가격 인상률은 8% 이상이 될 전망이다. 원유 값 인상률 8.8%만 적용하더라도 흰 우유 소비자가는 ℓ당 3120원으로 올라간다.
현재 유업계는 인상 시기와 인상률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결정된 원유 가격 기반으로 유업계가 곧이어 논의에 착수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인상률을 쉽사리 정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부의 가격 통제 의지가 강한 영향이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유업체 10곳을 불러 간담회를 열고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벌써 이달에만 두 번째 압박이다.
이러한 정부의 경고에 따라 올해는 1ℓ 우유 하나가 3000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인상률을 조절할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흰 우유 1ℓ당 3000원’은 소비자의 가격 저항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유 가격이 10년 만에 최대폭으로 오른 만큼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도 “우유 가격 인상분에 원유 기본가격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워낙 정부의 인상 자제 압박이 거세고 소비자의 가격 저항선을 생각할 때 3000원 언저리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우유 소비가 줄어든 데다 이른바 '밀크망명족'까지 늘면 실적 타격은 불보듯 뻔하다. 실제 올 들어 수입산 멸균우유 공세에 밀려 국내 유업계는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는 모양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멸균우유 수입 중량은 1만8379톤(t)으로 전년 동기 1만4675톤보다 25.2% 증가했다. 이는 국산 우유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탓이다. 수입 우유의 75%를 차지하는 폴란드산 우유는 마트에서 ℓ당 가격이 1350원가량으로, 국산 우유(2800원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우유 가격은 원유 기본가격에 물류비, 제조경비 상승분, 유통마진 등을 더해 최종 결정된다”면서 “우유 가격이 3000원을 넘지 않으면 업체들이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만큼 고민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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