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품질 결함' 중국산 저가 철도차량 계약 취소…"한국도 장벽 세워야"

펜실베니아 교통국, 中 CRRC와 계약한 2층 전동차 사업 취소

'바이 아메리카' 법 위반 관련 감사 착수

"철도산업은 안보와 직결…韓 최저가 입찰제 서둘러 고쳐야"

미국이 중국의 국영 철도차량 제조업체 CRRC(중국중처)와 맺은 철도차량 도입 계약을 전면 철회했다. 잦은 결함 발생으로 인해 납기가 4년이 지나도록 단 1량도 납품하지 못한 데다 입찰가격 덤핑으로 자국 철도시장은 물론 안보까지 교란하고 있다는 의혹이 커지면서다. 

15일 미국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펜실베니아주 남동부 교통당국은 지난 12일(현지시간) 2017년 CRRC와 맺은 1억8500만 달러 규모의 2층 전동차 45량 도입 사업 계약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품질 문제와 이로 인한 납기 지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예정보다 약 4년 지연된 상태로 초도 물량조차 납품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은 2022년 1월에 생산 중인 CRRC 차량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CRRC 차량의 내부 패널과 전기 배선, 안전과 직결된 비상구 창문 등에 결함이 발견됐으며 제동장치 시험에서도 반복적으로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 당국의 사업 제동으로 미국 현지에서 저가 중국산 철도차량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CRRC는 막대한 자국 보조금을 앞세워 미국을 포함한 해외 시장에서 터무니없는 초저가 응찰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왔다. 이번에 취소된 계약 건 역시 CRRC가 경쟁사인 캐나다 봄바르디어보다 3400만 달러나 낮은 가격을 써내 논란이 일은 바 있다. CRRC가 2014년 수주한 보스턴 매사추세츠만 교통공사 전동차 404량(오렌지 라인 152량, 레드 라인 252량) 사업은 탈선과 부품 누락, 제동 장치 조립 불량, 배선 불량, 배터리 폭발, 차량 시험 지연, 코로나19 조립 라인 지연 등으로 첫 차량 출고가 예정보다 7개월 늦게 이뤄졌다. 

지난해 미국 교통부 감사관실은 CRRC가 '바이아메리카 법(Buy America Act)'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 상‧하원 군사위원회는 국가 보조금을 사용해 저가 공세로 시장을 교란하는 중국 기업들이 자국 내 교통 산업 조달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방법안' 절충안에 합의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사례처럼 국내도 중국산 철도차량처럼 무분별한 해외 업체의 입찰 참여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벽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한국철도공사(코레일)를 포함한 국내 주요 철도차량 발주처들은 최소한의 기술 점수만 넘기면 최저가 응찰 기업이 사업을 수주할 수 있는 '2단계 규격‧가격 분리 동시 입찰제'를 활용하고 있다. 아무런 규제 없이 국제 경쟁 입찰을 실시하는 국내 철도차량 조달시장의 취약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유럽은 자체 규격 규정인 TSI(Technical Specifications for Interoperability)라는 규제 장벽을 두고 있다. TSI는 유럽 내 운영되는 철도의 상호 호환성을 만족하기 위한 요건들을 정한 것으로 설계나 건설, 개량, 개조, 운영 및 유지관리, 안전 요건 등은 물론 차량에 들어가는 세부 부품 규격까지 포함돼 있다. 튀르키예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비 EU 국가들도 TSI 만족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달 내수 시장을 왜곡하는 수준의 역외보조금을 받아 해당 사업에 지나치게 낮은 응찰가를 제시했다는 의혹으로 CRRC에 대한 '역외보조금규정(FSR)' 심층 조사를 착수한 바 있다. 2억5000만 유로 이상의 입찰에 대해 최근 3년 동안 최소 400만 유로의 해외 재정 지원을 받은 업체가 참여를 원할 경우 스스로 EU 집행위원회에 해당 사실을 통보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뒷받침되면서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철도차량 시장 점유율 1위인 중국 역시 철도차량 입찰 참여 시 자국법인과의 공동응찰을 의무화한 것을 비롯해 완성차는 70% 이상, 전장품은 40% 이상의 자국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며 "국가기간산업인 데다 안보와도 직결된 핵심 교통수단인 철도산업을 지키기 위해 한국 역시 국내도 해외 업체의 시장 교란을 차단할 국산화 부품 사용 조건을 두는 등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CRRC가 북미에서 제조한 철도차량 [사진=CRR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