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주도의 예산 칼질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인데다 고위 공무원단을 비롯한 보직 인사도 사실상 올스톱이라 갈 길 잃은 관료들의 하소연이 터져 나온다. 이런 혼란을 틈타 은근슬쩍 보은 인사에 나서는 행태까지 엿보인다.
12일 국회 등에 따르면 해양수산부의 내년도 전체 예산은 올해보다 1.4% 늘었지만 주요 정책 과제인 연안항만 방재 연구 인프라 구축 사업(20억200만원)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추가 절차 등이 필요해 내년도 집행이 불투명하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예산은 지난 2021년부터 해수부와 강원도가 추진 중인 연안항만방재연구센터 설립과 연관돼 있다.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에 따른 동해안 연안 침식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위기다.
다른 부처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내년도 예산 중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대왕고래)을 포함한 에너지 자주권 확보 예산이 모두 삭감 당해 사업 초기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주요국 간 반도체 기술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사업 예산도 결국 반영되지 않았다.
내년 경제 정책 입안·시행에 매진해야 할 세종 관가 분위기도 어수선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가결 가능성과 국무위원들의 집단 사의 표명 등 여파로 연말연시 고위 공무원단 인사가 불투명해진 탓이다. 실제 한 중앙부처 차관은 당초 산하 기관장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가 무산됐다.
또 다른 부처의 1급 공무원은 연말께 조직을 떠날 계획이었지만 탄핵 후폭풍에 발이 묶였다. 부처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사표 수리 여부와 시점 모두 예상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모든 이목이 중앙 정치로 쏠린 틈을 노린 보은 인사까지 횡행한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비상계엄 사태 사흘 뒤인 지난 6일 한국고용정보원 신임 원장으로 이창수 전 국민의힘 인권위원장을 임명했다. 전날 공식 취임한 이 신임 원장은 2018년부터 국민의힘에서 활동해 온 정치권 인사로 국어국문학·효문화 전공자라 고용정보원과 관련된 이력이 전무하다.
고용정보원은 초대 원장을 제외한 2~6대 원장이 모두 고용노동부 관료 혹은 학계 출신이었다. 이 신임 원장 임명을 전형적인 보은 인사로 바라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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