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가 넓을수록 나무가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추운 환경에서 자란 나무들은 나이테가 좁다고 합니다. 마치 나무가 웅크려서 그런 것처럼요.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작가상’을 수상한 이슬기 작가는 호기심이 많다. 1992년 프랑스 생활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여러 나라의 민속적 요소와 일상적 사물, 언어 등을 탐구했다. 작가는 세상에 관한 호기심에 해학을 더한 작품을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공동체를 표현한다.
이슬기 작가의 개인전 ‘삼삼’이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개막했다. 2018년 ‘다마스스(DAMASESE)’ 전시 이후 6년 만에 갤러리현대가 기획한 두 번째 개인전이다.
‘삼삼’은 이슬기 작가가 한국에 몇 개월 동안 체류하며 고안해낸 신작 ‘현판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꾸준히 해온 ‘이불프로젝트 : U’의 새로운 이불 작품들, 대규모 설치 작업을 재편성한 ‘느린 물’, 갤러리현대 전 층을 가로지르는 ‘모시 단청’ 벽화 작업 안에 설치된 ‘쿤다리’, ‘K’, ‘바가텔’ 등 30여 점을 선보인다.
‘삼삼하다’는 표현에서 착안한 전시 타이틀 ‘삼삼’은 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집약하는 키워드다. ‘외형이 그럴듯하다’, ‘눈앞에 보이는 듯 또렷하다’ 등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어 사용되는 형용사 ‘삼삼하다’처럼, 이 작가의 작품은 대상이나 오브제가 지시하는 보편적이고 고정된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관람객은 전시 ‘삼삼’을 통해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된다. 신작 ‘현판프로젝트’는 도안화된 의성어나 의태어를 나무 널빤지 위에 새겨 단어의 의미와 외형의 연결고리를 해학적으로 형상화한 작업이다.
작가는 사람만큼 거대한 덕수궁 대한문 현판에 대한 의문을 바탕으로 나무를 재료로 선택하고 태초의 단어가 무엇일지를 탐구하게 됐다.
이 작가는 “한국어의 의성어는 매우 그래픽적이다. ‘쿵쿵’, ‘쾅쾅’, ‘꿍꿍’ 등의 단어는 모두 ‘삼삼한’ 장면을 생성한다”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문을 열고 닫을 때 나는 ‘쿵쿵’이나, 문이 미끄러지는 소리인 ‘스르륵’ 등을 택했다. 여기에 각 의성어와 대구를 이루는 소리를 문자화해 흰 단청 색으로 중첩했다. ‘쿵’과 ‘덕’, ‘스르륵’과 ‘쉬’, ‘출출’과 ‘쏴’, ‘부시시’와 ‘ㅎ’이 함께 한 작품을 이룬다. 작가가 현판에 새긴 단어는 특정한 의미가 없는 의성어로, 과거 중요한 이름이 새겨졌던 현판과는 대조적인 점도 흥미롭다.
이 작가는 ‘현판프로젝트’를 통해 2019년부터 탐구해 온 ‘문’이라는 주제를 확장해 나간다. 문은 ‘들어가는 곳’, ‘나가는 곳’,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라는 세 가지 공간을 암시함으로써 각기 다른 관점에서 하나의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는 같은 작품이라도 관람객의 위치나 시선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라쇼몽(羅生門·Rashomon) 현상’과 같이 동일한 사건이라도 입장에 따라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과 유사하다.
지하 1층 전시장에서는 통영 누비장인과 협업한 ‘이불 프로젝트:U’ 신작을 만날 수 있다. 이 작가는 2015년 시작된 이불 프로젝트에 관해 “1980년대에 유행했던 누비이불은 그 당시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며 “색이 아름다운 누비이불을 프랑스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었지만 요즘은 한국에서 누비이불을 구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작가는 “우리 생의 반 이상을 지내는 곳이 이불이라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기도 죽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빛 반사가 뛰어난 진주 명주(견직물) 조각천을 조합해 누빈 이불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또한 언어나 속담의 유래나 기원을 작품에 담았다. ‘트집 잡다’의 트집은 갓 챙을 인두질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트집 작업으로 돈을 뜯던 조선시대 갓 장인들의 행위에서 유래하고 있다.
‘부아가 나다’는 제목의 이불 작업 속 형상은 ‘허파가 부푼다’라는 ‘부아가 나다’의 의미 그대로 부은 허파 모양을 표현했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요한 키워드로 ‘구멍’을 강조한다. 작가는 가상의 구멍을 통해 전시장에 노을 빛이 스며드는 장면을 상상하며 전시를 구성했다.
작가가 말하는 ‘구멍’은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문이 만드는 밖과 안을 연결하는 큰 구멍부터 나무 문살의 격자 모양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작은 구멍, 전시장 벽면에 직조된 모시 단청 사이사이 등을 의미한다. 전시장 곳곳의 벽면에 도색 된 살구색 또한 노을 빛을 화이트 큐브로 전달하는 구멍 역할을 한다.
김현진 독립큐레이터는 “작가에게서 장인 기술이나 전통은 동시대의 시각성과 결코 이질화하거나 불화하지 않으며, 특유의 개방성 안에서 전통은 친근하고 다정하며 즐거운 기술로 끊임없이 호출된다”며 “오늘 우리가 보는 이슬기의 작품들은 바로 스스로 전통을 ‘기억하는 행위’ 그 자체일 뿐 아니라, 마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해 해학의 공동체를 위해 스르륵 열리는 ‘문’과 같다”고 짚었다.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작가는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작가는 갤러리 주스 앙트르프리즈(2022·2017), 맨데스우드 DM 갤러리(2022), 인천아트플랫폼(2021), 라크리에 아트센터(2019), 갤러리현대(2024·2018)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올해의 작가상 2020’ 최종 수상자로 선정됐던 이 작가는 제12회 부산 비엔날레(2020), 제10회 광주 비엔날레(2014), 제3회 파리 라트리엔날레(2012), 제1회 보르도 비엔날레(2009) 등에 참여했다. 또한 대안공간루프(2021),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17), 장식미술박물관(2015), 쿤스트할레빈(2007), 팔레드도쿄(2001) 등의 기관에서 개최된 그룹전에 초대됐다. 주요 소장처로는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프랑스지역자치단체현대미술컬렉션 프락(FRAC) 등이 있다.
오는 9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17회 리옹 비엔날레에 참가 예정이며, 2025년에는 영국 버밍엄에 위치한 이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전시는 오는 8월 4일까지.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작가상’을 수상한 이슬기 작가는 호기심이 많다. 1992년 프랑스 생활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여러 나라의 민속적 요소와 일상적 사물, 언어 등을 탐구했다. 작가는 세상에 관한 호기심에 해학을 더한 작품을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공동체를 표현한다.
이슬기 작가의 개인전 ‘삼삼’이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개막했다. 2018년 ‘다마스스(DAMASESE)’ 전시 이후 6년 만에 갤러리현대가 기획한 두 번째 개인전이다.
‘삼삼’은 이슬기 작가가 한국에 몇 개월 동안 체류하며 고안해낸 신작 ‘현판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꾸준히 해온 ‘이불프로젝트 : U’의 새로운 이불 작품들, 대규모 설치 작업을 재편성한 ‘느린 물’, 갤러리현대 전 층을 가로지르는 ‘모시 단청’ 벽화 작업 안에 설치된 ‘쿤다리’, ‘K’, ‘바가텔’ 등 30여 점을 선보인다.
‘삼삼하다’는 표현에서 착안한 전시 타이틀 ‘삼삼’은 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집약하는 키워드다. ‘외형이 그럴듯하다’, ‘눈앞에 보이는 듯 또렷하다’ 등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어 사용되는 형용사 ‘삼삼하다’처럼, 이 작가의 작품은 대상이나 오브제가 지시하는 보편적이고 고정된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관람객은 전시 ‘삼삼’을 통해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된다. 신작 ‘현판프로젝트’는 도안화된 의성어나 의태어를 나무 널빤지 위에 새겨 단어의 의미와 외형의 연결고리를 해학적으로 형상화한 작업이다.
작가는 사람만큼 거대한 덕수궁 대한문 현판에 대한 의문을 바탕으로 나무를 재료로 선택하고 태초의 단어가 무엇일지를 탐구하게 됐다.
이 작가는 “한국어의 의성어는 매우 그래픽적이다. ‘쿵쿵’, ‘쾅쾅’, ‘꿍꿍’ 등의 단어는 모두 ‘삼삼한’ 장면을 생성한다”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문을 열고 닫을 때 나는 ‘쿵쿵’이나, 문이 미끄러지는 소리인 ‘스르륵’ 등을 택했다. 여기에 각 의성어와 대구를 이루는 소리를 문자화해 흰 단청 색으로 중첩했다. ‘쿵’과 ‘덕’, ‘스르륵’과 ‘쉬’, ‘출출’과 ‘쏴’, ‘부시시’와 ‘ㅎ’이 함께 한 작품을 이룬다. 작가가 현판에 새긴 단어는 특정한 의미가 없는 의성어로, 과거 중요한 이름이 새겨졌던 현판과는 대조적인 점도 흥미롭다.
이 작가는 ‘현판프로젝트’를 통해 2019년부터 탐구해 온 ‘문’이라는 주제를 확장해 나간다. 문은 ‘들어가는 곳’, ‘나가는 곳’,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라는 세 가지 공간을 암시함으로써 각기 다른 관점에서 하나의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는 같은 작품이라도 관람객의 위치나 시선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라쇼몽(羅生門·Rashomon) 현상’과 같이 동일한 사건이라도 입장에 따라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과 유사하다.
지하 1층 전시장에서는 통영 누비장인과 협업한 ‘이불 프로젝트:U’ 신작을 만날 수 있다. 이 작가는 2015년 시작된 이불 프로젝트에 관해 “1980년대에 유행했던 누비이불은 그 당시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며 “색이 아름다운 누비이불을 프랑스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었지만 요즘은 한국에서 누비이불을 구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작가는 “우리 생의 반 이상을 지내는 곳이 이불이라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기도 죽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빛 반사가 뛰어난 진주 명주(견직물) 조각천을 조합해 누빈 이불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또한 언어나 속담의 유래나 기원을 작품에 담았다. ‘트집 잡다’의 트집은 갓 챙을 인두질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트집 작업으로 돈을 뜯던 조선시대 갓 장인들의 행위에서 유래하고 있다.
‘부아가 나다’는 제목의 이불 작업 속 형상은 ‘허파가 부푼다’라는 ‘부아가 나다’의 의미 그대로 부은 허파 모양을 표현했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요한 키워드로 ‘구멍’을 강조한다. 작가는 가상의 구멍을 통해 전시장에 노을 빛이 스며드는 장면을 상상하며 전시를 구성했다.
작가가 말하는 ‘구멍’은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문이 만드는 밖과 안을 연결하는 큰 구멍부터 나무 문살의 격자 모양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작은 구멍, 전시장 벽면에 직조된 모시 단청 사이사이 등을 의미한다. 전시장 곳곳의 벽면에 도색 된 살구색 또한 노을 빛을 화이트 큐브로 전달하는 구멍 역할을 한다.
김현진 독립큐레이터는 “작가에게서 장인 기술이나 전통은 동시대의 시각성과 결코 이질화하거나 불화하지 않으며, 특유의 개방성 안에서 전통은 친근하고 다정하며 즐거운 기술로 끊임없이 호출된다”며 “오늘 우리가 보는 이슬기의 작품들은 바로 스스로 전통을 ‘기억하는 행위’ 그 자체일 뿐 아니라, 마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해 해학의 공동체를 위해 스르륵 열리는 ‘문’과 같다”고 짚었다.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작가는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작가는 갤러리 주스 앙트르프리즈(2022·2017), 맨데스우드 DM 갤러리(2022), 인천아트플랫폼(2021), 라크리에 아트센터(2019), 갤러리현대(2024·2018)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올해의 작가상 2020’ 최종 수상자로 선정됐던 이 작가는 제12회 부산 비엔날레(2020), 제10회 광주 비엔날레(2014), 제3회 파리 라트리엔날레(2012), 제1회 보르도 비엔날레(2009) 등에 참여했다. 또한 대안공간루프(2021),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17), 장식미술박물관(2015), 쿤스트할레빈(2007), 팔레드도쿄(2001) 등의 기관에서 개최된 그룹전에 초대됐다. 주요 소장처로는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프랑스지역자치단체현대미술컬렉션 프락(FRAC) 등이 있다.
오는 9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17회 리옹 비엔날레에 참가 예정이며, 2025년에는 영국 버밍엄에 위치한 이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전시는 오는 8월 4일까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