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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것이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글로벌 경제 전체가 폭풍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컴백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8년 전 트럼프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트럼프 1기 시대보다 더 강하고 더 신속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만드는 새로운 글로벌 질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먼저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특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과거 어떤 미국 행정부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엄연히 타국의 영토인데도 덴마크령 그린란드나 파나마운하에 대하여 도발적인 막말을 쏟아내고 이스라엘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참혹한 극언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막강한 국가가 되었지만 역사상 어떤 제국보다 신사적이었다. 이면적으로는 타국에 직간접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상호주의에 기초한 행보를 보여주었으나 트럼프는 그렇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에는 우방도 없다.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한 일은 미국의 최근방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폭탄이었다. 나토의 일원으로서 미국과 하나라고 할 수 있는 EU에 대해서도 예외는 없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축구공으로 비유될 수 있을 정도로 향방을 쉽게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트럼프의 행보는 매우 특이해 보이지만 최근 10여 년간 미국 정책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않다.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는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 우선주의의 경로에 위치해 있다. 미국 우선주의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의 승리를 목표를 하고 있지만 미국 국내에 직면한 위기에 대응하는 측면도 병존한다. AI 등 신사업을 선도하는 미국이지만 늘어나는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 그리고 전통적 제조업 경쟁력의 위축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하다.
중국이 아니더라도 도박에 가까운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가 성공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현재 트럼프가 벌이고 있는 전선은 글로벌 전체 국가에 향하고 있다. EU 등 미국의 우방에 대한 관세 폭탄은 상대국의 보복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관세전쟁은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미국 물가를 요동치게 하여 미국민의 강한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조직 축소정책 등도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자유무역주의의 퇴조를 부르고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교역량의 축소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미국이 촉발하고 있는 관세전쟁은 단기적으로는 미국 무역수지 적자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경제 전체의 후퇴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은 경제학 교과서 수준의 기초이론에서도 알 수 있다. 더욱이 글로벌 공급망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현실에서 미국식 일방주의는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2.0의 향방이나 성공 가능성과 관계없이 한국 경제에 불어닥치고 있는 트럼프발 태풍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철강·알루미늄 등에 대한 관세 부과는 이미 발표되었다. 지난 정부에서 결정된 반도체 보조금도 협상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동차 등의 수출도 새로운 관세 장벽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미 수출 전반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트럼프의 마가경제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지만 지진해일과 같은 천재지변이 아닌 인간이 만드는 재난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예상되는 손실을 줄일 수 있다. 트럼프식 비정형 정책에는 비정형으로 대응해야 한다. 막무가내식 일방주의에 정상적인 대응은 한계가 있다. 미국의 일방적 공세에 상호주의 관점에서 곧이곧대로 맞대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비즈니스맨이다. 외형으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호전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보다 평화적 협상파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은 막후 협상에 달인이다.
비즈니스 협상에서 강자에게는 약해질 수밖에 없고 약자에게는 강하게 하는 것이 일상이다. 국가 간 협상에서 자비나 인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 외교에서는 친구는 없고 이해득실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통상과 외교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은 굴종의 협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협상을 의미한다. 정정당당해지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똑바로 정열하고, 협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준비될 때까지 머리를 숙이면 된다. 대한민국은 중화학공업 기반이 견고하고, 아직도 경쟁력 있는 반도체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유일무이한 교역대상국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미국에 협력하되 미국에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명확히 하고 우리가 양보할 것과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을 철저히 계산해서 협상에 임한다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비상계엄과 탄핵 소추로 최고 리더십이 공백인 상태라는 점이다. 대통령 대 대통령의 협상을 통해 끝내는 방식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면할 대통령이 없다는 점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능한 한 조속하게 최고 리더십의 회복이 요구된다.
김용하 필자 주요 이력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전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 △전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현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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