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 재팬’에 이어 ‘피크 차이나’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이 말에는 일본과 중국 경제가 이미 정점에 이르렀고 내리막길만 남았다는 잿빛 전망이 담겨 있다. 문제는 ‘피크’란 반갑지 않은 단어가 ‘코리아’에도 붙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피크 코리아’. 한국 경제도 올라올 만큼 올라왔고 이젠 하강(下降)의 길로 들어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 성적표가 부진하다.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은 정부 전망치인 1.4% 달성도 힘겨울 전망이다. 내년이 관건인데 정부는 2.4%로 보고 있지만 골드만삭스 등 8개 외국계 투자은행의 전망치 평균(7월 말 기준)은 1.9%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중장기 한국 경제의 진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한국 경제가 2025년에 1%대 성장을 보인 데 이어 2030년에는 0% 성장, 그리고 2047년부터는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KDI(한국개발연구원)도 생산성 개선이 없다면 2023~2027년에 2% 수준인 잠재성장률이 2050년에는 0%까지 꺾일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성장의 엔진이었던 노동력 증가, 자본 축적 그리고 기술 수준 향상 모두에 빨간불이 켜진 게 주요인이다.
성장률을 회복하느냐 아니면 초(超) 저성장 기조로 쇠락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선 한국 경제. ‘피크 코리아’를 피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과 함께 미래를 내다보는 실행이 긴요한 때다. 이와 관련해 다른 나라 경제 상황을 살펴보고 교훈을 얻는 것도 바람직한 실마리를 찾아내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어떤 나라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나라는 역할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 나라를 심층 분석한 도서와 글을 중심으로 두 가지 상반된 예를 짚어봄으로써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먼저 반면교사 사례는 중국과 일본. 중국 경제를 들여다보자. 중국은 코로나19 종료 이후 리오프닝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맥을 못 추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경제성장률이 올해 5%에 이어 내년에는 4%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단순한 경기 부진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 때문에 중국 경제가 ‘피크 차이나’라는 한계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아예 중국이 세계 1위 자리에는 오르지 못할 것이며 2035년에 미국 경제 대비 90% 선에서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걸림돌은 인구 감소와 생산성 하락, 그리고 부채와 부동산 시장 냉각 등이다. 중국 인구는 지난해 최대치에 달했는데 금세기 중반에는 생산가능인구가 25% 이상 줄어들 것으로 유엔은 내다보고 있다. 생산성 하락도 심각하다. 2008년부터 2019년 사이에 총 요소생산성이 연평균 1.3%씩 하락했다. 더 이코노미스트지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수익률이 둔화하고 지정학적 긴장으로 외국 기업들이 탈중국 러시를 이루며 미국이 핵심 기술을 규제하고 있는 게 주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 마이클 베클리 터프츠대학 교수 등은 저서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에서 “초세계화 시대가 끝나가면서 중국이 과거에 누렸던 해외시장, 기술, 자본 등에 접근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일본은 어떤가. 최근 경제가 일부 호전되고 있지만 아직 ‘잃어버린 30년’의 수렁에서 빠져나왔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일본 경제가 그동안 고전했던 이유는 부동산 버블 붕괴와 정책적 오류, 그리고 이에 따른 디플레이션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병인(病因)은 다른 데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구치 유키오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에서 정보산업 같은 ‘고도의 성장 견인형’ 서비스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것을 주요인으로 언급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구조 전환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낮은 생산성도 일본이 장기 침체를 겪어온 원인 중 하나다. 1997~2007년 연평균 총 요소생산성 증가율은 0.5%에 불과해 선진국 평균치인 2%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반면교사의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두 나라가 공통으로 던져주고 있는 이슈는 생산성의 중요성이다. 우리 경제도 생산성은 ‘낙제’ 수준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각국을 비교한 결과를 보면 한국의 총요소 생산성은 미국 대비 61.4% 수준에 머물고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을 크게 밑돌고 있다. 실제로 생산성의 성장 기여도는 -4%로 그만큼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결국 규제 개혁과 교육 및 기술 훈련 강화, 자본과 기술 축적, 진입과 퇴출장벽 완화 등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게 긴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중국의 경험을 통해 인구 감소의 심각성도 절감하게 된다. 우리는 중국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지난 2분기 합계출산율은 사상 최저 수준인 0.7명을 기록했다. 장기적으로 경제는 물론 국가 소멸 여부를 걱정할 지경이 됐다. 그렇기에 인구 문제 해결은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두고 전방위로 노력을 기울일 사안이 됐다. 인구가 줄어들면 나라도 경제도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일본 사례에서 한 가지 더 주시해봐야 할 것은 산업구조를 빠르게 전환할 필요성이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와 동행할 신성장산업을 발굴하고 기술 ‘퍼스트 무버’로서 입지를 다지는 민관의 공동노력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생산성이 뒤처지는 서비스산업을 고부가가치화하는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
다음은 역할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미국 경제를 살펴보자. 미국 경제는 지난 30년 동안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항을 해왔다.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유럽보다 30%, 일본보다 54% 많다. 강한 미국 경제의 힘은 어디에서 오고 있을까. 더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 경제에 대한 심층 분석 기사에서 노동력 증가와 생산성 향상을 들고 있다. 실제로 생산가능인구는 1990년 1억2700만명에서 지난해에는 1억7500만명으로 38%나 늘어났다. 그런대로 괜찮은 출산율과 이민자 증가 덕분이다. 노동생산성도 같은 기간 62%나 개선돼 유럽(55%)과 일본(51%)을 앞질렀다. 정보통신산업의 혁신과 근로자들의 높은 숙련도,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 등이 생산성 증가를 주도했다. 경제의 역동성,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시장, 활발한 창업과 낮은 실패 비용, 수준 높은 기업 경영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으로 지적된다. ‘미국 경제에서 배우자!’ 한국 경제가 현재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특히 선진국 중에서 가장 ‘젊은 국민’을 가능하게 해주는 이민 문호의 개방성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도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해외 인력 유입에 전향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외국 생산인력은 물론 고급인력 확보를 위해 생각의 틀을 깨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얘기해온 경제적 변수 외에 ‘정신’도 중요하다. 싱가포르의 경제 개발 과정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분리 독립했으며 1986년에는 주둔 영국군 철수라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초대 총리 리콴유는 자서전 ‘일류 국가의 길’에서 강대한 민족주의 국가들 틈에 끼어 생존하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절박한 상황에서 싱가포르가 택한 것은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과감성이었다. 리콴유는 말한다. “세계 다른 어느 곳에서도 유례가 없는 새로운 계획과 방법을 찾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됐다. 싱가포르는 절대로 평범해서는 안 됐다.” 대표적인 예가 허허벌판에서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한 것이다. 독립 당시 예상조차 불가능했던 일을 ‘명확하게 금지되지 않은 것은 허용한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마침내 실현했다. ‘피크 코리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는 이를 돌파해내겠다는 과단성과 절박함이 있는가. 싱가포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추격형 성장의 단계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야 하는 한국 경제, 답을 찾아가야 하는 만큼 다른 나라가 보여주는 ‘타산지석’과 ‘역할 모델’에서 배워야 한다. 리콴유가 말한 것처럼 평범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최남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영학 석사 ▷MTN 대표이사 사장 ▷YTN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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