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어거스틴(AD 354-430·오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은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에는 독서를 주로 소리 내어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암브로시우스는 조용히, 오직 눈으로만 책을 읽었다. 당시 책은 귀한 자원이었고, 독서는 공동체적 활동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며 함께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거스틴은 그의 대표작 <고백록>에서 암브로시우스의 독서 방식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그가 책을 읽을 때, 그의 눈은 페이지 위를 따라갔고, 그의 마음은 의미를 찾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와 혀는 조용히 있었다. 우리는 종종 그를 찾아갔지만, 아무도 출입을 금지당하지 않았으며, 방문자가 도착했음을 미리 알리는 관습도 없었다. 우리가 그를 방문할 때마다 그는 늘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조용히 책을 읽었고, 다른 방식으로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암브로시우스가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독서하는 모습이 어거스틴에게 신기하게 보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4~5세기 당시 조용한 독서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독서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했다. 7~9세기경 아일랜드 수도승들은 성경과 고전 문헌을 필사하면서 독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띄어쓰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띄어쓰기가 정착되면서 글을 조용히 읽는 것이 더욱 쉬워졌고, 이 방식은 점진적으로 서유럽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12~13세기에 띄어쓰기가 일반화되면서 조용한 독서는 점점 더 널리 퍼졌다.
결정적인 변화는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과 함께 이루어졌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책이 대량 생산되면서 누구나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독서는 더 이상 소수의 학자나 성직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혼자 조용히 책을 읽는 문화가 더욱 정착됐다.
독서 방식의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우리의 사고방식과 문화적 태도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소리 내어 읽는 독서는 본래 공동체적 행위였다. 한 사람이 책을 읽으면 주변 사람들이 함께 듣고 이해하며, 자연스럽게 토론이 이루어졌다. 조용한 독서는 개인적인 경험을 강화했다. 독서는 내면적 사고와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되었으며, 이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개인의 철학적 탐구를 촉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어거스틴이 살던 시대에는 글이 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지만, 조용한 독서가 보편화되면서 ‘글’은 독립적인 사고의 도구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문화적 전환이었다.
오늘날 조용한 독서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지만, 소리 내어 읽는 것 역시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눈으로 읽으면 더 빠르게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조용한 환경에서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소리 내어 읽으면 문장의 리듬과 구조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또한 듣는 사람들과 내용을 공유하기에 적합하여 공동체적 경험을 형성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흥미롭게도, 현대에는 오디오북이 인기를 끌면서 다시 ‘소리 내어 읽는 독서’가 재조명되고 있다. 독서 방식의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우리의 사고 방식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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