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공매도 시스템 재개를 앞두고 금융투자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통제 시스템 구축에 대한 행정 지도안을 발표한 가운데, 사모 운용 업체들이 난색을 표명하고 나섰다. 공매도 전담 부서를 만들고 해당 부서를 감사하는 부서와 별도 인력을 두라는 금융감독원의 주문이 현실을 도외시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하반기 들어 중소형급 증권사와 운용사 30여 곳이 리스크관리 업무 인력을 뽑고 있다. 사무수탁·자산평가·펀드평가·투자 관련 법률 검토 및 기타 위험 관리 업무 가능자를 뽑는다는 내용이다. 사무수탁· 펀드평가·투자 자산 법률검토 등에는 공매도 거래에 대한 감시도 포함된다.
이들 중소형 증권사와 운용사들은 지난 7월 금융당국의 공매도 재개 관련 지침을 확인한 뒤 서둘러 인력 충원에 나섰지만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년 3월 재개되는 공매도 거래를 하기 위해선 연말까지 내부통제 가이드라인을 충족시켜야 한다. 인력도 부족하지만 시간은 더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금감원에 따르면 공매도 거래를 하려는 회사들은 공매도 거래를 통제하는 별도 부서와 이를 감시하는 부서를 지정해야 한다.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채용 중인 준법감시인이 주요 역할은 할 수 있지만 공매도 거래 전담부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다.
여기에 더해 공매도 주문과 관련한 법적 타당성을 스스로 점검하고 거래 승인 절차도 도입해야 한다. 혹시라도 있을 내부 사고를 막기 위해 정기 점검과 위반자 조치 및 재발 방지 대책도 요구했다.
대형·중견급 이상의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기존에 있는 인력을 활용해 대차 업무를 감시하는 부서를 이미 세팅해 놓았지만 중소형급 증권사와 운용사는 인력 재배치를 앞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내부 통제 부서와 감사 부서들이 공매도 업무에 대한 특성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냐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통제 및 감사 부서들이 공매도 관련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한가”라면서 “결국 업무 이해도가 있는 사람은 실무 부서에 있는 것이 가장 적합하지 않겠냐”고 토로했다.
차입 공매도를 활용해 펀드 상품을 운용하는 소형 사모 운영사의 경우 3~5명 이내의 소규모로 운용되는 경우도 많아 공매도 업무를 전담 배치할 인력조차 없다는 불만을 내놓고 있다. 국내에 등록된 운용사는 470개다. 이 중 사모 운용사는 400여 개, 여기서 50개 안팎의 운용사들이 차입 공매도를 활용해 롱숏 전략의 헤지펀드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외국계 증권사의 대규모 무차입 공매도를 적발했다며, 지난해 11월부터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이 탓에 롱숏 헤지펀드 전략을 내세우는 사모 운용사들은 대차 중개를 할 수 없어 선물 거래를 통해 기존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선물 거래도 펀드는 20% 내외로 제한돼 수익률 증대보다는 현상 유지만 하고 있는 정도다.
사모운용사 관계자는 “롱숏 전략은 운용역의 역량에 좌우되는 만큼 다른 전략 대비 비용이 더 많이 든다”면서 “대차 업무를 감시해야 하는 지정 부서와 이를 감시하는 감사 부서까지 만든다면 소형 운용사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 충원과 재배치 문제와 함께 앞으로 대차 거래 소요 시간도 더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금감원이 발표한 행정 가이드라인을 보면 장 시작 전 계산 단위별로 당일 최초 매도가능잔고(SDO) 수량 계산을 완료하고, 장 시작 후 매매 주문과 체결 내역 등을 반영해 매도가능잔고 수량을 실시간 산출하라고 적시했다.
이와 관련해 한 사모운용 관계자는 “기존에는 대차 거래 업무를 하는 데 30분이 걸렸다”면서 “지금은 수량까지 미리 확보해야 한다면 전날부터 꼬박 하루가 걸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부서가 더 필요한 것도 번거롭지만, 업무 시간 자체가 더 늘어나는 것이 더 문제다. 이렇게 된다면 사모 운용사들은 롱숏 헤지펀드 전략 대신 기업공개(IPO) 전략 펀드 출시를 늘릴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사모 운용사들은 기존에 해오던 롱숏 헤지펀드 전략 대신 IPO 전략 펀드 출시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사모에서 공모 펀드로 전환해 상장지수펀드(ETF) 개설 등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운용사는 아예 공매도가 필요한 상품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 한 중견급 운용사 관계자는 “당국이 내년 3월 공매도를 재개한다고 말했지만 다시 미뤄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시스템이 안정화 될 때까지는 공매도 전략이 필요한 상품은 내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금투업계 관계자는 “인력 등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따를 수 없는 곳은 사실상 업무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대형사 위주의 펀드만 남고 다양성은 부족해진다. 결국 자산운용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당국 관계자는 “사모 운용업계의 인력난 등 문제는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이는 국내 법인이 아닌 외국 법인도 포함되는 사안으로 발표된 가이드라인은 '행정지도'일 뿐 강제는 아니기 때문에 참고만 하면 된다”고 전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