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도 3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바이든 전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유럽 국가들과 함께 푸틴 정부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첨단 군사 장비와 군사정보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바이든 정부 말기에 더욱 복잡하게 꼬였다. 지난해 러시아와 북한은 군사동맹 관계를 강화하는 북·러조약을 체결하였으며, 북한 김정은 정권이 군수물자·군병력 부족에 허덕이는 러시아에 특수부대 1만여 명을 파병하여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새로운 불씨가 되었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다시 돌아왔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에 향후 집권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내 끝내겠다”라고 공언하였으며 나토 주둔 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과 관련하여 “돈을 안 내면, 러시아가 침공해도 나토를 보호 안 한다”라는 발언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러시아 협상단이 만났으며, 3월 11일 열린 미국·우크라이나 간 종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30일간 잠정 휴전안’을 수용했다. 이제 공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과 달리 고립주의, 양자주의, 거래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할 생각이 없다. 그는 트럼프 1기 정부부터 푸틴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에 그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조속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고 미국의 관심사를 북핵 문제 해결이나 미·중 패권경쟁에 집중시키고자 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군사원조 등의 대가로 희토류 지분 50%를 달라”라고 압박하여, 우크라이나 정부와 갈등을 일으켰다. 현재 트럼프식 종전방안은 러시아에 유리하다.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에 반대하며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을 푸틴에게 준다고 한다. 이것이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 2월 28일 백악관에서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 설전이 벌어져서 양국 간 갈등만 깊어졌다. 국제사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과 철학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 전쟁 피해국인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당신은 카드가 없다”라며 궁지로 내모는 장면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미국의 모습이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가 나서 우크라이나에 군사원조와 군사정보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군사 지원이 없으면 사실상 우크라이나는 버틸 수 없기에 결국, 젤렌스키는 두 손을 들고 트럼프 대통령에 사과 편지를 보냈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 한국, 대만, 일본 등 미국 군사력에 의지하는 국가들은 트럼프·젤렌스키 정상회담을 계기로 “과연 우방국 미국이 유사시 지켜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세계 각국에서 자주국방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움직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럽에서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 핵우산을 유럽에 제공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독일은 징병제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러시아가 밀착하여 우크라이나 종전협상안이 푸틴에게 유리하게 된다면, 향후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른바 유럽에서는 미국 군사력에 의존하지 말자는 ‘전략적 자율성’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방위비를 증강하자는데 공감대를 표명하고 있다. 향후 유럽·미국 동맹관계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트럼프와 푸틴 간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유럽 국가들의 근심은 커질 것이다.
대만에서도 트럼프 2기 정부가 대만을 지지해 줄 것인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미국 군사전문가들과 대만은 “중국이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인 2027년까지 대만을 침공할 것이다”라는 우려의 시각을 갖고 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례처럼 대만 안보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대만으로서는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 간에 가장 첨예한 갈등을 보인 것은 대만 문제였다.
미국은 동북아지역에서 대만의 지정학적, 군사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바이든 전 정부는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국 1위인 대만이 중국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도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를 지지한다”라고 언급했다. 대만 안보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반도체 업체 TSMC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호감을 사기 위해 향후 4년간 미국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트럼프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매우 재앙적 사건이 될 것이다”라는 립 서비스를 하였다. 향후 트럼프 2기 정부의 대만 안보정책이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한국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나서 북핵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3월 3일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2024년 10월부터 재가동한 정황을 포착했다”라고 밝혔다. 최근 북한은 러시아에 추가 파병하였으며, 김정은 위원장이 핵추진 잠수함(SSBN) 건조 현장을 시찰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러시아가 북한의 파병 대가로 핵잠수함 핵심기술을 이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SSBN은 전술핵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게임체인저’ 전략무기다. 큰일이다.
지난해부터 러시아·북한 간 동맹관계는 급격하게 발전되고 있다. 러시아는 2024년 3월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유엔대북제재 위반 행위를 감시하는 전문가 패널의 임기연장에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지난해 9월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북한 비핵화는 종결된 이슈”라고 언급하였다. 이는 러시아가 북한을 사실상 핵무기 국가로 인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해왔다. 향후 북핵 문제를 놓고 미북협상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경우, 트럼프식 우크라이나 해법이 그대로 한반도에 적용된다면 끔찍한 재앙이 될 것이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과 김정은 말에 현혹되어 스몰딜로 간다면, 한국 안보 문제는 심각한 상황으로 흘러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를 미국 편으로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라는 말이 들린다. 미 정부의 전략적 계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북아와 유엔에서 러시아·중국·북한은 한 편이 되어 자유 진영과 대결 구도를 보여왔으며 러시아는 구소련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이웃 국가를 침공하였다. 미·중 패권경쟁이 가열될수록 오히려 러시아·중국 관계는 밀착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와 동북아지역 평화를 위해서 한미동맹을 축으로 삼아 미일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체계를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북핵 문제에 있어 스몰딜이 아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빅딜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부터 미국 본토를 지키기 위해 북한에 유리한 협상을 추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 군축’을 원하고 있다. 만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어렵다면, 트럼프 2기 정부는 주한미군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하며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는 등 획기적인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Pace 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주 보스턴 총영사관 영사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