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디의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UP:Uttar Pradesh)는 인도 북부의 주(州)로 인도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행정구역이다. 인도어로 '북쪽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 우타르 프라데시는 힌두교 신자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갠지스강 상.중류의 대평원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넓이는 한반도 면적과 비슷하나 인구(2억5000만여 명)가 세계 6위의 인구 대국인 브라질보다 많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힌두교인으로 밀과 쌀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1인당 GDP(800~900달러 수준)가 인도의 28개 주와 8개의 연방 직할령 중에서 옆 동네인 비하르(Bihar)주와 함께 가장 낮은 지역으로 꼽힌다. '힌두 민족주의자' 나덴드라 모디 총리는 이곳 우타르 프라데시의 힌두교 성지인 바라나시(Baranasi)가 지역구이다. 어린 시절 길에서 홍차 노점상을 하던 최하층 계급 출신인 모디 총리가 10년 전 총선에서 하원의원으로 처음 당선돼 연방 총리까지 거머지도록 발판을 마련해 준 곳이기도 하다. 당시 총리 등극 확정 후 '힌두 민족주의자'인 모디는 첫 행보로 바라나시 중심부의 유명 힌두사원 카시지슈와니스에서 기도를 한 뒤 갠지스강에 우유를 붓는 종교의식에 참여했다. 그는 "인도가 영적 위대함에 도달했듯 경제강국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2014년 총선에서 모디는 홍차를 팔던 사람이 어떻게 국가의 수반이 되겠느냐는 노골적인 비야냥을 받았지만 고물가와 경제 불황 그리고 부패 스캔들에 지친 유권자는 간디나 네루 왕조의 자제가 아닌 자수성가한 천민 출신 정치인을 선택했다. 구자라트주에서 주 총리를 3번이나 연임하면서 지역경제를 살린 경험을 바탕으로 모디 총리는 과감한 경제개혁과 친기업 정책으로 인도를 눈부신 성장궤도에 올려 놓았다. 2010년까지만 해도 세계 10위권 밖이던 인도는 2022년 영국을 제치고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 경제대국이 되었다. 지난해 모디 정부는 독립 100주년(2047년)이 되는 해에 인도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긴 여정을 시작하는 원년으로 선포했다. 모디는 자신의 꿈인 '하나 된 인도, 위대한 인도'를 달성하기 위해선 나라를 '힌두교 국가"로 개조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3연임이 걸린 올해 총선에서 개헌의 마지노선인 362석(3분의 2) 이상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최대 관전 포인트였다. 집권 인도국민당(BJP) 정치연합은 2019년 총선에서 개헌선에 9석 모자란 353석을 얻었다
모디 정부는 2019년 무슬림이 다수인 인도 최북단 잠무 카슈미르주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올해 총선을 몇 달 앞둔 1월 22일 모디 총리는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종교 성지인 아요디아(Ayodhya)에서 1992년 힌두 민족주의자 폭도들이 철거한 이슬람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세운 힌두 람사원 개관식을 직접 주도했다.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위해 인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 신자들의 표심을 결집시키고자 하는 정치적인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난 행사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지난 10년간 높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압승을 예상하던 모디 총리에게 굴욕을 안겼다. BJP의 '표밭'이었던 우타르 프라데시는 이번 총선의 최대 이변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BJP는 우타르 프라데시에서 겨우 33석을 당선시켰다. 5년 전에 비해 29석이 감소한 것이다. 모디 정부가 추구해왔던 ‘힌두의 인도’ 건설과 소외계층에 대한 불평등정책을 비판해온 지역 정당인 사마즈와디당(SP)은 BJP보다 더 많은 37석을 확보했다. BJP는 또 다른 '힌디의 텃밭'인 라사스탄에서 5년 전 24석에 비해 10개 의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소위 '힌디 벨트'에서의 참패는 BJP의 의석수가 전국적으로 전체(543석)의 과반에서 32석 모자란 240석에 그치게 된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번 결과는 BJP가 '모디 돌풍'을 일으키며 압승을 거머쥐었던 2014년(282석)과 2019년(303석)에 한참 못 미친다. BJP가 다른 정당과 구성한 여권 연합정치세력인 국민민주연합(NDA)의 의석이 절반(272석)을 넘어서며 모디 총리의 3연임은 가까스로 확정됐지만 힌두교 표밭에서 집권당은 쓴잔을 마셔야 했다. 유권자들은 왜 이곳에서 모디 총리에게 치명타를 날렸을까?
빈부 격차와 '힌두 우선주의'
많은 전문가들은 인도의 빈부 격차 심화와 힌두 민족주의에 대한 반정서를 이유로 들고 있다. 유권자들은 인도의 불평등한 문제 해결보다 힌두 민족주의 의제를 우선시하며 인도 전역을 '힌두의 인도'로 탈바꿈시키려는 모디 총리에게 엄중한 경종을 울린 것이다. 모디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세계 최대 인구 국가인 인도는 높은 경제성장을 거듭해 왔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농민들은 생계가 막막해 정부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인도의 국제적 모디 정부가 3기에 풀어야 할 많은 숙제를 남겼다. 무엇보다도 성장에 방점을 두었던 기존 정책에서 분배를 신경 쓰는 쪽으로 변화가 예상된다
인도의 빈부 격차 문제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눈부신 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자신이 공저한
부의 양극화 문제는 정치적 안정과 제조업 육성을 통해 고성장 드라이브 정책을 펼치려는 모디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8억명이 넘는 농민과 빈곤층의 생활고를 해결하는 문제가 당장 모디 3기의 주요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또 대기업 중심 성장 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날지도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모디의 경제정책은 1970~1980년대 한국의 성장 모델과 유사했다. 즉, 릴라이언스, 아다니, 타타 등 5대 대기업 집단을 중심 지원해서 단기간에 경제를 육성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들이나 정부와 연줄이 없는 민간 기업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최근 인도 경제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다고 해도 GDP는 중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중국과 달리 인도는 향후 30년 이상 인구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가 과거 중국이 누렸던 인구 보너스 효과를 누리며 고성장을 이어가려면 극빈층 생활고와 청년 실업난 해소를 통한 정치적·사회적 안정은 필수이다. 중국의 경우 개혁·개방에 시동이 걸린 1980년대 전체 인구의 90%가 극빈층(하루 생계비 2달러 안팎)에 속했으나 2020년 전후로 공식적으로는 완전히 사라졌다.
'힌두 우선주의'로 인한 종교적 갈등은 내부적으로 사회적 불협화음의 씨앗으로 인도의 지속적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이번 선거 결과로 입증이 됐다. 외부적으로도 인도라는 다원적 민주주의가 일궈온 그동안의 평판을 훼손시킨다. 이번 선거는 눈부신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인도 경제의 어두운 그늘을 들추어낸 선거였다. 남아시아 국제정치 분석가 T. V. Paul은 최근 저서
이번 총선 선거 결과 불안해진 '모디노믹스'의 동력이 다시 힘을 받아 고도 성장을 견인하려면 모디 총리는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맞서 해결해야 한다. 집권 1·2기 때와는 달리 모디 3기의 정치적 입지는 축소되고 정책적 불확실성은 커졌다. 그러나 모디는 카리스마가 강한 백전노장의 정치인이다. '힌두의 인도'에 대한 야망은 뒤로하고 경제 발전과 사회복지 향상을 위해 국력을 결집시켜 나가면 인도를 선진 민주주의 경제대국으로 변모시키려는 그의 꿈은 실현될 것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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