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북한과 러시아에서 유학 후 한국 시에 관심을 갖고 번역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베트남 야금공학 박사. 한눈에 봐도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갖춘 이 인물은 베트남에서 한국 시 번역 전문가로 정평이 난 레당환 하노이 폴리텍대학교 교수(고문)이다. 전 하노이 인문사 대학교 초빙교수이자 현 베트남 문인회 회원이기도 한 그는 지난 20년간 베트남에서 꾸준히 한국 시 번역의 길을 걸어온 한·베 문학 번역의 선구자로, 번역 작업뿐만 아니라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황하이번 번역가 및 2021년 한국문학번역상 대상 수상자인 응우옌 응옥 꿰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IGSE) 교수 등 많은 후학을 양성하면서 한국과 베트남 양국 문학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2004년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번역을 시작으로 지난 20년간 한용운, 고은, 정지용, 김영랑, 김광규, 김민정, 김용재 등 국내 유명 시인들의 시집 12편을 베트남어로 번역해 한국 시 번역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환 교수는 지난 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이재희)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자신의 한국 시 번역 여정을 나누었다.
환 교수는 자신이 야금공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문학을 좋아했다며 시 번역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2002년 코리아파운데이션(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한국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는 동안 한 지인이 김소월의 시를 번역해보자고 제안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시 번역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문학 번역은 작가의 의도를 외국어로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번역 중에서도 고난도 작업으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시는 의미가 더욱 함축적이고, 파격적 형태를 갖춘 경우도 많기 때문에 문학 번역에서도 어려운 분야로 통한다. 이와 관련해 환 교수는 자신이 번역한 작품 중 가장 어려웠던 작품으로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은 정지용 시인의 작품을 꼽았다. 그는 당시 “한 2년 동안 매우 힘들었다”며, 정지용 사전 등 각종 자료를 총동원한 끝에 번역을 마칠 수 있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아울러 한국 시 중에서도 한문이 많은 고전시보다 현대시를 좋아한다고 한 그는 한국 시인 중 좋아하는 인물로 한용운과 고은 시인을 꼽았다.
올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해외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환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한강 작가가 “노벨상 받기 전까지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며, 지금은 소설이 재출판에 들어가는 등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베트남에서 “한국 문학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를 깊이 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며 아직 베트남 내 한국 문학 인지도는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1944년생으로 올해 80세인 환 교수는 올해에도 시집 ‘순간의 꽃’(고은), ‘ 밤 하늘에는 별강이 흐르고’(김유제)를 번역하는 등 활발하게 한국 시 번역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초반에 번역 작업을 할 당시에는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을 받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지원 없이도 독자적으로 번역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환 교수는 현재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해온 바와 같이 앞으로도 한국 시 번역과 양국 문학 교류의 길을 계속 걸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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