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내란 특검법 협상' 앞둔 양당 …여야이몽(與野異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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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논설고문
입력 2025-01-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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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논설고문
[이재호 논설고문]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로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 허약한 실체는 ‘백골단’의 등장으로 정점을 찍었다. ‘백골단’은 윤이 체포되는 걸 막기 위해 일단의 2030 청년들이 만든 ‘반공청년단’의 별칭이라고 한다. 이들은 “대통령을 지키자”며 지난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가졌다. 회견을 주선한 사람은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 백골단은 1950년대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만들었던 정치깡패 조직의 이름이고, 가까이로는 1980~90년대 민주화운동을 폭력으로 진압했던 사복경찰을 지칭한다. 청바지에 흰 헬멧을 쓰고 시위 학생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던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다시 나타난 것은 물론 아니지만 ‘백골단’이라는 이름에서 섬뜩함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터다.
 
민주당은 즉각 김 의원이 “독재정권의 망령을 국회로 끌어들였다”며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준호 최고위원은 “고작 범죄자 한 사람 지키겠다고 이런 폭력적 조직이 만들어진 것도 충격적인데, 이들을 국회로 끌어들였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 의원은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청년들을 조금이라도 돕겠다는 마음으로 회견을 주선한 것이 사달이 돼 마음이 무겁다”고 사과했다. 그의 심경을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그로서는 젊은 2030세대가 국민의힘과 같은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니 우선 반가웠을 거고, 그래서 도와주겠다고 나섰을 텐데 그게 패착이 됐다. 정치학자(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비례대표 초선인 그는 이론과 현실 정치 간의 괴리를 절감했을 법하다. 우리 정치는 그만큼 메마르고, 대결적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싸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대통령 경호처 간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가 10일 ‘특검법안’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여야 합의로 위헌요소가 없는 특검법을 만들어 갈등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는 “현행 법률체계로는 두 기관 간 갈등의 출구를 뚫기 어렵다”고 했다. 이대로 가면 물리적 충돌로 자칫 내전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속셈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오월동주(吳越同舟)라고나 할까. ‘특검’이라는 배에 같이 타기는 했지만 서로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고 드는 꼴이다. ‘특검’으로 가게 되면 탄핵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특검 내용을 놓고 여야가 합의를 해야 하는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의석수에서 뒤지고,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하는 국민의힘으로서는 특검을 늦추는 게 유리하다. 반대로 민주당은 특검이 빨리 진행되는 게 좋다. 이재명 대표가 대선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이 ‘피로감’이 걱정거리일 터다. 이 대표는 지난달 15일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하겠다고 했지만, 우려했던 사법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온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공직선거법 위반 1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이 대표는 향후 10년간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그는 이외에도 1심에서 무죄가 난 위증교사 사건을 비롯해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성남 FC 불법 후원금 의혹,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 8개 사건, 12개 혐의로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우리 선거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물론 사안에 따라 무죄가 나올 수도 있고, 선거 출마가 가능한 100만원 미만의 선고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지지자나 유권자들로서는 지칠 수밖에 없다.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 효과도 있을 거라고 하지만, 글쎄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여론조사공정㈜이 데일리안 의뢰로 지난 6∽7일 전국 남녀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 후보들 중 절대 찍고 싶지 않은 사람’을 물었더니 이 대표가 42.1%로 가장 높았다. 2위 홍준표 대구시장 16.8%, 3위 오세훈 서울시장 9.9%, 4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9.2%였고, 그 다음으로 원희룡 6.5%, 이낙연 4.9%, 우원식 1.9%, 김동연 경기지사 순이었다. 서요한 여론조사공정㈜ 대표는 “이재명 대표가 대권 후보들 중 높은 지지도와 함께 비호감도도 높게 나타나는 건 사법 리스크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분석했다(서울경제 2025년 1월 9일 입력).

국민의힘도 자체 특검법안 초안을 준비 중이다. 민주당 측의 특검법안이 수사 대상을 지나치게 확대했다고 보고 이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거라고 한다. 국민의힘은 자체 발의안을 늦어도 16일 전에는 본회의에 상정,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민주당처럼 서두르는 분위기는 아니다. 민주당이 특검후보를 추천할 사람을 제3자(대법원장)로 하는 등, 위헌성 시비가 있던 부분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당내에선 특검법 발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기류도 강하다.

양측이 첨예하게 맞서 있는 대목에는 북한의 대남 도발을 유도하기 위해 원점 타격을 둘러싼 논란도 들어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해 오물풍선을 원점 타격했고, 평양 상공에 무인기까지 띄우는 등 외환(外患)죄를 저질렀다고 보고 이를 특검법 논의에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한 시민단체들의 고소, 고발 사건, 특히 대북전단과 확성기 논란까지도 모두 안건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거다. 이 경우 관련자들은 내란 선전죄(옹호죄)로 몰릴 수도 있어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증유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두 당의 이런 대립과 국민 갈라치기는 우리를 참담하게 만든다. 윤 대통령은 난데 없는 계엄으로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것도 모자라 시대착오적인 ‘반국가 종북론’으로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계엄 이후 국민은 계엄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시위하기에 바쁘다. 야당이자 다수당인 민주당의 행태 또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다수당으로서 국가운영에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할 야당이 자신들의 세력과 이데올기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난데없는 계엄선포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국가체제와 국정운영의 근간을 바로잡아야 할 집권당이 눈치만 보고 있다. 대국민 사과도 안 하다가 여론에 떠밀려서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로 끝냈다. 국민은 지금 이 순간도 윤 대통령의 반헌법적 불법계엄에 대한 집권당의 입장이 뭔지 정확히 모른다. 당은 지난 6일 윤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관저로 몰려간 44명의 의원들에 대해 ‘개별행동’이라고 했다. 그럼 당의 입장은 뭔가. 국민의힘은 반헌법적 계엄세력에 대해 책임을 물을 의지가 정말 있긴 한가.

국민의힘의 관심은 오직 집권당으로서의 지위 유지에만 있는 듯하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여야가 논의 중인 특검법안에 대해서도 “수사대상으로 추가된 외환죄(外患罪)혐의를 받아들이기 어렵고, 내란 선전 선동까지 수사범위에 포함된 것은 사실상 수사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일단 거부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이런 입장에는 특검 정국 아래서 조기 대선을 치르려는 야당의 셈법이 깔려있다고 본다. 맞다. ‘셈법’ 정도가 아니다. ‘횡재’나 다름없는 집권당의 ‘헛발질’을 발판 삼아 어떻게든 정권을 되찾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 사법 리스크에 몰려 있는 이재명 대표부터 그런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집권당인 국민의힘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대응해야 한다. 계엄 사태로 조기 대선은 불가피해졌다. 빠르면 오는 5월에서 8월 사이에 선거가 치러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럼에도 권 대표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수사는 국가 중대사이므로 적법절차의 원칙을 준수해 절차상 흠결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나 지금 우리 정치나, 국민의힘 사정이 ‘절차상의 흠결 여부’만을 따질 만큼 한가로운지는 의문이다.
 
권 대표 자신도 “이재명 대표가 속도전에 몰두하는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을 하루라도 빨리 체포하여 탄핵심판에서 유리한 정황을 만들겠다는 계산"이라고 한 적이 있지 않은가. 상황을 읽었으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필요하다면 누구와도, 어떤 세력과도 관계를 끊고 새 진용을 짤 각오와 지혜가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좌파 진보 진영이 경고했던 ‘보수의 궤멸’이 눈앞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여야 특검법안 협상에서부터 현명한 대처를 기대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안에 매달리지 말고, 안(案)이 부결되면 재발의하고 또 발의하는 그런 자세로 나가야 한다. 대선이 코앞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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