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혼돈으로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다. 나라 안은 진영으로 나누어져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고, 밖에서는 한국호(號)의 앞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도심에서는 연일 시위가 그치지 않고, 정치권은 쉴새 없이 진영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청을 높인다. 해외에서는 한국 방문을 비롯해 무역과 투자 등 비즈니스와 관련한 문의가 쇄도한다. 대다수 국민이 이러한 상황에 대해 매우 분노하고 있음에도 실제의 일상은 의외로 차분하고 정상적이다. 그래도 나라가 있어야 하고,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건전한 시민 의식의 발로라고 이해된다. 기업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불안한 글로벌 환경에서 난관을 극복하려고 대응책 마련을 위해 고심 중이다. 정치는 혼란스러워도 경제는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계엄의 경제적 대가가 너무 크다. 5100만 한국인이 또 정치에 볼모가 되어 바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 수 있는 형국이다. 공멸이나 상생이냐 하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는 듯하다. 탄핵 정국으로 환율·증시 급락으로 금융 시장이 휘청한다. 그렇지 않아도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한 악재가 겹치면서 경제가 빠르게 저성장 터널로 진입하고 있다. 중국보다 한국이 일본에 이어 잃어버린 세월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분위기다. 중국 상품의 저가 공세는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트럼프발 反세계화 조짐으로 한국 기업 앞에 놓인 시련이 가히 중차대하다. 정부와 기업이 하나의 팀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대응해도 부족할 판에 식물 정부가 되므로 인해 기업은 우군을 잃었다.
경쟁국들이 ‘기업 우선주의’로 국가가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기 위해 경쟁적 수단을 최대한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수년간 상대적으로 기업은 우선순위에서 차순위로 처져 늘 뒷전에 머물렀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볼멘소리가 파다했지마는 가시적인 조치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기업·자금·인재가 해외로만 겉도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안으로 들어오는 인바운드 경제는 갈수록 줄어들고, 밖으로 나가는 아웃바운드 경제를 조장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경제에 희망이 없으면 경제 주체는 더 나은 보금자리로 옮기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 잘 되는 국가와 잘 되지 못하는 국가에서 나타나는 가장 극명한 현상이 바로 이점이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정치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그리고 정치판에 몰려 있는 인사들이 얼마나 한심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 절망스러운 점은 이런 정치 지형으로 인해 누가 다시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더 나은 국가로의 도약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불신 지수가 여전히 높다. 시대적 여건과 국격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개발 독재 시대의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가 존속하는 이상 유사한 위기에 처할 수 있는 토양이다. 당장 누가 대권을 잡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도적 시스템의 획기적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는 공산이 크다. 전횡으로 인한 정치적 무리수와 지속적 정치 보복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또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기업 우선’시그널 시장에 계속 보내야
아무리 주어진 정세가 엄중하더라도 국가 경제는 돌아가야 한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인 만큼 우선하여 대외신인도 추락을 멈춰 세우고 철저한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수출과 내수의 급격한 하락을 막기 위해 자칫 손을 놓을 수 있는 정부의 기능을 바짝 죄어야 한다. 그나마 1% 대의 성장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탄핵 후폭풍으로 인해 더 낮아지지 않도록 배수의 진을 쳐야 한다. 필요하면 추가 금리 인하를 통해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카드를 적극적으로 쓸 필요가 있다. 경제에는 여야가 없다. 비상경제회의를 신속하게 가동하여 민생을 보살피고, 특히 충격으로 인해 위축된 경제 심리를 최소화하고 다시 움직이게 하는 급선무다.
그리고 정책의 일관성 혹은 지속성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현 정군에서 잘 나가던 K방산 수출에 급제동이 걸리고 있다. 또 시동이 걸린 원전 수출 재개도 악영향이 나타날까 관련 업계가 전전긍긍한다. 정국 혼란으로 차세대 원전 개발이 무산될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까지 감돈다. 원전 산업 부활은 지난 정권과 달리 현 야당에서도 지지를 표한 바가 있다. 야당이 감액한 미래산업 R&D 예산을 보면 한국 경제의 미래 목줄을 죄고 있는 듯하다. 국가 품격 손상으로 승승장구하던 K의 위력이 일시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세계는 지금 첨단 산업 선점 경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고 그 전면에 기업이 있다. 그나마 살아나는 생태계가 정치 파행으로 무너지면 국가 경쟁력 후퇴는 불 보듯 뻔하다.
주변국들이 반응도 신경이 거슬린다.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어떤 변화가 몰아칠지 안갯속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정권 교체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 일본은 양국 관계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한다. 북한은 숨을 죽이고 정국 흐름을 관찰한다. 경쟁국들은 표면적으로 한국 상황의 호전을 기대하는 듯하지만 내심 나쁜 쪽으로 가는 것도 자국 경제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속내를 갖고 있다. 이러한 모든 현상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의 정상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 첫 단추는 경제 활력의 원천인 기업 사기를 복원시켜 시장의 불안을 제거해야 한다. 곧 시작될 차기 대권 경쟁도 정치·경제·안보와 관련한 명확한 청사진과 로드맵 경쟁이 되어야 한다. 위기를 최소화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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