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으로 평소 정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친구라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정치부 기자로서 '탄핵' '내란'이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쓰고 들으며 감각이 무뎌져 버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는 또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자신이 일하는 건물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 계엄이 누군가의 말처럼 '2시간짜리' 잠깐의 우발적 사건에 불과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3일 이후 모든 일상이 무너질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태연해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소리였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친구를 토닥였지만 그 친구는 입을 닫았다.
계엄 사태가 한 달을 넘어가면서 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친구의 공포처럼 어느 하나 정리되지 않는 '시계 제로' 정국에 기인하고 있다. 지금의 사태가 해결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 어쩌면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 설마 하면서도 다시 그날의 공포가 재현될 수 있다는 불안, 이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얽힌 채 그 친구의 마음을 지배하는 듯했다. 사실 이러한 것들 모두 상당수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하든, 고도의 통치 행위든 판단하기에 앞서 윤 대통령 스스로 '북한 공산세력'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 때문에 계엄을 선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문해 보자. 윤 대통령의 말처럼 정말 간첩과 같은 불순 세력이 있고, 그들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킬 정도로 국가를 존망의 갈림 위기로 몰아넣었다면 상황이 그렇게 될 때까지 대통령 본인과 정부는 2년 동안 무엇을 했나.
그 긴 시간 동안 내버려 놓고 결국 선택한 것이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는 계엄을 선포한다는 게 과연 21세기 대한민국 수준에 어울리는 일인가.
계엄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는 '설마'라는 부사의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 '설마'가 사라진 자리에 국민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결국 작금의 상황을 해결하려면 윤 대통령의 결자해지가 필요하다.
구중궁궐 같은 한남동 관저에서 침묵 시위로 일관하며 시간만 끌고 있는 태도는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자신이 밝힌 것처럼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내란죄 수사는 물론 탄핵심판 등 모든 법적 절차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것이 대통령으로서 한 달 넘게 고통당하고 불안해하는 국민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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