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표준·지식학과 교수]
당시 놀란 시민들은 국회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일부는 들어가기 위해 담을 넘는 의원들을 도왔으며, 국회 밖에서 경찰과 군인에 맞섰다. 군과 경찰의 방해에도 끝내 국회는 계엄해제를 의결하며, 긴박했던 분위기는 반전이 되었다.
윤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지 약 6시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킨지 불과 3시간 30분여 만의 일이었다. 다음날 국회는 바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였지만, 1차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속에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투표가 성립되지 않았다. 리더십을 잃어버린 대통령과 혼란한 정국으로 우리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편, 일부는 이 사태를 한밤의 해프닝으로 덮으려 했지만, 진실은 쉽게 잠들지 않았다. 시민들의 끈질긴 시위 속에, 비상계엄 집행에 동원되었던 군 관계자들의 증언이 연이어 공개되었고, 다시금 여론은 들끓었다. 결국 야당은 재차 탄핵소추안을 상정했고, 표결에 불참했던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한 시민들의 강한 항의 속에, 여야를 초월한 표결 참여가 이루어지며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다.
그러나 전국은 곧 탄핵 찬반 세력으로 양분되었고, 시민과 학생들은 거리에서 충돌했다. 국론 분열이 깊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국제 사회의 신뢰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미국은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지정하고, 인공지능, 에너지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공동 연구 및 기술 이전에 제약을 걸었다. 유럽 국가들은 한국과의 외교 일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외신들은 “군사정권 회귀 가능성”, “민주주의 후퇴 국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한국을 보도했다.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역시 심화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정치권도, 외교 협상도 아닌 바로 시민들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파면 판결문에서 분명히 언급했다. “계엄 해제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 수행 덕분이다.” 이 짧은 문장은 헌법과 민주주의의 최종적 수호자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선언한 것이었다.
계엄령 하에서도 시민들은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촛불과 응원봉을 든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고,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다”, “계엄은 헌법을 이길 수 없다”는 구호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확산되었다. 다양한 세대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식사와 담요를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때로는 단식과 삭발이라는 강력한 상징으로, 또 때로는 예술과 퍼포먼스로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외쳤다.
이러한 저항의 모든 행위는 한 가지 공통된 메시지를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국가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도록 감시할 것이다.“
그들은 폭력 대신 평화와 창의를 선택했다. 이 점에서 국제 사회는 주목했다. 미국과 유럽 주요 언론들은 “대한민국 시민들은 권위주의의 유혹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다”, “정치권이 아닌 시민사회가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승리 그 이상이다. 시민들은 이제 ‘소극적 유권자’를 넘어, 적극적인 ‘정치의 주체’로 다시 태어났다. 민주주의는 투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위기 속에서도 공공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꾸준한 참여가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음을 이번 사태는 증명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시민들이, 그토록 큰 희생을 치르며 민주주의를 지켜야만 했을까?
국가는 존재했지만, 기능하지 않았다. 정치권은 무책임하게 충돌만을 반복했고, 행정부는 사법부를 압박하며 권력분립의 원칙을 무너뜨렸다. 헌법은 형식으로만 존재했고, 그 공백은 시민이 메워야 했다. 결국 헌법은 조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실천 속에서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제 우리는 이 힘을 일시적 분노의 산물이 아닌, 일상 속의 제도로 정착시켜야 한다. 시민 참여형 공론장 확대, 계엄령 및 국가비상사태 정보의 투명한 공개, 디지털 청원 시스템의 실질적 영향력 강화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평시에 더욱 튼튼한 방어벽을 쌓아야 한다.
또한 정부는 국제사회에 회복된 민주주의의 면모를 진심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형식적인 외교 수사로는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다시 신뢰받는 민주주의 국가로 설 수 있다. 결국 외교 또한 건강한 시민사회에 뿌리 내릴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2025년의 봄, 우리는 무너지는 듯했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가 끝까지 버텨냈기 때문이다. 거리의 촛불, 온라인의 댓글, 펜을 든 기자와 글을 쓴 교수, 마스크를 벗지 않았던 평범한 시민 하나하나가 역사의 한 장을 지켜낸 것이다.
이제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를 넘어, 대한민국 시민이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 이 민주주의를 누가 지킬 것인가?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바로 우리, 시민들이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표준·지식학과 교수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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