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국내 건설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건설원가는 급등한 상황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비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유찰이 거듭되는 가운데 내년 국토교통부의 SOC 예산이 감소하면서 건설경기 위축이 길어지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1일 건설업계와 조달청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조달청과 정부와 지자체 등이 발주한 사업비 1000억원 이상 공공공사 및 대형 SOC 사업의 상당수가 유찰로 인해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입찰 결과가 확인되는 32건 중 유찰 사업장만 총 26건으로 확인된다. 특히 강북정수장 증설공사,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 건설공사, 부산항 진해신항 컨테이너 부두 조성공사 등의 사업은 올해만 3차례 이상 유찰되기도 했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광화문과 강남구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건설공사의 경우,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 과정에서 1인 신청 등의 사유로 지난 1월에 이어 4월에는 재공고 등을 거쳐 2차례나 유찰이 이어졌다. 도림천 일대 대심도 터널 사업 역시 2차례 유찰이 이어졌다. 이들 3개 대심도 터널의 사업비는 당초 1조2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유찰로 사업이 공회전을 면치 못하자 사업비가 1조3600억원 수준으로 상승하며 겨우 지난 5월 시공사를 확정지은 바 있다.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 건설공사 사업도 총 5차례 유찰을 거듭하다가 사업비를 기존 3170억원에서 3600억원으로 증액하고도 한 차례 유찰을 거쳐 지난달에야 간신히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고, 강북정수장 증설공사(사업비 2578억원 규모)도 올해 세 차례 유찰되며 난항을 겪고 있다.
지방의 핵심 인프라 확충 사업도 마찬가지다. ‘새만금 지역간 연결도로 건설공사’의 경우 1공구와 2공구 모두 6월과 지난달 연이어 유찰되면서 최초 발주 후 3차례나 개찰이 무산됐다. ‘부산항 진해신항 남측 방파호안’ 조성공사 사업도 지난달 1공구 조성사업이 유찰되며 3차례나 입찰이 유찰되는 상황을 맞았다.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는 SOC 사업의 잇단 유찰은 인건비 및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건설원가가 급등했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공사를 추진하며 이를 반영하지 않고 낮은 사업비를 책정한 영향이 크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심지어 대형 SOC 사업에 나설 경우 많게는 수백억원 이상의 적자까지 각오해야 할 정도다.
한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3년 전과 비교하면 들어가는 원가만 30% 오른 상황”이라며 “처음 편성 사업비도 원가에 비하면 많이 낮은 수준인데, 기재부 등에서 추후에 예산보다도 낮은 금액으로 공사비를 책정하는 경우까지 있다 보니 결국 SOC 입찰 자체를 검토하지 않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 SOC 예산을 25조4825억원으로 올해(26조4422억원)보다 1조원 가까이 줄이기로 하면서 업계와 전문가들은 대형 SOC 예산이 추가 삭감되면 대형 사업장의 유찰 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공공사 유찰의 경우, 결국 사업비를 올려 재공고해야 하는데 이때 SOC 예산으로 추가 사업비를 조달하기 때문이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 SOC 예산 발표 시 그간 상승한 원가와 현재 유찰된 공사 현황 등을 반영해 편성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유찰 사업장의 재입찰마저 위축될 우려가 커졌다”며 “유찰 사업장들은 정부가 빠르게 사업성 분석을 통해 비용을 산정하고, 재입찰에 나서야 하는 상황인데 예산 위축으로 이런 사업 추진이 더욱 지연될 가능성이 크고, 나아가 국내 건설경기 위축도 더욱 악화될 여지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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