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장기 불황에 한국 경제까지 휘청이고 있다. 한때 국가 경제 발전의 주춧돌이자, 기업 내 효자 사업으로 통했던 석유화학 산업이 무너지자, 국내 산업 전반에 위기가 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재계 6위인 롯데가 최근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 장기화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것처럼, 석유화학 산업 비중이 적지 않은 SK·LG·한화·효성·금호 등 굴지의 그룹사들도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석유화학 산업 장기 불황이 예고된 만큼, 기업의 자율적인 노력에 더해 정부의 금융 및 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부가 주도로 하는 '빅딜'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 수익성 지표로 통하는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금액)가 지난달 톤당 평균 148.42달러다. 통상 250~300달러가 손익 분기점으로 통한다. 이보다 낮으면 에틸렌을 팔아도 이익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인데, 국내 에틸렌 스프레드는 2022년 이후 줄곧 톤당 300달러를 밑돌고 있다.
에틸렌은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 때 쓰는 기초 제품으로 국내 기업들의 주력 생산 제품이기도 하다.
에틸렌 스프레드 지표가 장기간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이유는 중국과 연관이 깊다. 과거 중국은 국내 기업이 수출한 석유화학 제품을 재가공 사용해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의 최대 수출 무대로 통했다. 하지만 최근 자국 내 설비 시설을 갖추고 자급률을 높이며 국내 기업의 수출 물량이 현저히 줄었다.
실제 중국은 2014년 1950만톤 수준이던 에틸렌 설비 능력을 지난해 5180만톤 수준까지 급격히 끌어올렸다. 한국(1270만톤)과의 차이는 4배 이상이다.
결국 에틸렌 직접 생산 비중이 높은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중국발 공급과잉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롯데케미칼이다. 롯데케미칼은 한때 연간 1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내던 롯데그룹 효자 계열사였지만,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인해 지난 2022년부터 현재까지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까지 4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2년 7626억원 영업 적자를 낸 것을 시작으로, 지난 2023년 3331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3분기 역시 영업손실 4136억원을 기록하며 누적 영업손실액만 6600억원까지 늘어났다.
결국 롯데그룹은 최근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까지 휩싸였다. 롯데케미칼이 실적 악화로 일부 공모 회사채의 실적 관련 재무 특약을 준수하지 못한 결과다. 다른 기업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화그룹과 LG그룹, 효성 모두 그룹 내 석유화학 계열사가 올해 3분기 적자를 기록해 그룹 전체 수익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다. LG화학은 올해 3분기 석유화학 부문 영업손실은 382억원을, 한화솔루션은 올해 3분기 영업손실 81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효성화학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액만 1117억원에 달하며 11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SK케미칼도 3분기 영업손실이 125억원으로 지난해 동기(영업이익 834억원)와 비교해 적자 전환됐고, 매출은 4263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26.7% 감소했다.
업계에선 국내 석유화학 산업 위기가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는 만큼 석유화학 기업들이 스페셜티 등 고부가가치 제품생산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에틸렌 생산설비를 지속 증설할 계획이 있고, 국제 경기 불안정으로 인한 유가 상승까지 예고돼 국내 석화업계 업황이 단기간 내에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기업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불황 극복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 사태를 통해 석유화학기업 불황이 그룹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만큼, 지금의 위기를 한 기업의 문제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며 "정부는 인수합병(M&A)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규제 완화와 금융 지원 등을 검토하는 한편, 업계에서도 과감히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는 등 자구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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