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허드슨강을 낀 허드슨 밸리와 그 아래 지역을 포함하는 미국 뉴욕주 남부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인구가 많고 사업에 적합한 공간이 제한적이다. 2030년까지 전력망의 70%를 재생에너지로 채우는 목표를 설정한 뉴욕주로서는 해상풍력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롱아일랜드 해안에서 해상풍력을 대규모로 증설하는 첫 번째 프로젝트인 ‘엠파이어 윈드1’이 등장했다. ‘엠파이어 윈드’라는 이름은 상징적이다. 세계 최초로 100층을 넘긴 마천루로 건설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의 지위를 40년가량 유지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같은 ‘돌림’이다. ‘엠파이어 윈드’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모두 ’엠파이어 스테이트(Empire State)‘란 뉴욕주의 별칭에서 비롯했다.
2017년 연방정부와 임대 계약을 체결한 ‘엠파이어 윈드1’ 프로젝트는 54개 풍력 터빈을 건설하여 15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궁극적으로 50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것으로 기대됐다.
■트럼프라는 재앙=최근 미 내무부 더그 버검 장관은 해양에너지관리국에 “바이든 행정부가 충분한 분석 없이 서둘러 승인했다는 정보를 추가로 검토해야 한다”며 이 프로젝트를 전면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취임 이후 해상풍력 발전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야생 동물을 위협하는 “거대하고 흉측한 풍력 발전”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취임 첫날 트럼프 대통령은 외측 대륙붕 모든 지역에 대한 신규 또는 갱신된 해상 임대 활동을 중단하고 모든 신규 육상 및 해상 풍력 프로젝트 승인 절차를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또한 기존 해상 임대 계약을 모두 재검토하고 해지 가능성을 허용하도록 지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작업 중단 명령은 뉴욕주의 기후 목표 달성과 뉴욕주 남부 지역의 친환경 일자리 창출에 적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뉴욕주 관계자는 “‘엠파이어 윈드’에서 이미 진행 중인 건설을 중단하려는 무모하고 과도한 움직임은 수천 개의 좋은 일자리를 위협하고 뉴욕이 더 깨끗하고 저렴한 에너지를 향해 이룬 진전을 위태롭게 한다”고 말했다.
지역 사회에서는 “이제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허가 취소와 작업 중단 명령이 내려질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앞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확신이 깨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뉴욕 해변에 810㎿ 규모의 해상풍력발전에 참여한 노르웨이 국영 에너지 기업 에퀴노르 또한 날벼락을 맞았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석탄발전 비중은 현재 미국 전력 생산의 20% 미만으로, 2000년의 50%에서 크게 줄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석탄 광부 수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는 버림받았던 산업을 되살리고 있다”며 “광부들을 다시 일터로 보내겠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석탄 광부는 약 4만명으로, 10년 전보다 약 3만명 감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 직후 에너지부는 신규 석탄 기술 개발을 포함해 2000억 달러 규모 융자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전 정부에서 이러한 융자 프로그램은 석탄 발전소의 탄소 포집 기술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내무부 장관 더그 버검에게 연방 토지 내 새로운 석탄 채굴 허가를 중단한 유예 조치를 종료했음을 공식화하고, 석탄 채굴권 임대를 우선순위에 두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전미광업협회는 “이번 명령은 미국 석탄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고, 풍부한 에너지 자원의 경제적 기회를 수용하는 책임 있는 접근”이라며 환영했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석탄 발전소는 오래되고, 더럽고, 경쟁력이 없으며 신뢰성도 낮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국민에게 오래된 에너지를 위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거대한 사기”라는 시각=트럼프의 거침없는 ‘탄소화’ 행보는 자국 내에 국한하지 않는다. 4월 초에 미국은 해운 부문의 탈탄소화를 추진하기 위해 런던에서 이뤄지던 회담에서 철수했으며, 만일 국제 합의에 따라 미국 선박에 탄소 배출과 관련한 수수료가 부과된다면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이 유엔 국제해사기구(IMO)의 협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국제 협정의 개발 및 협상에서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행정부의 정책”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IMO에 제출한 최초 제안은 해운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에 세계 최초로 탄소 부담금을 무는 것에 관한 합의 도출 방안을 담았다. 미국은 지난 8일 자국 주재 각국 대사들에게 보낸 문서에서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선박이) 선택한 연료를 근거로 미국 선박에 경제적 조치를 부과하려는 모든 노력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 문서는 “이처럼 노골적으로 불공정한 조치가 시행된다면, 우리 정부는 미국 선박에 부과되는 모든 비용을 상쇄하고, 채택된 온실가스 배출 대응 조치로 미국 국민이 입은 모든 경제적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상호 조치를 고려할 것”이라며 나아가 “귀 정부가 고려 중인 온실가스 배출 대책에 관한 지지를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다른 나라의 탈탄소화 정책에까지 훈수를 두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세계 무역의 약 90%를 운송하고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3%를 차지하는 해운업은 환경운동가와 투자자들의 탄소 부담금을 포함한 보다 구체적인 조치를 하라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물론 미국의 어깃장에도 불구하고 IMO 논의는 계속되었다.
지난 1월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국가가 기후변화 대처를 목표로 하는 글로벌 협정에서 제외되는 난센스가 일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위기를 “거대한 사기”라고 주장하며 탈탄소 정책에 역주행하는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북극에선=미 항공우주국(NASA)과 국립 빙설데이터센터(NSIDC)에 따르면 북극의 겨울 해빙이 2025년에 기록적인 최저치를 기록했다. 3월 22일에 기록된 북극해 얼음의 연중 최대 면적은 47년 전 위성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로, 1432만㎢에 불과했다. 해빙 면적이 2017년 이전 최저치보다 7만7700㎢ 적었다. 최소 면적 기록이 남한 면적의 77%만큼 준 셈이다.
캐나다의 대서양 관문인 세인트로렌스만은 겨우내 얼음이 거의 없었고, 오호츠크해에서는 해빙 범위가 평균보다 현저히 줄어들었다. 과거 최저치 기록은 2017년, 2018년, 2016년, 2015년 순으로 모두 최근에 몰렸으며 8년 만에 최저치 기록이 무너졌다.
북극해의 얼음 면적은 3월에 최대, 9월에 최소를 보인다. 1월 말 사이클론이 바렌츠해와 베링해에서 남풍을 밀어내면서 해빙 가장자리의 얇은 얼음을 부수고 해빙을 녹이면서 이탈리아 정도 넓이의 얼음이 사라졌다. 그린란드 북부와 북극 사이에서는 정상보다 최대 12도 높은 기온이 관측되었다.
북극의 해빙 범위는 높은 기온, 따뜻한 바다, 바람에 의한 얼음 파괴, 더 얇아진 얼음 등의 조합으로 앞으로 계속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모두 기후 위기가 원인이다. 동시에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같은 악순환에 따라 일부 기후 모델은 북극에서 2050년 이전에 얼음 없는 여름을 경험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여름에 북극해의 얼음이 다 녹아버리는 해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 32%=북극해의 얼음이 녹고, 남극대륙을 덮은 거대한 빙상이 줄어들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이상기후가 나타나는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지구온난화 때문이고, 지구온난화는 이산화탄소로 대표되는 온실가스가 지구의 온실효과를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는 인간이 석유·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대규모로 사용했기 때문에 단기간에 대규모로 늘어났다. 석탄·석유가 탄소화합물이기에 캐내서 태우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를 생성한다. “거대한 사기”가 아니라 현실이다.
현재의 심각한 지구온난화 수준을 인류가 파리기후협정에서 합의한 대로 억제하려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산업화 이후의 인류문명은 석탄·석유와 융합한 ‘탄소 문명’인데 절대 쉽지 않지만 탄소 의존에서 탈피하는 경로만이 인류를 구하고, 북극곰을 구하며, 지구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인류는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다. 2024년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32%에 달했다.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30%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2%포인트 높아졌다.
태양광이 3년 연속 재생에너지 성장의 최대 기여원이었으며, 2024년 한 해 동안 474TWh를 추가로 생산해 전체 발전의 6.9%를 차지했다. 태양광은 20년 연속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전력원이며, 최근 3년 사이 발전량이 두 배로 증가해 2024년에는 2000TWh를 돌파했다. 풍력 발전은 8.1%까지 상승했고, 수력은 14%로 안정적인 비중을 유지하며 현재까지는 가장 큰 재생에너지 공급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재생에너지(풍력, 수력, 태양광 등)는 전년 대비 858TWh의 발전량을 추가로 공급했으며, 이는 영국과 프랑스의 연간 전력 소비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엠버 관계자는 “태양광은 전 세계 에너지 전환의 엔진”이라며 “배터리 저장 기술과 결합한 태양광은 빠르게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혼란의 시대=국제에너지기구(IEA) 등 주요 기관의 전망에 의지하면 2030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육박한다. 현재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생산 비중은 9% 미만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내세운 2030년 목표는 20%였고, 그것이 달성 가능한지 지금 추세론 회의적이다. 윤석열 정부뿐 아니라 사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미진했다. 미국의 트럼프를 욕할 것이 아닌 게 미국 전기 생산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5년 3월 기준 25%가량으로 우리나라를 크게 압도한다.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기후악당인 셈이다. 기후악당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기후악당은 제재를 받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탈탄소화에 역행하고 세계 경제를 마구 휘저어놓고 있는 불활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곧 새 정부의 출범을 보게 된다. 어떤 이유를 갖다 대더라도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정책은 피할 수 없다. 경제에 부담을 줄이면서 에너지 전환을 이룰 방책을 찾아야 하는데, 부질없이 세월을 흘려보냈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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