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인공지능(AI) 칩 ‘H20’의 수출을 무기한 규제하기로 했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며 미·중 관세전쟁 전선이 광물 자원까지 확대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규제 강화로 반격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는 15일(현지시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를 통해 지난 9일 미국 정부로부터 중국에 H20을 수출할 경우 별도의 수출 허가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공시했다. 또한 전날에는 이 규제가 무기한 적용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엔비디아에 따르면 미 정부는 H20이 중국 내 슈퍼컴퓨터에 사용되거나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새 규제의 근거로 들었다. H20은 미국이 2023년 10월 첨단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 통제를 개시한 이후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내놓은 저사양 제품으로, 중국 수출이 가능했던 유일한 AI 칩이다. 엔비디아의 최신 칩보다 성능은 낮지만 중국 시장 내에서는 최첨단 수준의 칩으로 중국 기술 기업들은 대부분 이 칩에 의존해 AI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번 조치로 이번 회계연도 1분기(2~4월)에 약 55억 달러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사실 최근 엔비디아가 미국에 추가 투자를 약속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국 반도체 규제를 H20으로까지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었다. 앞서 외신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대통령의 마러라고 사저를 방문해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약속한 후 트럼프 행정부가 H20에 대한 규제 계획을 철회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이 트럼프의 145% 관세 폭탄에 보복 관세는 물론 자원 무기화, 보잉기 인수 중단 등으로 맞불을 놓자 반도체 규제 고삐를 더 죄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 4일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한 대응으로 보복 관세와 함께 사마륨, 가돌리늄, 테르븀, 디스프로슘, 루테튬, 스칸듐, 이트륨 등 희토류 7종과 자석에 대한 수출 통제를 발표하고 지금까지 별도의 허가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았다. 사실상 희토류 수출을 중단한 것이다.
중국이 자원 무기화를 꺼내 들자 트럼프 대통령은 핵심 광물에 대한 관세 부과를 위한 토대 마련에도 나섰다.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가공된 핵심 광물 및 희토류, 파생 제품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조사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와 철강, 알루미늄에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때 활용한 법이다.
한편 중국은 자원 무기화 외에도 최근 자국 항공사들에게 보잉 항공기의 추가 인수를 중단하고 미국 기업으로부터 항공기 관련 장비, 부품 등의 구매도 중단할 것을 명령하는 등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도 압박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중국과의 무역 협상 문제와 관련해 "공은 중국 코트에 있다. 중국은 우리와 협상을 해야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협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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