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혜교는 데뷔 28년 차에도 스펙트럼 확장에 대한 열망과 성장에 대한 목마름을 가졌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부터 멜로 등으로 자신의 장르를 공고히 해왔던 그는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이후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복수극 '더 글로리'를 만났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저의 새로운 얼굴을 보고 신이 났어요. 그리고 '더 글로리' 이후 다시 사랑 이야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졌어요."
송혜교가 10년 만에 스크린 복귀작으로 선택한 영화 '검은 수녀들'(감독 권혁재)는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재현 감독의 영화 '검은 사제들'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송혜교는 극 중 구마 의식을 이끄는 수녀 '유니아'를 연기한다. 굽히지 않는 기질과 강한 의지를 지닌 수녀로 거침없는 성격에 돌발행동을 일삼아 요주의 인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언제 올지 모르는 구마 사제를 기다리기보다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 '희준'을 살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직접 나서게 된다.
"'유니아'는 자유로운 캐릭터에요. 일반 수녀들과 다르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 담배를 피우거나 욕을 하는 등 거친 면면들이 드러나죠. 처음에 작품을 위해 수녀님들께 자문하기도 했어요. 이런 작품이고, '유니아'는 이런 친구라고 하니 웃으시더라고요. '우리와는 다른 수녀네요. 새로운 수녀를 보러 극장에 가야겠어요'하고 유쾌하게 반응해 주셨어요. 자기의 신념이 확실하고, 생명을 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졌기에 매력적인 인물이에요."
'유니아'는 낯선 캐릭터지만 영화 말미에는 '희생'을 보여주며 그의 여성성을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바닷가 신이 의미하는 생명과 잉태의 이미지 등 전형적일 수 있는 표현에 비판받기도 했다. 송혜교는 해당 장면에 "영화적으로 중점을 둔 부분"이라며, '유니아'의 용기가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바닷가 신은 엔딩을 위한 신이기도 해요. 희준이를 악령에게서 구해내는 장면이고 생명을 위해 용기 내는 모습을 이미지적으로 보여준 거죠.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고 보고 그걸 영화적으로 표현해내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검은 수녀들'은 영화 안팎으로도 여성들의 연대기를 담는다. 영화 속 '유니아'와 '미카엘라'가 그러했듯, 실제로도 송혜교와 전여빈이 연대하며 작품을 꾸려나갔다.
"요즘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 많아서 모르고 있었는데 두 여성이 끌고 가는 작품이 많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고요. 이 작품이 잘 된다면 더 많은 여성 영화가 생겨날 테니.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죠."
앞서 언급한 대로 '검은 수녀들'은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작으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2015년 개봉한 '검은 사제들' 이후 10년 만에 세계관을 이어가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검은 사제들'은 개봉 때 한 번 보고 이번 작품 들어가기 전에도 한 번 봤어요. '검은 수녀들' 속 유니아 수녀의 스승이 김범신 베드로 신부(김윤석 분)예요. 김윤석 선배님의 연기를 다시 보고 싶어서 보기는 했지만 '검은 수녀들'을 찍으면서 '검은 사제들'을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송혜교는 극 중 '유니아'가 구마 의식을 하며 기도문을 외우는 장면을 두고 "감정 연기도, 말 전달도 정확히 해내야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가 연기를 할 때 여러 차례 반복하면 감정이 잘 안 올라오는 스타일이에요. 초반에 놓치면 큰일이 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구마 장면을 할 때 긴장을 많이 했어요. 말이 잘 전달되어야 하고 감정도 있어야 하니까 어려웠죠. 대사를 외우는 데에 따로 방법이 있지는 않아요. 시간만 나면 달달 외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촬영 없는 날도 그냥 갑자기 외워보고, 계속 툭 치면 나올 수 있게끔 달고 살았어요."
'유니아'가 '희준'을 맹목적으로 구하려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나라면 나와 전혀 상관없는 한 아이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용기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 유니아 수녀이기에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캐릭터의 대담함과 용기에 더 끌렸어요. 극 중에 유니아에 대한 전사가 나오진 않지만, 저는 이 모습이 어릴 적부터 이어져 왔다고 생각해요. 한순간에 생각이 바뀌어서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니아는 어릴 때부터 쭉 그런 삶을 살았던 거죠."
송혜교와 '유니아'는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는 점이나 후배들을 이끈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그런 말들이 아직 좀 쑥스러워요. 저도 아직 배워가는 입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깔아놓은 게 있나?' 싶거든요. 연기하는 순간에는 선후배가 없다고 생각해요. 연기 안 할 때는 언니 동생이지만 연기할 때는 그냥 동료죠. 그래서 더욱 편안한 거 같고 후배들이 좋게 봐주는 거 같아요. 제가 길을 닦아놓는다기보다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열어주는 거죠. 후배들에게도 배우는 게 많아요. 함께 하면서 같이 성장하는 거죠."
송혜교는 20대와 30대를 치열하게 보냈다며 "지금은 살짝 내려놨다"고 웃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욕심도 덜한 거 같고 심적으로 여유도 생기는 거 같아요.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는 자세도 바뀌고요. 누군가는 제가 어떤 이유로 싫을 수 있고, 막연하게 싫을 수도 있잖아요. 같은 이유로 저를 좋아할 수도 있고요. 지금은 '인간 송혜교가 싫으면 배우 송혜교는 좋게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지' 싶어요.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죠."
송혜교는 앞으로도 새로운 모습을 꺼내고 싶다며 "사이코패스 같은 역할에도 관심이 간다"고 털어놨다.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는 이제 후배들에게 맡겨야죠. 사랑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현실적으로 내 나이에 맞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는 "어떤 배우고 되고 싶다는 꿈보다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성실히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좋은 길로 인도해 주겠지,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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