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현빈은 극 중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역을 맡았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안중근의 영웅적 면모보다 인간적 이면들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했다.
"처음 '안중근' 역을 제안받았을 때는 거절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캐릭터라고 여겼죠. 하지만 우민호 감독님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안중근 장군의 거사와 그 이후 상황보다, 거기까지 다다르는 과정을 이야기해 보자'고 하셨어요. 독립투사인 '안중근 장군'의 모습도 있지만, 그 이면에 '사람 안중근'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이 된 거죠. 그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현빈은 영화 '하얼빈'이 "시원하고 통쾌한 결말이 아닌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영화가 가진 메시지 때문에 출연을 결심할 수 있었다는 부연이었다.
현빈의 말대로 '하얼빈' 속 안중근은 보다 인간적인 면면이 담겼다. 신아산 전투 장면부터 홉스굴 호수 장면, 동방 장면 등에서 '안중근'의 고독함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오프닝 장면인 홉스굴 호수 장면을 먼저 말하자면 처음 (현장에) 도착해서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얼음 위에 서 있으면 되게 희한한 소리가 나거든요. 제가 알기로 1m 넘게 얼어있는 상태라서, 현지 분들은 루트를 개척해 차로 이동도 가능해요. 촬영 현장까지 차로 이동해서 베이스캠프에 촬영 장비들을 내려놓고, 저는 홀로 촬영해야 하는 강 한복판까지 걸어갔어요. 그런데 강에서 들려오는 희한한 소리가 공포감을 느끼게 하더군요. 영화에서는 음악과 음향이 혼합돼 녹음되었지만,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건 조금 다른 감각이었습니다. 끝없이 얼어있는 얼음판과 저 멀리 작게 보이는 산들만 보이는데 문득 '당시 독립군들도 정말 끝도 모르는 곳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추웠을까' 싶더라고요. 저는 홉스굴 현장의 모든 것들의 도움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신아산 전투 장면에 관한 비하인드도 밝혔다. 여타 작품 속 전쟁 장면은 웅장하게 그려지지만 '하얼빈' 속 신아산 전투 신은 처절하고 거친 느낌을 더욱 강조해 냈다.
"광주에서 촬영했는데요. 당시 몇십 년 만에 폭설이 내렸어요. 그 지역이 눈이 자주 오지 않는 곳이었거든요. 그런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장비를 실은 차가 이동할 수 있도록 제설 작업부터 해야 했어요. 며칠 동안 길을 만들어 올라갈 수 있게 되었는데 현장에 가보니 온통 눈이더라고요. 영화 속 눈, 바람 등 모든 자연현상은 CG(컴퓨터그래픽)가 하나도 없어요. 전부 실제예요. 예전 작업과 연결되는 장면이라 눈이 와야 하는데 안 오면 무작정 눈을 기다렸어요. 우 감독님, 촬영 감독님과 고사를 지내기도 했고요. 그런데 다행히, 신기하게 모두 이뤄졌어요. 눈밭을 뒹굴며 촬영을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온통 진흙탕이 돼 스크린에 담겼죠.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이길 바랐었어요."
현빈은 독방 신을 가장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가장 인간적이고 나약한 면면을 꺼내는 신으로 연기할 때도 괴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장면입니다. 안중근 장군님의 가장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는 그의 포용력이 있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독방 신은 어떻게 보면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거니까. 그 장면을 찍을 때 먼저 가서 오래 머물러 있었어요. 공간의 공기나 에너지를 느끼려고요. 나름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어요. 안중근 장군님과 최재형 선생님의 대화 장면에서 소품인 의자를 치우자고 했어요. 창가 빛이 닿지 않는 구석진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다고요. 신아산 전투 때도 그렇고 결과적으로는 실패의 연속을 계속 보여주고 있거든요. 자신의 결정 때문에 동지들이 희생을 당하기도 했고요. 어디 들어가서 숨고 싶고, 좌절하고, 자책하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빛이 없는 저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있으면 어떨까요?'라고 여쭤봤더니, 우민호 감독님, 홍경표 촬영 감독님께서도 '너무 좋을 것 같다'며 동의해 주셔서 촬영을 진행하게 됐어요."
거사를 치르고 난 뒤 '까레아우라'를 외치는 모습에서도 섬세하게 디테일을 담고자 했다.
"거사를 앞두고 기차역에서 안중근 장군이 공부인에게 넌지시 물어보죠. 그리고 한 번 이야기하며 '이렇게 하면 알아듣겠냐?'라고 확인도 하고요. 거기에서부터 감정이 시작됐던 것 같아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이 소리가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경찰에게 잡힌 후에도, 목이 갈라질 때까지 계속 소리를 질렀던 거죠. 암전이 된 후에도 그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잖아요. 그때는 안중근 장군의 얼굴보다, '까레아우라'라는 소리가 더 멀리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알려지길 바라는 그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현빈의 차기작은 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다. 이 작품으로도 우 감독과 함께한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부와 권력에 대한 야망을 좇는 남자와 그를 막는 강직한 검사의 이야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지금 '메이드 인 코리아' 촬영에 임하고 있습니다. 12월과 1월에는 '하얼빈' 홍보 일정과 함께할 것 같고요. 일정이 없을 때는 현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촬영을 하고 있을 것 같고요. 우민호 감독님과 두 작품을 하면서 너무 좋아요. 이 두 작품이 너무 다른 이야기라서요. 지금도 재미있게 찍고 있고요. 오는 2025년 하반기쯤에는 시청자분들께 선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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