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논설고문]](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2/13/20250213113057569156.png)
[이재호 논설고문]
윤 대통령부터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그가 계엄 선포의 원인의 하나로 주장한 민주당의 ‘국정 발목잡기’에 대해선 일부 국민도 수긍한다. 필자도 그중 한 사람이다. 지난 3년 동안 민주당으로부터 30여회의 탄핵을 발의 당했으니 누군들 “오죽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그렇더라도 계엄에 의존하려 한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과 검찰의 항고 포기로 일단 석방됐다. 재판과정에서의 절차적 흠결과 공수처 등 관련 수사기관들의 입법 미비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구속기간
계산에 대한 방법의 차이였다. 이를 놓고 말들이 없지 않다. 석방은 대통령 탄핵 심판과는 별개의 문제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석방과정에서의 윤 대통령의 모습도 곱게 비치지만은 않은 듯하다. 대통령은 몰려든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대선 때 선보였던 ‘어퍼컷 제스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미소를 머금은 그의 모습에선 예전의 활기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이를 두고 야당에선 “개선장군 같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그러나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인 김용태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앞으로) 국민통합의 역할을 하실 분은 대통령”이라며 “한쪽 지지층을 위한 행동보다는 국민통합적인 목소리를 많이 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계엄 사태로 우리 사회의 분열은 더 커졌다. 한국 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갈등의 전이(轉移)가 쉽게 일어난다는 거다. 하나의 갈등이 곧 다른 갈등으로 전이된다. 사안의 공정성 여부를 놓고 시작된 논란이 이내 보수냐 진보냐 하는 정치적 다툼으로 발전하고, 다시 출신 학교와 지역으로 이어진다. 너무도 익숙한 패턴이다. ‘망국적 편 가르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은 계엄을 통해 한국 사회를 더 갈라놓았다. 국민은 다시 계엄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었고, 광장에선 농성과 시위, 단식과 삭발이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구치소를 나서면서 맨 먼저 했어야 할 말은 국민께 죄송하다는 사죄와, 국민통합에 관한 각성과 다짐이었어야 했다. 그는 이날 김치찌개로 저녁식사를 했다고 측근 의원들은 전했다. 측근들이 중계방송 하듯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는 것도 나는 마뜩지 않다. 일부 언론은 “윤 대통령이 여당 인사나, 대통령실 참모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국정의 구심(求心)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고 있다”고 했다. 적절한 지적인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절제되고 정제된 더 큰 틀에서의 메시지는 필요해 보인다.
나는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87년 체제’ 타파 운동에 나서줬으면 한다. 설령 탄핵이 인용돼 다시 영어의 몸이 된다고 하더라도 한국 정치를 바꾸려고 노력한 동시대의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삶과 정치에서 ‘87년 체제’의 비효율로 인한 실질 민주주의의 지체를 질리도록 겪고 있다. 민주화와 산업화 시대의 강을 함께 건너온 8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대다수 국민은 안다. 우리는 이미 성인이 됐는데도 입고 있는 옷은 여전히 중학생 옷이어서 그걸 바꿔 입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성장도 발전도 힘들다는 걸. 한국은 2013년 처음으로 국민총소득(GNI)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했지만 11년 연속 3만 달러대에 머무르고 있다. 4만 달러대에 진입하려면 ‘87년 체제’와는 이제 결별해야 한다. 체제 변화에 기초한 선진정치의 구현 없이는 4만 달러대 진입은 쉽지 않다(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현실적인 기준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조기 대선 준비라는 현실의 차원에서도 윤 대통령의 존재와 기여의 가치는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8~10일 18세 이상 남녀 10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는 47.2%,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은 34%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양자 간 격차가 컸다. 이 대표와 홍준표 시장과의 맞대결에서도 46.8% 대 24.9%, 오세훈 시장과의 대결도 47.9% 대 24.1%였다(범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선 김 장관 24.9%, 유승민 9.4%, 한동훈 8.2%, 오 시장 6.4%, 홍 시장 5.3%, 안철수 의원 3.1% 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고 해도 지금으로선 이 대표와 맞설 수 있는 여권 인사가 안 보이는 게 사실이다. 중임제한으로 재출마가 불가능한 현직 대통령에겐 이게 또 다른 차원의 ‘기회’일 수 있다. 예컨대 여권의 출마 희망자들은 대부분 임기단축과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이들을 하나로 묶어 강력한 ‘개헌연대’를 구축할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최소한의 ‘균형’ 위에서 선거가 치러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개헌논의에 대한 실질적 진전과 함께 말이다.
윤 대통령에게는 그게 ‘속죄’의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탄핵이 인용될지 여부도 아직 모른다. 그럼에도 상식과 원칙의 차원에서 섣부른 계엄 시도로 국정혼란의 주범이자 내란의 수괴로 지탄받고 있는 현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아마 윤 대통령은 이번 계엄 사태로 평생 사죄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는 중도‧보수 대통령으로서 그에게 맞는 기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 부족 탓인지, 제반 정책의 적실성 결여 탓인지, 변한 유권자 탓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대로 가면 범보수‧중도 진영은 대선에서 범진보‧좌파에게 패배할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론조사 수치부터가 그렇다. 보수의 입장에선 윤 대통령의 계엄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그를 통해서라도 이런 흐름을 차단하고, 최소한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고 본다. 최근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여론조사 공정)이 지난 10~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46.1%가 나왔다. 탄핵심판을 받는 중이고, 검찰의 항고 포기로 석방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높은 지지율이다(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2.7%. 문화일보). 이런 수치는 보수진영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이 드러내놓고 이재명 대표를 ‘위험한 사람’(한동훈), ‘결단코 대통령이 돼서는 안되는 사람“(안철수)이라고 하는 현실과도 맞물려 대조를 이룬다.
국민 또는 유권자들의 이중성(二重性)으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계엄 사태는 범죄여서 싫지만, 그러나 선거는 이겼으면, 더욱이 이재명 대표에게 참패는 안 당했으면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그런 이중성의 기저에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불신과 혐오, 두려움의 감정이 녹아 있음도 사실이다. 흔히 ‘이재명 포비아(공포증 ‧ phobia)라고 하지 않는가.
솔직히 말하면 이 대표의 자업자득 측면도 있다. 그는 상황의 유 불리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는 사람으로 인식돼 있다. “박정희를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로 존경하는 줄로 알더라”는 그의 유명한 멘트처럼 말이다. 그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 문장에서 ‘박정희’를 ‘중도보수’로 바꿔 쓴다. “중도보수라고 했더니 진짜 중도보수로 알더라”라는 식이다(월간 대한언론 3월 1일자). 계엄 사태 논란에 더해 이런 식의 공방이 갈등과 분열을 더 키우고 있다. 예부터 구시화문(口是禍門 ‧ 입은 화가 들어오는 문)이라고 했다.
되풀이 하지만 이쯤에서 그쳐야 한다. 더 나가면 돌아오기 어렵다. 자꾸 거칠어지면서 헌재의 공정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실로 큰일이다. 우리 정치는 뒤끝이 작열하는 정치다. 선거 때 틀어지면 선거 후에도 화해는커녕 원상회복조차도 잘 안 된다. 협량의 정치다. 줄 탄핵과 계엄, 양측 모두가 이성을 되찾기를 소망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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