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23년, 전국시대의 강국 초나라 회왕(懷王)이 재상 소양에게 위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소양은 여덟 개의 성을 함락시키고 대승을 거둔 후 내친김에 제(齊)나라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제나라를 위해 마침 사신으로 와 있던 진(秦)나라 책사 진진(陳軫)이 나섰다. 소양을 만난 진진이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았다.
"초나라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가면 어떤 상을 내립니까?" "상주국(上柱國)에 임명되고 작위는 상집규(上執珪)가 됩니다." "그보다 더 높은 관직은 뭡니까?" "영윤(재상)이 있을 뿐입니다." "그럼 이미 영윤인 장군에게는 더 높여 줄 관직이 없군요. 제가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진진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떤 인색한 사람이 제사를 지낸 뒤 여러 하인들 앞에 술 한잔을 내어놓고는 나누어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한 하인이 이런 제안을 했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마시면 간에 기별도 안 갈테니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리는 사람이 술을 다 마시자." 모두들 동의하고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뱀을 다 그린 한 하인이 술잔을 집어들고 말했다. 어떤가. 멋진 뱀이지? 발도 있고. 이 술은 내 차지일세." 그때 막 뱀을 다 그린 다른 하인이 술잔을 빼앗아 단숨에 마셔버리고는 말했다. "세상에 발 달린 뱀이 어디 있나?" 술잔을 빼앗긴 하인은 공연한 짓을 했다고 후회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뱀 이야기를 마친 진진이 소양에게 말했다. "지금 장군이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는 것은 뱀의 다리를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싸움에서 이긴들 더 올라갈 벼슬이 없고, 만에 하나 진다면 재상 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 목숨까지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나라에도 큰 손실이죠. 쓸데없이 뱀의 다리를 그리다가 전부를 잃어서야 되겠습니까." 듣고보니 과연 그렇겠다 싶어 소양은 군대를 거두어 초나라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화사첨족(畫蛇添足)'은 '뱀을 그리고 발을 더한다'는 의미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일을 해서 오히려 일을 그르침을 비유한다. 보통 '사족'이라고 줄여서 사용한다. 출전은 《전국책(戰國策)ㆍ초책(楚策)》이다.
민주당에 절대적으로 기울어진 일방적 게임이라 여겼던 탄핵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두 배 가까이 벌어졌던 정권교체론과 정권연장론은 격차가 한 자리 수로 좁혀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여권 유력 대선 주자들의 가상 양자 대결은 호각지세다. 이재명 대표의 지지율은 여전히 당 지지율을 밑도는 반면, 바닥을 기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당 지지율을 웃돌 만큼 큰폭으로 상승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급반전에 민주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기별 조사업체별 편차는 다소 있지만 국민의힘 상승, 민주당 하락이라는 추세는 대동소이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의힘이 잘한 게 없는데 어찌된 영문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민주당이 연속 실점했기 때문이다. 의석수를 앞세워 마구잡이로 입법권을 휘두르며 29건의 줄탄핵을 하고 예산을 삭감하는 등 민주당이 끊임없이 국정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에 비상계엄 발동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그건 윤 대통령측의 변호전략이라고 치자. 12ㆍ3 사태 이후에 민주당은 어떤 행보를 보였는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하고 대행의 대행도 수틀리면 탄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국정 혼란을 가중시켰다. 민주당에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업체를 조사하겠다고 겁박했다. 가짜뉴스를 색출하겠다며 카톡 단체방을 들여다 보겠다고 했다.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이 부정선거 논란에 대한 선관위의 책임론을 주장하자 구글에 신고했다. 그뿐인가. 이재명 대표는 은행장들을 불러모아 놓고 부정선거 관련 의혹을 보도해 온 매체에 광고를 중단하라는 은근한 압력을 가했다.
한마디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보여준 행태는 정권을 다 잡은 듯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비민주적이었다. 요즘도 걸핏하면 최상목 권한대행 탄핵을 입에 올린다. 그렇게 탄핵을 남발하고도 여전히 탄핵에 목말라하니 '계엄령 유발자'라는 역풍을 맞는 것이다. 국민SNS 카톡 단체방을 들여다보고 내란선전죄로 고발하겠다는 전용기 의원의 발표는 악수 중의 악수다. '민주파출소'는 또 뭔가. 주민끼리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는 북한식 '5호 담당제'라도 하겠다는 건가. '디지털 네이티브' MZ세대는 즉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SNS 계엄령”이라며 반발했다. 물실호기 국민의힘이 '카톡 검열'을 하겠다는 거냐고 맹공을 퍼부었고 민심은 출렁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매체를 겨냥한 광고 중단 압력은 엄혹한 유신독재시절 탄압받은 동아일보 사태를 연상시킨다. 선관위를 비판한 전한길을 굳이 민주당이 신고한 것도 생뚱맞다. 하나같이 민심의 역린을 건드리는 자충수들이다. 이런 행보들이 이재명 집권에 대한 우려와 거부감을 키웠고 여론의 대반전으로 이어졌다.
탄핵정국에서 가열된 거리 투쟁에 우파세력이 적극 나섰고, 그 대열에 MZ세대가 합류했다. 좌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폭력 시위를 이제 젊은 세대가 합류한 우파도 불사한다. 서부지법 난입 사건과 헌법재판소의 편향성 논란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을 상징한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갈등과 불신지수가 심리적 내전을 넘어선 단계로 진입했다는 위험신호들이다.
'이대남'으로 통칭되는 젊은 우파들은 거리 투쟁뿐만이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도 맹위를 떨치는 인플루언서들이다. 디지털 민심을 견인하는 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탄핵하고 조사하고 광고 중단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심지어 카톡을 검열하겠다는 민주당의 비민주적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 1차 탄액안 문구에서 드러난 민주당의 친중 반미 노선도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이들로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계엄으로 계몽됐다'는 풍자는 이들의 반민주당 정서를 대변한다. 세대별로 고착화된 정치 지형에서 지난 대선의 캐스팅 보터 역할을 했던 이대남의 보수우경화는 민주당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절제를 모르고 과속 질주하던 민주당이 여론의 통렬한 되치기를 당했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국면에서 자충수를 두는 건 승리를 서둘러 확정지으려는 조바심의 발로이거나 승리를 따 놓은 당상으로 여기는 오만함의 표출이다. 진진 같은 책사가 한 명도 없다는 건 이재명 일극체제의 한계다. 민주당은 쓸데없이 뱀 다리를 마구 그리다 전부를 다 잃게 될 위기에 빠졌다. 당연히 민주당 차지로 여겨졌던 술잔이 누구 차지가 될지 탄핵정국은 바야흐로 형세불명이다. 뱀의 해다. 사족을 경계하자.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초나라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가면 어떤 상을 내립니까?" "상주국(上柱國)에 임명되고 작위는 상집규(上執珪)가 됩니다." "그보다 더 높은 관직은 뭡니까?" "영윤(재상)이 있을 뿐입니다." "그럼 이미 영윤인 장군에게는 더 높여 줄 관직이 없군요. 제가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진진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떤 인색한 사람이 제사를 지낸 뒤 여러 하인들 앞에 술 한잔을 내어놓고는 나누어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한 하인이 이런 제안을 했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마시면 간에 기별도 안 갈테니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리는 사람이 술을 다 마시자." 모두들 동의하고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뱀을 다 그린 한 하인이 술잔을 집어들고 말했다. 어떤가. 멋진 뱀이지? 발도 있고. 이 술은 내 차지일세." 그때 막 뱀을 다 그린 다른 하인이 술잔을 빼앗아 단숨에 마셔버리고는 말했다. "세상에 발 달린 뱀이 어디 있나?" 술잔을 빼앗긴 하인은 공연한 짓을 했다고 후회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뱀 이야기를 마친 진진이 소양에게 말했다. "지금 장군이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는 것은 뱀의 다리를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싸움에서 이긴들 더 올라갈 벼슬이 없고, 만에 하나 진다면 재상 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 목숨까지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나라에도 큰 손실이죠. 쓸데없이 뱀의 다리를 그리다가 전부를 잃어서야 되겠습니까." 듣고보니 과연 그렇겠다 싶어 소양은 군대를 거두어 초나라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화사첨족(畫蛇添足)'은 '뱀을 그리고 발을 더한다'는 의미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일을 해서 오히려 일을 그르침을 비유한다. 보통 '사족'이라고 줄여서 사용한다. 출전은 《전국책(戰國策)ㆍ초책(楚策)》이다.
민주당에 절대적으로 기울어진 일방적 게임이라 여겼던 탄핵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두 배 가까이 벌어졌던 정권교체론과 정권연장론은 격차가 한 자리 수로 좁혀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여권 유력 대선 주자들의 가상 양자 대결은 호각지세다. 이재명 대표의 지지율은 여전히 당 지지율을 밑도는 반면, 바닥을 기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당 지지율을 웃돌 만큼 큰폭으로 상승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급반전에 민주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기별 조사업체별 편차는 다소 있지만 국민의힘 상승, 민주당 하락이라는 추세는 대동소이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의힘이 잘한 게 없는데 어찌된 영문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민주당이 연속 실점했기 때문이다. 의석수를 앞세워 마구잡이로 입법권을 휘두르며 29건의 줄탄핵을 하고 예산을 삭감하는 등 민주당이 끊임없이 국정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에 비상계엄 발동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그건 윤 대통령측의 변호전략이라고 치자. 12ㆍ3 사태 이후에 민주당은 어떤 행보를 보였는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하고 대행의 대행도 수틀리면 탄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국정 혼란을 가중시켰다. 민주당에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업체를 조사하겠다고 겁박했다. 가짜뉴스를 색출하겠다며 카톡 단체방을 들여다 보겠다고 했다.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이 부정선거 논란에 대한 선관위의 책임론을 주장하자 구글에 신고했다. 그뿐인가. 이재명 대표는 은행장들을 불러모아 놓고 부정선거 관련 의혹을 보도해 온 매체에 광고를 중단하라는 은근한 압력을 가했다.
한마디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보여준 행태는 정권을 다 잡은 듯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비민주적이었다. 요즘도 걸핏하면 최상목 권한대행 탄핵을 입에 올린다. 그렇게 탄핵을 남발하고도 여전히 탄핵에 목말라하니 '계엄령 유발자'라는 역풍을 맞는 것이다. 국민SNS 카톡 단체방을 들여다보고 내란선전죄로 고발하겠다는 전용기 의원의 발표는 악수 중의 악수다. '민주파출소'는 또 뭔가. 주민끼리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는 북한식 '5호 담당제'라도 하겠다는 건가. '디지털 네이티브' MZ세대는 즉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SNS 계엄령”이라며 반발했다. 물실호기 국민의힘이 '카톡 검열'을 하겠다는 거냐고 맹공을 퍼부었고 민심은 출렁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매체를 겨냥한 광고 중단 압력은 엄혹한 유신독재시절 탄압받은 동아일보 사태를 연상시킨다. 선관위를 비판한 전한길을 굳이 민주당이 신고한 것도 생뚱맞다. 하나같이 민심의 역린을 건드리는 자충수들이다. 이런 행보들이 이재명 집권에 대한 우려와 거부감을 키웠고 여론의 대반전으로 이어졌다.
탄핵정국에서 가열된 거리 투쟁에 우파세력이 적극 나섰고, 그 대열에 MZ세대가 합류했다. 좌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폭력 시위를 이제 젊은 세대가 합류한 우파도 불사한다. 서부지법 난입 사건과 헌법재판소의 편향성 논란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을 상징한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갈등과 불신지수가 심리적 내전을 넘어선 단계로 진입했다는 위험신호들이다.
'이대남'으로 통칭되는 젊은 우파들은 거리 투쟁뿐만이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도 맹위를 떨치는 인플루언서들이다. 디지털 민심을 견인하는 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탄핵하고 조사하고 광고 중단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심지어 카톡을 검열하겠다는 민주당의 비민주적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 1차 탄액안 문구에서 드러난 민주당의 친중 반미 노선도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이들로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계엄으로 계몽됐다'는 풍자는 이들의 반민주당 정서를 대변한다. 세대별로 고착화된 정치 지형에서 지난 대선의 캐스팅 보터 역할을 했던 이대남의 보수우경화는 민주당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절제를 모르고 과속 질주하던 민주당이 여론의 통렬한 되치기를 당했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국면에서 자충수를 두는 건 승리를 서둘러 확정지으려는 조바심의 발로이거나 승리를 따 놓은 당상으로 여기는 오만함의 표출이다. 진진 같은 책사가 한 명도 없다는 건 이재명 일극체제의 한계다. 민주당은 쓸데없이 뱀 다리를 마구 그리다 전부를 다 잃게 될 위기에 빠졌다. 당연히 민주당 차지로 여겨졌던 술잔이 누구 차지가 될지 탄핵정국은 바야흐로 형세불명이다. 뱀의 해다. 사족을 경계하자.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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