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BRICS)가 서방의 러시아 고립 시도를 흔들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이 브릭스 문을 잇달아 두드리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반미 연대 결성의 디딤돌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리 창 중국 총리는 이번 주 각각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이들 나라는 브릭스 가입 의사를 드러낸 곳들이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번 리 총리의 방문에 앞서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브릭스 가입 의사를 타진했다. 그는 “곧 공식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며 브릭스 가입을 위한 준비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릭스 가입을 원하는 나라는 말레이시아만이 아니다. 미국 동맹국인 태국도 브릭스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태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에서 열리는 다음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튀르키예는 이달 초 유럽연합(EU) 대신 브릭스에 가입하는 안을 고려 중이라고 공개적으로 알렸다.
러시아는 올해 브릭스 의장국이다. 이달 초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르드에서 열린 브릭스 외무장관 회의에는 브릭스 회원국 외에도 12개 나라가 참여했다. 쿠바, 베네수엘라 등 전통적인 반미 국가를 비롯해 튀르키예, 라오스,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카자흐스탄, 베트남 등이 러시아로 모였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주 북한에 이어 찾아간 베트남 역시 브릭스 가입을 적극 모색 중이다. 팜 투 항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베트남은 항상 글로벌 및 지역 다자간 메커니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할 준비가 돼 있다"며 브릭스 가입 의사를 밝혔다.
이에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을 통해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러시아는) 브릭스 회원국과 베트남을 포함한 개발도상국 간 유대를 강화할 것”이라며 브릭스가 이들 나라에 문을 활짝 열고 있다고 시사했다.
실제 브릭스는 지난해부터 외연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브릭스는 회원국인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 남아프리카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의 이름을 따 만든 협력체다. 지난해 이란,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에티오피아 등 4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입 승인을 받았다.
문제는 브릭스 회원국들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국제 사회의 러-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노력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달 스위스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의 공동성명에 브릭스 회원국들은 물론이고 가입을 추진 중인 인도네시아, 태국, 리비아, 바레인 등도 서명하지 않았다.
블룸버그는 “브릭스는 오는 10월 러시아 카잔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비회원국들을 초청할 계획”이라며 “러시아가 이 행사를 주최하는 것만으로도, 러시아가 완전히 고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브릭스 가입을 원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이푸딘 압둘라 전 말레이시아 외교부 장관은 “나를 포함해 일부는 불공정한 국제 금융 및 경제 구조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브릭스는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원전 외교 역시 반미 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 로스톰은 방글라데시, 튀르키예 등에 원전을 짓는 중이다.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여전히 독보적인 원전 수출국이다. 중국, 인도, 이란, 이집트 등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신규 원자로의 3분의 1 이상이 로스톰과 관련이 있다.
원전 건설에는 약 10년, 운영에는 약 60년이 걸린다. 러시아가 원전 수출을 통해 해당 나라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가하는 통로가 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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