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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면) [박승준의 지피지기]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압박…선악의 이분법 사고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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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주간
입력 2025-0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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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주간
[박승준 논설주간]

 
 
1950년 6월 25일, 그날은 비가 내리다가 맑게 갠 날이었다.(이중근 편저 '6·25 전쟁 1129일') 새벽 4시 북한군 전군에 남침암호 '폭풍'이 하달됐다. 북한군 1, 2, 3, 4, 5, 6, 12사단과 105전차 여단 등이 38도선 11개 지점에서 일제히 국경을 넘어 침공했다.
그로부터 1129일 만인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 민인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 판문점에서 서명됐다. 협정에는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미 육군 대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원 펑더화이(彭德懷) 3명이 나중에 최종 서명했다. 1953년 7월 29일자 조선일보는 최병우 특파원발로 "휴전회담에 한국을 공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 한국인의 운명은 또 한번 한국인의 참여 없이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제목은 '기이한 전쟁, 기이한 휴전'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성명서에서 "남북통일을 실현하지 못한 채 휴전이 되었으나 유엔과 미국의 협조 아래, 특히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한국 통일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1129일간의 한국전쟁으로 한국군은 전사 13만8000여 명, 부상 45만여 명, 실종자 포함 60만9000여 명의 피해를 입었다. 미군은 전사 3만6516명, 부상 10만3248명, 실종자 8177명의 피해를 입었다. 북한군은 사망 13만6000여 명, 부상 20만8000여 명, 실종과 포로 포함 97만3000여 명의 피해를 입었고, 중국군은 사망 13만6000여 명, 부상 20만8000여 명, 실종과 포로 포함 97만3000여 명의 피해를 입었다. 우리 민간인은 사망 24만5000여 명, 학살 13만여 명, 부상 23만명, 피랍 8만5000여 명, 행방불명 30만3000여 명의 피해를 입었다.
지난 24일로 만 3년을 맞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1097일간 사망 5만7000명, 부상 25만여 명의 피해를 입었고, 러시아군은 사망 11만5000여 명, 부상 50만여 명의 피해를 입었다. 한국 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비하면 2~3배가량의 인명 피해를 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등 미 수뇌부와 '북진통일'을 놓고 의견 조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전 뉴데일리 대표 인보길, '위대한 3년')
청일전쟁은 1894년 7월 25일 인천 앞바다에 있는 풍도 근해에서 일본 해군과 청 수군이 해전을 벌임으로써 개전됐다. 전쟁은 1년이 채 안 된 1895년 4월 17일 일본 해군이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류궁다오(劉公島)에 있는 청 북양함대 기지를 급습함으로써 종결됐다. 강화조약은 대청제국 북양통상대신 리훙장(李鴻章)과 일본 내각 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종결됐다. 시모노세키 조약의 핵심은 모두 11개 조항으로, 첫째 청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할 것, 둘째 대만(臺灣)과 펑후(澎湖)열도를 할양할 것, 셋째 전쟁기간의 전비를 보상할 것, 대청제국 내 7개 도시와의 통상을 허용할 것 등이었다.
이 가운데 조선은 모르는 가운데 조선의 운명을 바꿔 놓은 것은 시모노세키 조약 제1조 '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 독립국임을 인정하고, 조선이 청에 해오던 조공 등의 전례를 폐지한다'는 조항이었다. 일본으로서는 역사적으로 중국 대륙의 아시아 지배체제의 일부였던 조선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준비를 한 것이었다. 일본은 다음 단계로 1905년 러일전쟁에 승리해서 조선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강화하고, 1910년 마침내 조선을 병합하게 된다.
1904년 2월부터 1905년 가을까지 한반도 근해와 만주, 랴오둥(遼東) 반도 일대에서 벌어진 러일 전쟁의 승자도 일본이었다. 1905년 9월 5일 미국의 중재로 미국 포츠머스(Portsmouth)항에서 체결된 일본과 러시아 제국의 강화조약의 핵심도 조선에 대한 영향력 확보였다. 포츠머스 조약의 제2조는 '러시아 제국은 일본이 조선에서 정치, 군사, 경제적인 이익을 배타적으로(paramount) 확보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었다. 조선이 1910년 일본에 병합되기까지 그런 과정을 거친 것이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해서 조선을 중국 대륙의 영향권에서 분리시킨 뒤 러일전쟁의 승리로 정치·군사·경제적으로 배타적인 이권을 확보했고, 그런 다음 병합을 한 것이었다. 나라의 운명을 정작 우리 백성들은 모르는 가운데 외부에서 결정하려던 또 한 가지 나쁜 기억이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명(明)에서 파견된 선웨이징(沈維敬)이라는 사기꾼이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만나 조선 5도를 일본에 떼어주고 휴전하는 협상을 하다 미수에 그친 일도 있었다.
우리가 근세사에 겪은 일들에 비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광물의 50%를 넘기라고 요구한 것은 제국주의자의 본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년 전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베이징(北京)을 방문해서 대만이 중국의 일부임을 보장해주는 대신 우크라이나 전쟁에 도움이 되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중국은 푸틴의 말에 따라 전 세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표현하는데 중국관영 매체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이라는 표현을 썼다. 놀랍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휴전시키겠다고 나선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푸틴과 정전협상을 시도하는 것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제국주의자 근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외교문제 전문지 포린 어페어즈는 최신호에서 "트럼프가 원하는 세상은 생산성이 전부다. ··· 미국은 유럽을 포기할 것인가, 미국의 유럽 포기가 유럽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윌슨 센터의 역사학자 마이클 킴마게(Kimmage)는 '트럼프가 원하는 세상'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냉전이 끝나고 20년이 흐른 2010년 국제사회에는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 그것은 러시아 푸틴이 시작한 것으로, 강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러시아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푸틴의 다음은 중국 시진핑(習近平)이 더 큰 스케일로 더욱 강력한 중국을 건설하겠다고 나섰고, 시진핑의 뒤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가 '힌두 민족주의'로 뒤를 이었으며, 모디에 이어 터키의 에르도한이 거의 전제에 가까운 체제를 구축했다. 이런 세상에서 트럼프가 추구하는 것은 미국의 자산을 최대한 활용해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됐다. 킴마게에 따르면 트럼프가 대통령에 재선된 뒤 그린란드를 확보하겠다느니, 캐나다를 52번째 주로 만들겠다느니, 파나마 운하를 중국이 운용하는 것을 버려두지 않겠다느니 하는 행동들이 바로 이런 배경을 가진 것이라고 한다.
킴마게의 기고에 따르면 트럼프가 유럽마저도 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바이든식의 가치동맹 따위는 이미 버릴 결심을 했으며, 1930년대와 1950년대 미국의 반공산주의 우익세상을 건설하려는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고 킴마게는 진단했다.
미국과 트럼프가 그렇게 변하는 세상에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해서 광물 50%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을 단순히 선(善)과 악(惡)의 기준으로 분류할 일은 아닌 듯하다. 이제 트럼프의 미국이 가는 길 앞에는 생산성이 유일한 기준이며, 일론 머스크를 효율부(DOGE) 장관으로 발탁한 일을 결코 소홀하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또한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선과 악을 기준으로 나누지 말고 효율성과 생산성을 기준으로 보는 변화를 시작해야 할 듯싶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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