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의 인사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자리에 앉힌 사람이 나중에 능력 부족이 드러났다거나 무슨 문제를 일으켰다면 변명의 여지라도 있겠으나 사전에 얼마든지 확인이 가능한 사안들로 꼬투리를 잡히기 때문이다.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2월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28시간 만에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를 필두로 해서 요즘 야당의 탄핵 공세에 시달리는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그러했고 마치 릴레이 경주라도 하듯 김명수 합참의장 후보자 역시인사청문회에서 어김없이 자녀 학폭 문제로 야당의 추궁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5일 야당이 '부적격 판정'을 내린 김명수 함참의장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려니 한심함을 넘어 의아하기까지 하다. 불과 한달 전에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이 돌연 사직한 이유도 자녀 학폭 때문 아니었던가.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화제를 모았던 건 단지 한류스타 송혜교의 열연 때문만은 아니다. 학교폭력이 학교의 담장을 넘어 국민 모두가 공분을 느끼는 핫이슈가 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피해 학생의 33.8%가 자살과 자해 충동을 느꼈을 만큼 학폭 피해자들의 고통은 가볍지 않다. 학교폭력에 의해 깊은 상처를 받은 피해자의 복수에 시청자들이 통렬한 대리만족을 느끼고 공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 중일 때는 여야가 경쟁적으로 드라마 대사까지 차용한 길거리 현수막을 내걸고 야단법석이더니 딱 그때 뿐이다. 학폭 드라마가 왜 인기를 끌었는지를 살펴보지 않고 인기에 편승할 궁리만 하니 일말의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고교 시절 학폭 전력 때문에 프로야구 에이스 투수 안우진은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했고, 여자 프로배구 간판스타였던 이재영•다영 자매는 소속팀에서 방출되고 2년 전 쫓기듯 출국한 후 아직도 국내 코트 복귀는 꿈도 못꾸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 고위공직자 후보 인사 업무의 중추는 민정수석실이었다. 조국 사태 등 여러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민정수석실 폐지를 공약했고 취임 후 실행에 옮겼다. 민정수석실이 없어진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실이 추천하고, 추천한 후보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1차 검증한 후 대통령 비서실장 직속 공직기강비서관실이 2차 검증한다. 일견 민정수석실 공백을 메우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정부 출범 3년차가 다 되어가는 최근까지도 인사의 난맥상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간에서 말하기를 윤 대통령은 듣기보다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대통령은 입을 닫고 귀를 열어야 한다. 듣기 싫은 소리를 경청하고 쓴소리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성스러울 '성聖'자를 보더라도 입(口)보다 귀(耳)가 먼저 나오지 않는가.
우리는 당태종 하면 형과 아우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한 패륜에 혀를 차고,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안시성 전투에서 패퇴한 역사에 짜릿함과 민족적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중국인들에게 그는 '정관의 치(貞觀之治)'라 일컬어지는 태평성세를 이룬 역사상 최고의 명군이다. 위징이라는 만고의 명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태종은 위징을 그릇됨을 비추는 거울로 삼아 늘 가까이 두고 그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날 당태종이 위징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명군(明君)이 되고 어떻게 하면 암군(暗君)이 되는가?" 위징이 답했다. "군주가 현명해지는 것은 여러 방면의 의견을 두루 듣기 때문이며, 아둔해지는 것은 한쪽 말만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진나라 2세 황제(秦二世), 양무제(梁武帝), 수양제(随煬帝)를 한쪽 말만 듣다가 망한 암군의 예로 들었다. 당태종은 위징의 말에 흡족해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답에서 유래한 성어가 '겸청즉명兼聽則明, 편신즉암偏信則暗', 즉 '두루 들으면 사정에 밝아지고, 한쪽 말만 믿으면 사정에 어두워진다'이다. 출전은 《자치통감•당태종 정관2년(貞觀二年)》이다.
1400년 전 이야기지만 이 고사가 주는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위징 같은 참모가 윤 대통령에게는 없는가. 정권의 명운이 걸린 22대 총선이 불과 넉달 남짓 남았다.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의 인적 개편이 조만간 단행될 예정이다. 대통령은 "내가 모르는 사람도 좋다"고 했다고 한다. 그동안은 아는 사람만 썼다는 고백으로도 들리지만, 공자 말씀마냥 '어려움을 겪으면서 깨우침이 있었다(곤이학지困而學之)'는 시그널로 읽고 싶다. 우리 속담에도 이르기를 아이 말도 귀여겨들으라고 했다. 모쪼록 여러 사람의 의견을 두루 듣고 널리 인재를 구하기 바란다. 인사가 만사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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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예전 직장생활에서 어떤사람이 일을 맡느냐에 따라정말 천차만별로 차이가났습니다.제발 사람보는 안목을 가지고 잘하기만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